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의 시대
소소하지 않은 ‘소소하다’의 의미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 민족 즉 성공한 스타트업), 처돌이(처돌아버릴 정도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 프로 혼밥러, 프로 짝사랑러 ...
최근 빅데이터 연구원인 정유라 씨의 신간 <말의 트렌드>를 읽으며 ‘요즘 말’ 공부를 했다.
문자만으로 어렴풋이 이해되는 말도 있지만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말들도 많았다. 그저 뜻풀이만 들어서는 이해되지 않고 문화를 이해해야 알 수 있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디지털 언어를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여 그곳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다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넘어온 언어”로 정의하고 있다.
디지털 기반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온라인상에서 글과 말을 주고받은 지는 꽤 오래되었고 그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 역시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디지털 언어 역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시대에 따라 독특한 트렌드를 형성해 왔다. 그런 말의 트렌드 중 디지털 언어에 집중하여 서술한 책인데, 나이를 뛰어넘어 ‘문화를 누리는 세대’를 기준으로 정할 때 ‘지나간 세대’가 되지 않고 ‘지금 이 세대’가 되기 위해서는 읽어 봐야 할 내용들이 많았다. 의미를 모른 채 무심코 지나쳤던, 인간의 개성만큼 다양한 디지털 언어의 의미를 알고 보니 개인적인 ‘호불호’로 판단하기보다 함께하는 여러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저자의 말처럼 익히고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디지털 언어는 그 산출 활동이 막 분화한 활화산처럼 분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용하던 일상 언어를 뛰어넘는다. “맛스타그램”, “먹스타그램”, “먹부림”에서 “착용샷(착샷)”, “구썸녀”, “현썸남” 등 언어의 확장성과 변주의 현란함에 숨이 찰 정도다.
이러한 현란한 디지털 언어 세상 속에서 디지털 언어도 아니면서 그저 과거부터 이런저런 글 속에서 소소하게 사용되다가 그 사용이 두드러지게 많아진 말이 있다. 바로 ‘소소하다’란 말이다. 과거에는 구어체보다는 문어체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제는 구어체 문어체 구분 없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 다방면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주로 ‘소소○○’ 또는 ‘소소한 ○○’이라는 형식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카페, 술집, 일식당, 펜션, 심리상담, 심지어 기업 이름에도 소소가 붙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곳에서 쓰는 소소의 의미는 뭘까? 단순히 사전적 의미인 ‘대수롭지 않은 자질구레한’이라고 풀이하기에는 그 문자가 갖는 의미가 소소하지 않다. 또다른 말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소소’의 의미는 단순히 사전적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 듯하다.
1. 소소하다 小小하다 - 작고 대수롭지 아니하다.
2. 소소하다 小少하다 - 키가 작고 나이가 어리다. / (형용사) 얼마 되지 아니하다.
3. 소소하다 昭昭하다 - 사리가 밝고 또렷하다.
4. 소소하다 昭蘇하다 - (동사) 거의 죽어 가다가 다시 살아나다.
5. 소소하다 炤炤하다 - 밝고 환하다.
6. 소소하다 疏疏하다 - 드문드문하고 성기다.
7. 소소하다 蕭蕭하다 - 바람이나 빗소리 따위가 쓸쓸하다.
8. 소소하다 瀟瀟하다 - 비바람 따위가 세차다.
9.소소하다 騷騷하다 - 부산하고 시끄럽다.
- 표준국어대사전 -
‘소소하다’는 순우리말이 아닌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한자어이다. 그 의미는 어떤 한자를 기반으로 하느냐에 따라 국어사전에서는 9가지 정도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미들은 이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주로 ‘작고 대수롭지 않다’라는 의미의 소소(小小)하다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다른 의미를 가진 말들은 사전과 문학 작품 속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소소(小小)하다’를 즐겨 사용하여 강력한 사회성을 획득하자 나머지 다른 의미를 가진 ‘소소하다’라는 말은 오히려 사회성을 잃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누구도 ‘소소하다’를 ‘소소(小小)하다’ 이외의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있기에 즐겨 사용하는 ‘소소(小小)하다’와 헛갈릴 여지를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소소(小小)하다’의 의미가 다른 의미의 ‘소소하다’의 의미를 집어삼킨 것이다.
언어의 의미는 확대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한다.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이 ‘소소(小小)하다’에서 미세하게 의미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수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소소하다’의 의미가 단순히 ‘대수롭지 않고 자질구레한’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소소한 그 무엇’이라고 발화하는 순간 이미 발화자에게 그 무엇은 소소하지 않음을 알리는 뉘앙스가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은 지극히 대수롭지 않고 자질구레한 것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억도 없기에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언급하고 기록을 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 때문이다. 그러니 ‘소소 ○○○’이나 ‘소소한 ○○○’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그 의미 이면에 ‘나에게는’ 혹은 ‘우리에게’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소소한’은 그저 사전적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1990년대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급한 ‘소확행’에서부터 <코리아트렌드2018>에서의 ‘소확행’ 언급 이후 삶의 양식 변화와 함께 더 친근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후 사람들은 ‘소소’란 말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말을 좋아하다 못해 ‘소소한 그 무엇’이 일종의 삶의 양식이 되어 가고 있다. 디지털 공간이 확장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면서 이러한 현상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내가 바라는 소소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트렌드가 된 것이다. 말의 트렌드를 넘어 일상의 트렌드가 되어 우리 삶 구석구석에서 나타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소하다’가 갖는 사전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사실 이런 식의 변화라면 소소의 의미를 사전에서 다르게 명시하거나 그 의미를 충분히 나타낼 수 있는 다른 낱말을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 입술과 마음에 착 달라붙은 ‘소소’라는 낱말을 더 이상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낱말이 있더라도 ‘소소’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소소’라는 말은 적절하다 못해 적확하게 그 의미를 표현하는 ‘일상어’가 되었다.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 곳곳에서 마치 ‘소소하다’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은 없다는 것처럼 ‘소소’의 소리에 흠뻑 빠져 있는 듯하다.
“소소~.”
시옷은 “목젖으로 콧길을 막고 혀의 앞 바닥을 입천장의 앞 바닥에 닿을락 말락 하게 울리며 내쉬는 소리”이다. 그 시옷이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야 하는 모음자 ‘ㅗ’와 만나 날숨으로 나오니 ‘소소’의 소리는 바람 소리를 닮았다. ‘소소’라고 조심스레 발음하면 가슴속에서부터 입을 통해 조용히 나오는 작은 바람(風)과 마음속에서 이는 작은 바람(願)이 어우러져 우리 주변을 맴돈다.
소소의 의미가 소소하지 않은, 우리는 지금 ‘소소’의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