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핑거 Jul 25. 2023

자발적인 빈곤

(주부에세이) 호화점심 vs컵라면



며칠 전 캐리비안베이에 다녀왔다.

삼성계열에서 근무 중인 남편님 덕에 비싼 캐리비안베이 티켓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남들은 3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을 치르고 입장해야 하는 캐리비안베이를 우리는 고작 아이스크림가격 정도의 금액을 치르고 즐길 수 있다. 이 얼마나 짜릿한 기쁨인가. 할인과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보자. 속물근성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우아하고 고상한 말을 늘어놓는 대신 대 놓고 말해본다. 짜릿한 기쁨이라고.








그렇게 저렴한 가격에 입장해 보지만 실상 가서 쓰는 돈은 만만치 않다. 저렴한 가격으로 입장한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놀다 오면 참 좋겠는데 비록 입장료는 저렴했을지언정 먹고 즐기는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하는 곳이다.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돈 10만 원 우습고 몇 십만 원은 쓰고 오는데, 수영장 당일치기 나들이인데도 돈 10만 원은 우스운 세상이다. 그러니 입장료까지 제 돈 다 주고 이용하는 분들은 타격이 좀 클 것 같다.










입장료는 이미 지불했으니 끝났다고 치자.

아이들과 길바닥에 있을 수 없으니 선베드를 대여한다. 2만 원씩 2개 대여하면 4만 원이다. 아이들은 어차피 잠시 먹고 또 놀러 가니 많이 빌릴 필요는 없다. 2개 정도면 대여하면 남편과 나 , 둘이 번갈아가며 쉴 수 있고 아이들과 잠시 둘러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기 좋다. 거기에 락커대여비. 간식비. 점심까지 사 먹으면 지출이 계속 늘어난다. 외동이면 그나마 나으려나, 아들이 셋이나 되니 비용도 따따불이다.






캐리비안베이 카페 마드리드 음식




늘 점심을 먹는 것이 가장 큰 비용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점심을 안 먹을 수 있나. 수영장에서 물놀이하는 것이 에너지소비가 높은 일이니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우리는 캐리비안베이에 자주 가는데 갈 때마다 늘 애용하는 식당은 5층에 위치한 마드리드 레스토랑이다.  실내풀 안에 있어서 이동하기도 편하고 아이들과 함께 먹기에 좋은 메뉴가 많다. 요즘 워낙 외식비가 많이 올라 비싼 편이지만 캐리비안베이도 특히 그렇다. 하지만 비싼 만큼 퀄리티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음식맛도 좋고, 플레이팅과 구성도 만족스럽다. 삼성은 늘 실망시키지 않는 그 무언의 퀄리티가 보장되어 있다. 맛있고 편하게, 분위기 좋은 마드리드 카페에서 식사를 하면 늘 기분이 좋았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5인가족 기준으로 식사비는 6만 원이 넘어간다. 식사비 기본 6만 원에 썬배드 4만 원에 락커비에 이것저것 간식비를 더하면 2천 원짜리 티켓을 주고 입장해서는 20만 원을 쓰고 가는 꼴이 된다.







저렴한 티켓에 혹해서 기분 좋게 방문하지만 더 큰 지출을 하고 온다. 기왕 남들보다 저렴하게 입장했는데 더 저렴하게 기분 좋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방법은 있다. 바로 고급레스토랑을 포기하면 되는 것.  그리고 외부에 있는 피크닉존에 가서 라면과 김밥을 먹으면 되는 것.  


알고는 있었지만 왠지 꺼려졌다. 아이들을 데리고 외부로 이동해야 하는 것도 싫었고, 거기까지 놀러 가서 컵라면을 먹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 허리띠를 더 졸라매기 위해서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한번 피크닉존에 가서 라면을 먹어보자며 나를 살살 달래 보기 시작했다. 물놀이하고 먹는 라면이야 언제나 꿀맛이다. 아이들은 라면을 언제나 좋아한다.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만 주는 라면이다. 그 라면을 수영장에서 먹게 되다니. 아이들은 얼마나 좋겠는가. 나만 괜찮으면 된다. 나만 잠깐의 편안함과 호화스러움을 포기하면 된다.




캐리비안베이 피크닉존





라면과 김밥을 바리바리 싸들고 저렴한 티켓으로 입장했다. 신나게 놀고 와서 피크닉존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도 않다. 보온병에 담아 온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담아 호로록 먹으니 역시나 맛있구나. 아이들도 좋아한다. 늘 캐리비안베이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만 이용하다가 처음으로 피크닉존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가격은 3/1 가격이다. 돈을 꽤 많이 아꼈다. 기분 좋은 [자발적인 빈곤]이다. 돈이 없어서 피크닉존에서 라면을 먹었다면 조금 슬플 뻔했다. 하지만 자발적인 마음으로 지출을 좀 줄여보고자 선택했다.







그런데 왜 순간, 마드리드의 고풍스럽고 쾌적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떠오른 것일까? 피크닉존의 분위기와는 새삼 너무 다른 풍경. 순간, 호화로운 크루즈를 타고 있다가 유람선으로 바꿔 탄 느낌이 들어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았다. 낯선 피크닉존의 풍경에 조금 더 익숙해져야겠다.


어쨌든 우리는 캐리비안베이에 갈 때마다 15만 원 정도는 쓰고 온 것 같은데 피크닉존에서 라면으로 점심을 때운 날은... 놀라지 마시라. 겨우 6만 원만 쓰고 왔다. 이미 준비해 간 과일과 간식비는 빼고 캐리비안베이에서 지불한 가격만 6만 원이라는 이야기다. 썬베드 4만 원에 점심비 2만 원으로 정말 싸게 놀고 왔다. 이렇게 놀았더니 저렴한 입장료가 더 빛을 발한다.





https://naver.me/FXrMmQxh





그렇게 캐리비안베이를 다녀온 후, 우연히 이 기사를 보고 비단 나만의 고민과 문제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캐리비안베이는 피크닉존을 따로 운영하고 있어 자율적으로 이용해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양심 있고 좋은 기업인가. 비록 내부에 있는 가격은 그 말이 쏙 들어가게 사악하지만 말이다. 턱없이 비싼 이용요금도 문제이다. 한철 장사, 비싼 요금으로 이익을 내려는 마음도 이해는 가지만 동네 도랑에서 물장구치며 신나게 놀고 컸던 그 시절을 떠올려보며... 결론은 요즘 아이들은 너무 호화스러운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문제 아닌 문제이고 재앙 아닌 재앙이구나. 감사가 사라지고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을 추구하게 만드는 재앙....






작가의 이전글 빈둥빈둥 엄마 vs 월급 적은 아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