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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un 14. 2023

초등학교 6학년인데!! 머리가!!

(주부에세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흠칫 놀랐다.

앞머리가 너무 짧은 거 아닌가.

아니. 초등학교 1학년인 남자아이도 이렇게는 자르지 않을 것 같은데.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에게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길이디. 눈썹 위로 훌쩍 올라가버린 짧은 길이의 앞머리는 이마의 반 이상이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옛날, 호섭이 머리..

아니, 내일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찍을건데.

자연스럽게 다듬어만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왔는데, 평소 바가지 머리를 선호하는 아이의 머리를 삭 바꾸어놓았다. 바가지 머리를 아이가 싫어하는 것 같다며 스타일을 바꾸어보았다고 하셨다.

스타일을 바꾸어달라는 말, 전혀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다듬어만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아이의 앞머리는 무참하게 잘려져 껑충 위로 올라가있었다. 머리카락을 다시 붙일수도 없고 어쩌냔 말이다. 게다가 일반 컷트가 아니라 졸업앨범 촬영을 위해 찾아간 컷트였다.





이 사진은 사건과 전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미용실 디자이너에게 설명만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선생님만 믿고 아이만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디자이너 선생님과 내 아이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디자이너 선생님은 아이가 짧게 잘라달라고 했다고 했다. 아이는 그런 적 없다고 했다. 오히려 그만 잘라달라고 했는데 막무가내로 더 잘라주셨다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건지 그 상황에 내가 없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디자이너 선생님만 그저 원망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초등학교 6학년 아이 앞머리를 이마가 반 이상이 보이는 길이로 맞추어놓았느냔 말이다. 길이가 짧은 건 그려려니 하려고 해도 완전 삐뚤빼뚤, 쥐가 와서 파 먹은 것 보다 더 흉한 것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컷트를 해놓았다. 미용실로 달려가 불만을 토로하고 다시 다듬었다. 하지만 이미 짧아진 앞 머리는 원상복구가 되지 않는다. 너무 화가 나서 미용실을 뒤집고 싶지만 나는 미용실을 뒤집을 배짱도 없고 깡도 없다. 싫은 소리도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나름대로 목소리를 높이며 조근조근 불만을 쏟아놓긴 했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겐  와 닿지도 않을 것 같다. 내가 얼마만큼 화가 났는지 말이다.










리뷰를 남기란 알람이 떴다.

내 안에 해소되지 않은 불만을 그곳에 글로 다 쏟아놓고 싶었다. 나는 말을 잘 못해도 손가락은 좀 잘 움직일 수 있으니, 이건 복수다.

하지만 그래봤자 달라지는 게 뭐 있나. 내일 졸업앨범을 찍는 아이의 망한 머리를 다시 붙일수도 없고, 책임져줄 수도 없고 책임질 마음도 없어보였다. 그래. 친 동생이라 생각하자. 지인이라 생각하자. 한번 헤아려주자. 짜증내고 화내고 불만을 공공연하게 떠벌린다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런데 이미 나는 쓰고 있구나.

쓰는 이유는 불편한 내 마음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다독여주기 위해서이다. 나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쓰는 이유이다.







그래.

내가 잘못이다.

아이를 믿은 내가 잘못이다.

처음 컷트를 맡겨보는 디자이너 선생님을 너무 신뢰한 내 잘못이다.

아이 졸업사진을 위해 미용실을 찾으면서 조금 더 신경쓰지 못한 내가 잘못이다.

그 자리를 지키지 않고 멋지게 미용실에 아이를 맡기도 훌훌 돌아선 내 발걸음이 잘못이다.

내 아이가 아직 표현이 서툴구나.

초등학교 6학년이지만 혼자 미용실에 앉아 디자이너에게 무언가 주문을 하기엔 아직 서툴구나. 자신의 의견을 전하기가 어려웠구나.  그런 서툰 아이를 미용실에 혼자 두고 온 내 잘못이다. 무엇보다 나의 편견이 잘못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앞 머리가 이렇게 짧아서 어떡해!!”


아이의 말에 흠칫 놀랐다.

내가 생각없이 내 뱉은 말을 그대로 흡수하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 내 편견이, 내 시선이, 내 말이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초등학교 6학년이 앞머리 좀 짧으면 뭐 어떤가.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이 또한 지나가는거지.

졸업앨범은 그냥 망한거지.

엄마가 잘못이다.

미안해 아들아.


“머리 괜찮아. 시원해보이고 멋있어.자꾸 보니 괜찮네“

“그래? 그래도 좀 짧은 거 같긴 한데...”


아이도, 나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머리를  바라보며 긍정의 말 들로 새로운 주문을 걸고 있다. 변화된 사소한 한 마디에 아이도 나도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한번 겪었으니 다신 안 겪게 될 시행착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또 겪게 될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들!


괜찮아! 하고 툴툴 털어낼 용기부터 내보자!






(다행히 아침부터 열심히 머리 드라이해주고 꼬까옷 입혀 졸업앨범은 성공적으로 찍었다는 소식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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