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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Jul 19. 2023

‘지꼭’이 뭐예요?

“어? 오탄가?”

신문을 함께 읽던 3학년 남학생 둘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읽기를 멈춘다.     


“선생님, 지꼭이 뭐예요?”

“지꼭? ... 지꼭이라니?”

“여기 신문에 ‘지꼭’이라고 되어 있어요. ‘꼭지’ 아녜요?”      


한창 에베레스트 등정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고 있는데 ‘지꼭?’, ‘꼭지?’라니... 아님, 꼭대기?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신문을 보자마자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읽고 있던 아이들에게 지꼭의 의미를 알려 주기 위해서는 또박또박 전체 문장을 의미 단위로 끊어 읽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어제(29일)는 인간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데 성공한 지 꼭 70주년이 되는 날이었어요”     


“다시 읽어 줄게”     

“에베레스트산에∨오르는데∨성공한∨,∨ 70주년이 되는 날”     


좀 더 천천히 ‘성공한 지’와 ‘꼭 70주년이 되는 날’을 더 길게 띄어서 읽어 주었다. 그제야 “아하~”하면서 신문 기사를 계속해서 읽기 시작했다.     


글을 잘 읽지 못하는 학생들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읽는다. 그러기에 어쩌다 단어나 문장의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면 그 질문이 아무리 황당해 보여도 함부로 웃거나 뭐라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운영하는 공부방에서는 누구든 신문이나 교재에서 오타를 찾으면 오타 하나에 사탕 하나를 받는다. 조금이라도 읽고 있는 글에 관심을 갖고 좀 더 즐겁게 읽게 하려 고안한 것이 오타 찾기 놀이다.      


혼자 글을 읽거나 다 함께 글을 읽거나 상관없이 오타라고 생각되면 바로 얘기하고 오타가 확인되면 사탕을 받을 수 있다. 그날 공부방에서 신문을 읽지 못해서 집에서 숙제로 읽는 경우라도 오타를 발견한 즉시 사진을 찍어 톡으로 보내면 그다음 날 바로 사탕을 받는다.       


오타인 것을 확인하면 나는 학생들에게 단체로 톡을 보내어 신문 기사에 오타가 있었음을 알린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먼저 오타를 발견하면 다음 사람이 똑같은 부분을 발견해도 최초의 한 사람만 사탕을 받을 수 있다. 오타, 그게 뭐라고 아이들은 자신이 먼저 오타를 찾고 싶어 한다. 혹여 누가 오타를 발견하면 좋은 기회를 아깝게 놓친 것처럼 안타까워한다.       


오랜 시간 동안 아이들과 오타 찾기 놀이를 하다 보니 오타를 찾는 학생들과 오타를 잘 찾지 못하는 학생들, 오타에 관심 없는 학생들,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유형은 글을 읽을 때 굳이 오타를 찾지 않아도, 어색한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오타를 발견하는 학생들이다. 이 아이들의 공통점은 글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매우 유창하며 교재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신문을 읽을 때에도 새로운 정보를 잘 습득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신문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글을 유창하게 읽지도 못하지만, 오타를 하나라도 찾아 사탕을 먹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다. 이 아이들의 장점은 승부욕이다. 맛있는 사탕을 한두 개씩 더 가져가는 학생들을 부러워하며 어떻게든 오타를 찾으려 애쓴다.     


이 두 번째 유형의 학생들은 다시 두 부류의 학생들로 나뉜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한정된 어휘를 기준으로 그 어휘와 조금이라도 다른 어휘가 나타나면 문맥과 무관하게 오타가 아니냐며  따져 묻는 아이들이다.      


어느 날 어린이 신문을 읽다가 ‘촉구하다’라는 단어가 나오자, ‘축구’를 ‘촉구’로 잘못 쓴 것이라며 손을 번쩍 든 아이가 있었다. 축구부 학생이었다.      



또 다른 부류는 어차피 오타를 찾지 못할 바에야 띄어쓰기나 문장부호, 글자 색 등 다른 부분을 공략하는 학생들이다. 글 읽기가 서툴지만 기필코 오타를 찾겠다는 노력이 가상하여 오타로 인정해 사탕을 준다. 가끔 신문 인쇄 상태가 좋지 않아 글자 근처에 잉크가 번져 점으로 보이는 부분도 오타라고 주장할 때는 난감하기 그지없다.     


세 번째 유형의 학생들은 오타가 있거나 말거나 아예 관심이 없다. 눈에 보이는 글자만 억지로 읽거나 더듬더듬 힘겹게 읽는다. 그냥 빨리 읽고 끝내면 좋고, 가능하면 아예 읽지 않고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아이들은 워낙 소리 내어 읽는 것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읽기 능력 향상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씩 좋아하는 주제의 기사를 읽고 아이들이 관심을 내비칠 때는 예뻐서 사탕을 하나라도 더 주고 싶다.   

  

나의 공부방에는 읽기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도 오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다. 심지어 초등학교 2~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한글을 못 떼 다른 학원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 학생들도 부지기수였다. 이 학생들도 매일 신문 읽기를 1년에서 2년 이상 꾸준히 읽자 긴 글도 유창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고 6학년이 될 즈음에는 실력이 전체 평균 실력을 뛰어넘기도 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한 게임 및 유튜브 동영상들이 아이들의 독서와 학습을 방해한다. 이런 와중에 교육부에서는 종이책이 아닌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화되고 인공지능으로 편리해져도 초등 시기까지는 아날로그식 읽고 쓰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교육관이다. 나의 작은 공부방에서만이라도 아이들이 매일 신문 읽기를 통해 문해력을 키우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이후의 쏟아지는 디지털 문화도 지혜롭게 사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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