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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Aug 05. 2023

라면 파티 2

- 쉽지 않은 유종의 미

<금요일>

 

역시 밤의 생각과 낮의 현실은 다르다. 전날 밤 아련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끝까지 잘해주어야겠다고 다짐했건만, 다음날은 내가 공부방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를 다시 한번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거운 시간으로 끝날 줄 알았던 라면 파티에서 결국은 내가 먼저 욱하고 말았다. 잘못된 상황을 보고도 모른 척 넘어갈 수 없었기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학생들이 많이 줄어 학교 끝나고 바로 오는 2시에서 3시 사이에 오는 학생들과 4시 이후 다른 학원을 끝내고 오는 학생들 두 타임으로 운영하던 차였다.  같은 시간에 공부하는 6학년은 총 4명인데 3명의 학생은 사이가 좋아 항상 같이 와서 공부하는 사이이다. 한 학생은 다른 학원을 다니는 시간 때문에 나머지 세 학생과 시간이 겹치기도 하고 겹치지 않기도 한다.

라면 파티를 하는 금요일에는 시간이 겹쳐서 함께 라면을 먹게 되었다.      


학생들은 오자마자 그동안 읽었던 신문 기사에 대한 퀴즈를 풀고 오늘 읽을 신문 기사를 다 함께 한 문장씩 소리 내어 읽은 후 시간을 정해 원고지 쓰기를 했다.


이후 저학년 학생들은 저학년 학생들끼리 함께 모여 먹을 수 있도록 하고 6학년 학생은 책상 4개가 나란히 있는 자리에서 칸막이만 치워 함께 먹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이며 라면을 나눠주고 있는데 친한 세 명의 6학년 학생이 자리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과 붙어 앉는 자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순간 한마디를 하려다 아이들의 관계 문제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 말라는 남편의 조언이 떠올라 그냥 놔두었다. 그러자 6학년 지훈이(가명) 옆에 앉는 학생의 얼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도 먹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넘어갔다.      


라면을 먹으면서 세 아이들이 옆의 지훈이를 그림자 취급하며 말 한마디 걸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속닥속닥 얘기하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물론 지훈이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앉아 먹고 있는 동갑내기에게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외면한 채 자기들끼리 더 바짝 붙어 앉아 웃고 떠드는 모습을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더 화가 났던 건 라면을 먹을 시간이 되자 세 아이가 자리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할 때, 그 아이들과  함께 라면 먹을 생각에 지훈이는 자신의 젓가락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아이의 젓가락도 함께 챙겼기 때문이다.       


“얘들아, 그냥 넘어가려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한마디 해야겠구나. 어떻게 옆에 지훈이가 앉아 있는데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니들끼리만 얘기하지?”     


둘은 뜨끔했는지 아무 말 못 하고 있는데 나머지 한 아이가 불에 기름을 부었다.     

“그냥 핸드폰에 장난치는 얘기라 알아봤자 좋을 거 없어요.”

“좋은 얘기든 아니든 옆에 함께 먹는 사람이 있는데 친하지 않다고 아예 그림자 취급하면서 말 한마디 걸지도 않고 그러는 건 아니지. 입장을 바꿔서 너희들이 지훈이의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해 봐. 기분이 어떨지.”     


“선생님, 저는 괜찮아요.”

그때 마침 라면을 거의 다 먹은 지훈이가 일어나 후다닥 가방을 메고 먹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저... 다 먹어서 갈게요.”     

“그래, 주말 잘 보내렴~”

현관문까지 지훈이를 배웅하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지훈이가 집으로 가고 나서 다시 나의 잔소리 같은 훈계가 시작되었다.      

“사회나 국어 교과서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 배려 이런 거 배웠지? 지금 이 상황은 배려가 없었던 거야. 최소한 한마디라도 해줄 수 있지 않겠니? 아무리 몰라도 되는 얘기라 해도 바로 옆에서 같이 라면을 먹고 있으면 얼굴이라도 한 번 돌려서 말을 걸어 줄 수 있는 것 아니니? 어떻게 이렇게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외면할 수 있니?”     


이참에 그동안 지켜보다 참았던 얘기까지 쏟아냈다.     


“엄청나게 괴롭히는 것만 왕따가 아니야. 너희들도 방금 지훈이를 왕따 한 거야. 지훈이 옆에 앉기 싫어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어쩔 수 없이 앉아서는 완전히 외면하고. 지훈이가 너희한테 나쁜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심했구나.”     


내가 언성을 높이자 옆에서 라면을 먹던 저학년 학생들이 다른 때보다 공손하게 예의 있는 행동을 한다.     

사실 이런 일은 전에도 늘 있어 왔다. 특히 부모들끼리 친하면서 함께 공부방에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 자신들만의 패밀리를 만들어 다른 학생들이 끼고 싶어도 끼어들지도 못하게 경계선을 그어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과 친한 친구와 동생을 잘 챙기는 거라 생각하지만 바로 선 밖의 학생은 늘 소외감으로 마음이 불편했다..     


모르는 사람도 다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이라면 그리고 누군가가 혼자 외롭게 라면을 먹는 처지라면  외롭지 않게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가져야 하는 마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친한 관계에 집중하다 보면 늘 바로 옆 누군가에게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이럴 때 아주 작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이고 어른이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주어야 할 공감과 배려의 자세가 아닌가 한다.     


나의 잔소리를 듣자 아이들은 라면을 다 먹고 조용히 가방을 챙겨 인사를 하고 나갔다. 다른 때보다 더 공손히 인사를 하는 걸 보면 반성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 아이들 모두 심성이 못된 아이들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내가 만나보았던 다른 6학년 학생들보다 예의 바르고 세상의 나쁜 때가 덜 묻은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배려의 마음이 부족했다.       


학교에서는 국어 시간이나 사회 시간에 꼭 나오는 주제가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에 관한 것이다. 국어 시간에는 ‘내가 만약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나는 주인공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써보세요’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했던 얘길 써보세요. 그때 마음이 어떠하였는지 써보세요 ‘라며 글을 읽고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알아가는 글쓰기를 하고, 사회에서는 인권존중과 정의로운 사회 단원에서 배운다. 하지만 아무런 공감 없이 기계적인 학습으로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 역부족이다.     


신문을 읽을 때도 여러 정보에 대한 기사를 읽기도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기사도 읽는다. 기사 속 상황을 생각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지만 이 또한 깊이 있게 다루지 않으면 소중한 감정으로 쌓이지 못한다. 아이들이 공감과 배려를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 이게 현실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어서 누군가는 배우지 않아도 좀 더 타인의 마음에 쉽게 공감하고 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니, 몰라서 배려하지 못하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디지털 세계 게임 속이나  학교에서도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아야 하니 타인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 라면파티라 아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고 안타까운 기억만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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