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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Apr 08. 2023

조진감래


“아, 조졌다.”

수학 문제를 풀던 태영이가 갑자기 한숨을 쉰다.    

 

무엇이 한숨을 쉴 정도로 태영이의 마음을 힘들게 했는지는 살피지도 않고 “조졌다”라는 말 한마디에 먼저 발끈했다.     

“누구니? 누가 이런 말을 함부로 쓰지?”     


공부방 안에서는 밖에서 친구들끼리 함부로 쓰는 말은 쓰지 않도록 엄격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 친구들과의 일상 대화에서 비속어와 욕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비속어가 튀어나올 때가 있다.      

 

태영이도 갑작스럽게 내뱉은 말에 자기도 놀랐는지 반성의 마음을 담아 급 공손한 말투로 자백한다.

“분수의 나눗셈 계산에서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지 않고 계산했어요, 망했어요”     


열 문제가 넘는 문제를 다 틀리게 계산했으니 그 맘은 이해되지만 언어 습관만큼은 항상 주의를 주어야  자신들이 함부로 쓰는 말들이 바르지 않다는 사실을 그나마 마음속에라도 담고 잊지 않는다.      

“그랬구나. 그래도 공부방 안에서는 그런 말은 쓰지 말자.”

     

옆에서 공부하던 정민이가 태영이를 위로한다.

“태영아, 넘 속상해하지 마. 조진감래잖아, 조진감래~”     


‘조진감래라니, 고진감래도 아니고? 이건 뭔 소린가?’라며 한마디 하려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정민이 말이 맞네. 조진감래~”      


정민이가 엉겁결에 만든 ‘조진감래’라는 말이 아니었으면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야 하는 태영이도 속상하고 마침 태영이처럼 틀리게 문제를 풀고 있던 정민이도 맥이 빠져 다시 공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민이의 재치 있는 “조진감래” 한마디로 한바탕 웃고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진감래’라는 말이 재미났는지 6학년들 사이에선 ‘조진감래’가 유행하게 되었다.     


“아, 망했다!”

“괜찮아, 조진감래야~”      


평상시에도 어려운 부분을 공부하다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국에는 서로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수학은 왜 하나요?”, “수학은 누가 만들었나요?”라는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말로 집중해서 공부하던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비록 비속어와 결합한 이상한 사자성어(?)라 해도 함께 공부하던 학생들의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끌어주었기에 조진감래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게다가 정민이와 태영이의 이런 재미난 일화에 얽힌 말이니 내가 이를 기록하여 남긴다면 먼 훗날에는 공부에 지친 어린 학생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고사성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조진감래’라는 말놀이에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이 났다.  


고진감래(苦盡甘來)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하여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던 한 농부가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붓 대신 숯, 종이 대신 나뭇잎을 사용하여 공부에 전념해 학문에 대한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는 기록에서 유래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 농부에게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고난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것이 고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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