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전업주부의 하소연...
부권제 사회의 아버지의 권위,
반면
아이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어머니...
완벽하지 않을 용기]에서 저자 우치다 타츠루는 현대사회는 아버지의 권위가 몰락했고, 가정이 해체되어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 구별이 사라졌고 1980년대부터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사회적 권위와 지위가 높아졌고 사회에서도 그 분위기를 부추겼다고 생각한다.
부권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아이에게 강력한 권위가 있었다. 우치다 타츠루는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제시하는데, 아버지가 아이에게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부권제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그 결정은 항상 틀렸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아이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데 아버지는 법학과 진학 후 변호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식이다. 아이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쪽은 어머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부권제 사회에서 어머니에게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이 없었다. 아버지는 결정권은 있었지만 자녀의 마음은 알지 못했다. 그 사이에 생기는 틈에서 아이는 숨을 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육아 전략 사이에서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이는 이런 육아 전략 간의 대립 사이에서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망설이고 갈등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부권제 사회를 지나고
아버지의 권위는 몰락하는 반면
높아지는 여성의 지위
요즘
일하는 엄마들이 굉장히 많다. 거의 70% 정도는 엄마들이 워킹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칠 전, 초등학교 교사인 어떤 워킹맘이 "일할 거면 아이를 낳지 말라"라는 극단적인 글을 쓴 것을 보고 흠칫 놀랐던 적이 있다. 아니, 교사라는 사람이! 그것도 엄마이면서 교사라는 사람이 워킹맘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겨줘야지 이 무슨 소리야? "라고 생각하며 글을 읽어보았는데, 읽어보니 워킹맘의 고충이 너무나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주 디테일하게 잘 정리해서 쓴 글이었다. 하나하나 낱낱이 까발린 글은 워킹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워킹맘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까발린 글이었다. 처음엔 워킹맘의 입장에서 읽어보니, 전업주부인 내가 읽어보아도 너무 공감이 되었다.
워킹맘의 어려운 현실
워킹맘이 마음 편히 일을 할 수 없게 설계되어있는 사회적인 문제 속에서 결국 다른 사람의 손에 아이들을 맡기지 못하게 되고, 순차적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어있고, 조금 더 버티다고 하더라고도 결국은 부작용이란 부작용은 다 아이가 짊 어안은 체 뒤늦게 자녀 양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을 그만두는 가정의 사례들은 우리 주위에 굉장히 많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내 자녀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다. 내 자녀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유년시절을 보지 못하며 함께 하지 못하며 아이와 함께 어른 엄마로서 자라나고 성장하는 그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기관에 맡긴다. 이제 그런 일들이 당연시되어 가고 있고 , 전보다 조금 나은 대책과 배려와 시선의 변화 속에서 워킹맘의 자책도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엄마로서의 어려움과 자괴감을 피하고 싶어
차라리 일을 선택하는 엄마들
어쩌면 엄마의 자리는 정말 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자리가 맞을 수도 있다. 그게 싫어서 아이들을 안 낳으려고 하는 젊은 부부도 많고, 그게 싫어서 내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다른 기관에 맡긴 체 나의 만족과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을 얻고 더 성장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내 자녀를 양육하는 것보다 사회에 인정받고 영향을 끼치며 사는 삶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고되지만 결코 나를 포기하고 나를 버리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변화되고 성숙해나가는 자리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지 모른다. 그 배움은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한 배움과 노력보다 훨씬 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무지를 돌아보고,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엄마로 살기 위해서 더 노력하고, 세상에서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늘 내 편인 아이들에게서 막강한 사랑을 받는다. 아이들이 어릴 땐, 그저 육체가 조금 고단할 뿐이다. 그 육체의 고단함이 사람을 미치게 할지라도, 그저 순간일 뿐이다. 금방 지나간다. 망각의 최고봉인 인간이라서 그 괴로운 시간을 금세 잊어버리고, 아이의 젖 냄새가 그리워지고, 아이의 작은 손과 발이 그리워져서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고, 또 키워낸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아이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함께 자라는 것이고 그 성장의 시간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같다. 아이를 엄마가 키운다고 하지만 , 어찌 보면 아이는 스스로 자라난다. 아이는 믿는 만큼 스스로 자라난다. 아이들 곁에서 그저, 필요한 손길과 위로를 그때 그때 채워주면 그뿐이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엄마도 함께 자란다.
자녀보다 나의 만족을 위해 선택한
워킹맘이라면....
이런 귀한 양육의 선물을, 한 인간으로서 느끼고 배워야 할 엄마의 사랑과 희생의 선물을 모든 엄마가 누리고 배웠으면 좋겠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생계유지를 위해서 나가서 일해야 하는 엄마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일의 발전과 내가 이룬 업적과 배움의 열정과 사회에서 인정받는 권위와 지위를 포기하기 힘들어서,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내 아이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다른 기관에 맡기는 엄마들이 한번 더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무엇이 옳은 가치인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 아닌
재계의 입김으로 강력해진 여성의 파워
여성의 권력이 강해지고,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진 사회적인 영향도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엔 모순이 있다. 일본에 특별한 법률 하나가 있는데 바로 1985년에 제정된 '남녀 고용균 등법' 인 법률이다. 고용할 때 남자와 여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법이다. 이 법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재계인들이었는데 그들에겐 숨은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이란 생산주체, 소비 주체로의 남녀 균일 화이다. 남녀가 똑같은 욕망을 갖게 해서 남자든 여자든 권력과 돈, 지위를 원하도록 욕망을 균일화 한다는 것이다. 재계에서 이런 일을 추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 구성원의 욕망이 균일화되면 될수록 생산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고용 조건을 낮출 때 가장 효과적인 말이 ' 널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이다. 교환 가능한 노동 주체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생산 비용을 낮추는 필수 전략인 것이다. 이 시기에 평행적으로 일어난 또 한 가지 변화가 바로 가족 해체이다. 1980년 가족, 친족 집단이 급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한다. 비단, 옆 나라인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시장의 요구이다.
더 이상 희생하지 않는 젊은 엄마들
엄마들이 더 이상 가족에게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 가족보다 나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게 만든 것도 이런 사회적 변화의 흐름 속에 어쩔 수 없는 변화일 것이다. 그런 식으로 전통적인 가족의 분위기와 모습이 변화되었고 가족의 해체도 쉽게 이루어진다. 이건 사회가 가정을 파괴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스스로의 욕망으로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시장의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 여성들까지, 엄마들까지 사회에서 권력의 지위를 맛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게 권력의 지위를 맛보는 동안 내 아이는 어떻게 자랄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 엄마의 따뜻한 손길과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슬프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더 크면 일해야지!??
나도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일을 할까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컸다는 기준은 중학생, 고등학생 정도가 되었을 때를 말한다. 하지만 그때는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을 더 필요로 한다고 한다. 엄마가 집에 있고 없고는 집안의 온기부터 다른다. 엄마가 가정을 돌보면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저녁밥을 지어내는 그 온기가 없는 삭막한 집안에서 아이들이 혼자 지내는 것이 어쩐지 가엽게 느껴져서, 난 될 수 있는 한, 밖에 나가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가서 많이 벌어봤자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일 것이다. 그 돈을 벌기 위해서 아이들을 혼자 집에 두고 나가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이 오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아이가 오늘 어떤 것 때문에 속상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내 아이를 잘 알 수 있는 시간은 함께 살을 비비며 지내는 시간이 있어야 가능하다.
배부른 전업주부의 잔소리
다행히 감사하게도 아직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주부라서 이렇게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시간에 아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가정을 돌보고 남편을 섬기며 기도의 자리에 있었다. 하나님의 일들을 해나가며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자리에 있었다. 신앙훈련을 꾸준히 받았고, 어머니 기도회에서 자녀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이웃들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울며 기도했다. 기도하는 자리에 있었다. 다니는 교회 사모님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얘기도 하신다. '나가서 일하지 않아도 되도록 남편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고 그 직장을 강건하게 지켜주세요'라는 기도를 하며 남편과 그 직장을 위해서 더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마음에 와닿는다. 실제로 그렇게 기도하고 있고 그런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함과 평안함 가운데 부족함이 없이 가정을 돌보며 아이들 곁을 지키며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가정에서 가만히 지내다가 문득문득 놀라기도 한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형통함과 복을 주셔서 이렇게 좋은 집에서 편히 쉬고 먹고 가정을 돌보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가?'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저 감사할 뿐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세상의 명예와 권력보단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갈구하는 엄마
나는 일하지 않기로 했다.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더 열심히 하기로 했다.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나가서 하는 옛날 구닥다리 봉사가 아니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을 사용한다. 화요일에 구역예배를 드리며 말씀과 삶을 나누고, 수요일에 어머니 기도회 자리를 지킨다. 수요일 저녁 예배에 아이들과 다 함께 수요예배 자리에 나간다. 주일에 찬양팀으로 봉사하며 둘째 아이가 함께 하는 유년부 예배에서 교사로 섬기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저 이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할 뿐이다. 많은 엄마들은 사회에서 높은 지위와 명예와 권력을 얻고 인정받고 있지만, 난 하나님의 기업에서 높은 지위와 명예와 권력을 얻기를 소망한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세상이 가질 수 없는 크고 놀라운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의 기업에서 아이들을 기도로 키우고 남편을 섬기며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화한다. 나에게 주신 많은 은혜를 돌아보면 이런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다. 이 모든 것이 주께서 보잘것없는 전업주부인 나에게 주신 크고 놀라운 선물이다. 그러니 가정을 비우고 아이들을 버리고 나를 위해 나가서 푼돈 벌지 말고 기도로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 곁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풍성한 손길을 더 기대하고 사모하는 엄마들이 더 많이 세워지길 소망하고 기도한다.
대부분의 부모가 크고 작은 자녀 문제로 고뇌하거나 고통받는 터널의 시간을 통과합니다. 때로는 그 길이 길고 긴 동술을 지나는 것처럼 느껴져서 '과연 이 길의 끝에 빛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만일 부모가 되지 않았다면, 또한 자녀를 통해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또한 자녀를 통해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깊고도 아름다운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지금 키워라 영적인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