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퓸 Feb 03. 2023

헤살꾼주의보 1

헌책과 새책

예전엔 헌책을 좋아했다. 앞서 읽은 사람이 남긴 흔적으로, 새 책이 줄 수 없는 시간에 묵혀진 무언가가 남아 있어 좋았다. 표지 안쪽에 책을 산 날짜와 간단히 적은 당시의 감상을 읽을 때면 누군가의 삶을 살짝 엿보는 것처럼 설레었던 기억도 있었다. 게다가 페이지 중간중간에 나오는 메모는 책의 저자가 주는 보물 외에 또 다른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그러니 책값이 부담될 때 적당히 훼손되지 않은 헌책을 선호했다.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된 이후 2000년도 이후부터인가 헌책도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종종 인터넷을 통해 헌책을 구입하곤 했다. 헌책도 상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되도록 상태가 양호한 책 위주로 구입한다. 책 상태가 최상에 가까울수록 이름 모를 독자의 흔적을 찾는 게 쉽지는 않지만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발견하면 그걸 시작으로 나만의 퀴즈를 풀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집 안 책장에는 헌책과 새책이 뒤섞여 꽂혀 있다.     


새책의 종이는 한여름의 진초록 잎사귀처럼 싱그럽고 생기가 돋는다. 지면 속 생각마저도 새책의 종이를 넘길 때마다 역동적이다. 이에 비해 한 장 한 장이 지난 세월의 무게를 견디느라 노랗게 빛바랜 헌책의 책장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같다고 생각했다. 낙엽이 공기 중에 바짝 마르면 손에 닿기만 해도 바스러지는 것처럼 아주 오래된 책도 낙엽처럼 버스럭거리다 손길이 닿으면 바스러진다.

      

헌책에서 풍기는 가을 냄새가 좋았다.

그런 나의 즐거움이 사라진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 위화의 산문집을 읽게 되었다.      


이 기묘한 작가는 타인의 글쓰기에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이다. 그의 서술은 기교로 가득한 동시에 보이지 않게 은폐되어 있다....... 그의 뛰어난 문장은 우리를 매혹하고 감탄시키는 동시에 그것들 자체가 삶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근사한 문장들이 우리 삶과 별 차이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시종일관 삶과 나란하고자 했고 문학이 삶보다 대단할 수 없음을 증명한 매우 드문 작가이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윌리엄 포크너에 대한 위화의 극찬에 집에 있는 책들을 찾아보았다. 책꽂이 한쪽 구석에  꽂힌 단편집에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에밀리를 위한 장미>가 실려 있었다. 책장을 촤르르 넘겼을 때 예쁜 여성 글씨체로 된 여러 메모가 발견되었다. 그 메모를 보고서야 예전에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했음을 기억했다. 읽기 전에는 글씨체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쓸 때마다 삐뚤빼뚤 달라지는 나의 글씨체와 다르게 책 여백의 좁은 공간에 쓴 고른 글씨체가 부럽기도 했다.     


적어도 책을 집중해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처음엔 원저자의 글에만 집중하면 되겠거니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글씨에 눈길이 갔다. 아차, 이미 늦었다. 난 이미 밑줄을 따라가면서 강사의 외침을 보고야 말았다. 듣고야 말았다. 그제야 이 책은 자신의 생각을 메모한 게 아니라 수업 중 강사의 설명을 적은 것임을, 입시 학원에서 “밑줄 쫙~”이라는 강사의 외침 소리를 따라 열심히 밑줄 치면서 적은 메모였다. 마치 시험에 꼭 나올 만한 중요한 내용이라도 되는 듯 정성껏 글 속 의미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꼼꼼히 적어 두었다.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는 짧은 단편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가볍지 않다. 어느 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 글의 극적인 결말을 읽기까지는 나의 시선으로만 읽어가야 한다. 글에 대한 나만의 첫인상과 호흡, 이해, 감상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나의 생각이 어느 정도 잡힌 후에 읽어야 한다. 먼저 퀴즈를 혼자 푼 후에 정답을 맞혀 보는 기분이랄까. 그런 나만의 즐거움을 예쁜 손글씨들이 빼앗아 갔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밑줄을 따라가면서 메모를 읽어버렸다. 나의 생각이 채 자리 잡기도 전에, 내가 퀴즈를 풀기도 전에 그 정답을 먼저 보고 만 것이다. 그 밑줄에 적힌 생각들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이미 보았기에 나의 생각은 그 메모에 점령당했다.

불쾌했다.      


주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밑줄과 메모는 마치 극장 속 어둠을 뚫고 내 귀에 사정없이 꽂히는 스포일러의 목소리처럼 내 생각을 방해했다.      


‘이건 말이지 이런 의미라니까’

‘자, 봐봐, 주인공의 마음 상태는 이렇다고.’     


‘이런... 제길... 책을 읽다가도 스포를 당할 수 있구나.’


아주 짧은 단편임에도 끝까지 읽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했다. 다 읽은 후에는 눈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뒷면을 넘겨 보았다. 뒤이어 수록된 단편들 역시 꼼꼼한 메모가 가득했다. 어느 곳엔 밑줄이 가득하고 그 밑줄에 번호도 매겨져 있었다.

책을 덮었다.

더 이상 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책이 남긴, 책의 이전 주인이 남긴 수수께끼나 풀어보자 생각했다.     


윌리엄 포크너의 글이 고등학교 입시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테고 일반 단편집인 걸로 보아 어느 대학 교양 국어 강의용 교재로 썼던 거라는 생각이 미치자 대학에서도 입시국어처럼 ‘밑줄 쫙~’ 이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나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손글씨가 예쁜 여대생일 거라 추측한다. 수업을 열심히 듣고 나서 필요가 없어지자 과감히 팔아버린 거다. 자신이 읽던 책을 팔아버릴 정도면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은 복사본을 보는 경우가 많은 데 복사본을 보지 않고 책을 구입하여 공부한 것으로 보아 다른 이유가 있었으리라. 강의하시는 분에 대한 예의? 아님 어쩌면 이 책의 주인마저도 중고서점에서 중고를 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고 학기가 끝나자 팔려서 내게로 온 것이다.


이렇게 낙서가 많은 상태임에도 중고로 팔린 것 자체가 놀라웠다. 예전에 중고서점에 책을 일부 팔아 보았지만 이 정도라면 제값도 받지 못하고 아예 거부당할 각이니 말이다. 어쩌면 중고서점 담당자마저도 제대로 체크하지 않은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처음에 느꼈던 불쾌감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어찌 되었건 이 헌책이 내게 또 다른 추억거리를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이런 추억은 이번 한 번이면 족하다.

헌책을 구입할 때는 스포일러를 조심하시라.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소소'의 시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