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단 둘이 외출하여 식사를 할 때 절대로 가지 않는 식당이 있다. 바로 만두를 주요리로 하는 식당이다. 육식을 좋아하는 아들은 만두 속 야채가 싫어서 만두를 먹지 않고, 고기를 싫어하는 나는 만두 속 고기가 싫어 만두를 잘 먹지 않는다. 만두를 아예 안 먹는 건 아니다. 난 두부와 김치나 다른 야채만으로 속이 꽉 찬 만두를 좋아하고 아들은 고기만으로 꽉 채워진 만두를 좋아한다. 딸과 남편은 고기와 채소를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지만 나와 아들 때문에 자연스레 만두전문점은 가지 않게 되었다.
그런 우리 집에 새로운 채식주의자가 들어왔다.
2주 전에 서울 성수동에 다녀왔다. 딸과 함께 볼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습하고 더운 날씨에 멀리 차를 주차해 둔 공영 주차장까지 힘겹게 걷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길가에 애처롭게 놓여있던 작은 화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한 평 남짓 되는 작은 꽃집에서 화분이나 꽃을 팔고 있었는데 이 화분 하나만 문 밖 인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파리지옥이었다.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 식물이라는 말만 들었을 뗀 뭔가 잔인하고 섬뜩한 식물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실물로 보니 여느 식물과 다를 바 없었고 약간 기이한 잎 모양이 오히려 귀여워 보였다.
집에 날아다니는 날벌레를 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만원에 화분 하나를 구입했다. 식물을 키울 때 관리를 잘못하여 죽이는 경우가 많아 꽃집 주인한테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꼼꼼히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파리지옥이 집에 온 지 2주일이 지났다. 2~3일에 한 번씩 플라스틱 통 안의 물이 말라 물을 채워 주었다. 하지만 벌레를 잡느라 입이 닫힌 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주방에 날파리가 생겨 주방 쪽에 두어도 잎은 변함없이 활짝 열려 있다.
보통 유인 냄새를 뿌려 파리가 덫으로 들어오게 하고 그 파리가 잎 안의 작은 털을 건드리면 잎을 닫아 열흘 정도의 소화 기간을 갖는다는데 2주 동안 어느 잎도 열흘 정도 닫혀 있지 않았다.
2주 동안 물만 먹었다.
‘아, 너도 채식주의였구나...’
문득 이 파리지옥도 나처럼 채식주의였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생명체가 반드시 종이 가진 습성에 정확하게 부합하여 살지는 않는다. 예전에 친구가 키우던 강아지는 친구의 어머니가 담그신 깍두기 김치를 즐겨 먹었다.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뱀을 먹는 사슴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들 초식동물인 줄 알았던 사슴이 어떻게 뱀을 먹는지 놀라는 분위기였다. 식충 식물도 반드시 벌레를 잡는 것이 기본 습성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채식주의자라 통칭하지만 서양에서는 그 채식주의자의 단계가 매우 세분화되어 있다. 일단 가장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인 프루테리언(fruitarion)이 있다. 이들은 이름에 ‘fruit’이 붙는 것처럼 과일과 견과류만 먹는데 식물의 잎과 뿌리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다음 단계는 흔히 말하는 비건(Vegan)이다. 육식을 모두 거부하는 완전 채식주의자다. 이들은 동물에게서 얻은 우유, 알, 꿀도 섭취하지 않고 오직 식물에서 얻은 재료만 먹는다. 그다음이 육류와 어패류, 동물의 알(달걀 등)은 먹지 않고 우유, 유제품, 꿀은 먹는 채식주의자를 말하는 락토 베지테리언(lacto-vegetarian), 육류·생선·해물·우유·유제품은 먹지 않지만 달걀은 먹는 오보 베지테리언(ovo-vegetarian), 채식을 하면서 달걀이나 우유, 꿀처럼 동물에게서 나오는 음식은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vegetarian), 채식을 하면서 유제품, 가금류의 알, 어류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vegetarian), 채식을 하면서 우유·달걀·생선·닭고기까지 먹는 준채식주의자인 폴로 베지테리언(pollo-vegetarian), 마지막으로 채식을 하지만 아주 가끔 육식을 겸하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모든 채식주의자들이 이런 엄격한 구분을 정확하게 지키는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 우유, 달걀, 생선을 먹되 닭은 튀긴 닭만 먹고 아주 가끔 햄버거를 먹으니 폴로 베지테리언과 플렉시테리언의 중간 정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채식을 한다고 육식주의자를 비난하거나 배척하지는 않는다. 내가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은 단지 육식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친구들이 나를 놀리는 말로 ‘3일만 굶어봐. 고기고 뭐고 닥치는 대로 먹을 거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 상황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뿐이다.
세상에서 채식주의로 사는 것은 여러 가지를 감내해야 한다.
일단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있다 하더라도 식대가 비싼 곳이 대부분이라 쉽게 이용하지 못한다.
함께 식사하는 이들 대부분 육식을 좋아하기에 채식전문 식당을 가자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암묵적 강요가 된다. 그러니 조용히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좋다. 나 혼자 다른 식당 가겠다고 주장하지 않는 게 모두를 위해 나를 위해 편하다. 괜히 나는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얘기하기 시작하면 언제부터 육식을 하지 않았는지 왜 육식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얘기를 과거의 일부터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설명을 다 해야 한다. 단지 입맛과 비위 차이 일 뿐 내가 채식주의자로써 동물 보호와 관련된 어떤 사명 때문은 아님을 애써 밝히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조용히 전체가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을 따르고 그 안에서 최대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먹으면 된다. 실제로 남편과 둘이서 고깃집을 갈 경우에는 고기를 2인분 시켜서 남편이 다 먹고 밥과 함께 된장찌개나 야채는 내가 다 먹는다.
우리 집에 들어온 파리지옥도 실은 물만 먹으며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라며 나 혼자 억지로 감정이입을 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