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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ul 09. 2023

빈둥빈둥 엄마 vs 월급 적은 아빠

(주부에세이) 유쾌한 아침


(엄마)“우진아. 너는 네가 머리가 크다고 생각해?”

(우진)“아니”

(아빠)“머리가 크면 좋지 뭐. 그래서 형아 공부 잘 하잖아?”

(엄마)“진짜 머리가 크면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해? 그게 진짜 맞다고 생각해?”

(아빠) “ 그럼”

(막내) “아, 아빠. 머리가 크면 공부를 잘 하는거야?”

(아빠) ”응. 형아 봐바. 뇌가 크니까 들어가는 양도 당연히 많아지는거지!“

(막내) “그럼 아빠는 머리가 기니까 뇌도 길겠네?“

 

와하하하.


우리는 빵 터졌다. 머리가 기니까 뇌도 길겠다니! 남편은 얼굴이 좀 긴 편이다. 얼굴이 긴 아빠의 모습이 8살 막내의 눈에는 머리가 긴 것 처럼 보였고 뇌도 길겠다고 상상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펼쳐낸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생각주머니를 들여다보고는 모두가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아침부터 이런 유쾌함. 너무 좋다.



 또 다시 다른 주제로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하는 우리.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화제가 집중되었고 그 이야기를 듣던 둘째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둘째아이) “아. 나도 여자로 태어났다면... 아. 그런데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어. 여자는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어야 돼. 그래도 나도 여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첫째아이) “맞아. 그런데 여자로 태어나면 진짜 좋아. 밖에 나가서 일도 안 해도 되지. 빈둥 빈둥 놀면서 집 조금씩 치우고밥 하고, 하고 싶은 글쓰기 하고 ....”


어머. 엄마를 바라본 아이의 시선이 빈둥빈둥이라니. 내가 그렇게 나태해보였나? 나는 나름 조금 놀라서 심각하게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알게 모르게 하는게 얼마나 많은데, 빈둥빈둥이라 표현하다니. 특히 남편은 ‘빈둥빈둥’이라는 표현에 빵 터졌다. 아 뭔가 억울하다.


(엄마) “야,우진아. 엄마가 진짜 집에서 빈둥거린다고 생각해?”

(아빠) “빈둥, 빈둥이래~ 빈둥빈둥!”(연신 웃고 있음)

그때 큰 아이가 또 한마디 던진다

(큰 아이) “ 그런데 아빠가 월급이 많지 않아서 엄마는 이제 나가서 일해야 될지도 모르잖아.”


아빠 웃음이 뚝 끊겼고 나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 이 녀석.

아빠 월급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어느정도 컸고 내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이제 슬슬 일할 자리를 알아봐야 하나 싶지만 여전히 전업주부하면서 글이나 쓰고 고상하고 살고 싶던 찰나, 큰 아이가 던진 말이 가렵던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근데 아이가 하는 말.


(큰아이) “ 빈둥빈둥이라는 말로 엄마를 너무 공격한 것 같아서 아빠도 한번 공격해봤어.”



이 녀셕이 엄마 아빠를 들었다 놨다 한다.

엄마아빠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고 공격할 줄 안다. 물론 우리는  농담으로 기분좋게 받아들였고 밋밋하던 아침, 온 가족이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오랜만에 이야기꽃이 피어났다는 사실에 마냥 기분 좋았던 아침이었다.


그런데 자꾸 생각난다.

전부터 아이는 이런 상황 판단력이 뛰어났다. 아이에게 속내를 들킨적이 많아 당황스럽고 짜증났던 적도 많았다. 본의 아니게 엄마를 당황스럽게 한 단어 ‘빈둥빈둥’ 앞에서 고소해하는 아빠에게 한 방 먹인 아이. 나는 그 공격으로 인해 또 고소해하고 서운함이 사라진다.


이녀셕.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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