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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Dec 10. 2022

공짜라도 싫은 건... 책


최근 책장을 정리하면서 딸과 아들이 초등학생 때 봤던 책들을 따로 모아 박스에 담았다. 정리하다 보니 새것과 다름없는 책들이 거의 한 박스 모였다. 책을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 학생들에게 하루에 한 권씩 책을 가져가라고 했다. 빌려주는 게 아니고 공짜로 줄 테니 꼭 읽을 사람만 하루에 한 권씩 매일 가져가라 했는데 첫날 학생 세 명이 한 권씩 가져갔다.


그게 벌써 두 달 전 일이다. 책은 그대로다. 큰 박스에 담아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공부 끝나고 가는 길에 편하게 골라 가라고 했는데 들춰보지도 않아 먼지만 쌓이고 있다. 책 제목만 봐도 재미있을 거 같고 또 궁금하기도 할 텐데 왜 아무도 책을 가져가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집에 책을 가져가면 그때부터 듣게 되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책을 집으로 갖고 왔으니 처음에는 잘 가져왔다는 말을 듣겠지만 그다음부터는 왜 읽지도 않을 책을 가져왔느냐라는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을 박스에 담긴 책을 보는 순간 알아버린 것이다. 그러니 하루에 한 권씩 매일 책을 가져가도 좋다는 말에도 소가 닭 보듯 책이 담긴 박스를 외면한 것이다.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읽기’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학교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읽기를 싫어하고 읽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기에 처음 공부방을 시작할 때에도 읽기 하나만이라도 잘하게 만들자는 것이 공부방의 첫 번째 목표였다. 이후 여러 방식의 읽기 훈련을 통해 많은 학생들이 훈련 효과를 보았다.      


일부 학생들은 ‘읽는 것’ 자체가 싫어 공부방을 떠나기도 했다.      


공부라는 것이 교과서와 그 외 참고서나 문제집을 읽는 것에서 시작하는 데, 읽기를 싫어하면 공부를 아예 안 하겠다는 것이고 스스로 읽지 않으면 공부를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2019년 가을쯤에 2학년 여학생이 새로 들어왔다. 당시엔 해야 할 공부가 끝나면 구독하는 어린이 신문을 두 사람이 짝이 되어 한 문장씩 교독하였다. 집중하지 않아 자기가 읽어야 할 순서를 놓쳐 읽지 못하면 다음에 읽을 사람과 다시 짝을 이루어 신문 기사를 또 읽어야 했다. 그러니 최대한 집중하여 자기 순서를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한다. 그 여학생도 공부방에 처음 와서 다른 학생과 짝을 이루어 신문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이 신문을 보더니 사색이 되어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니?”

“저... 이거... 못 읽어요.”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후반이니 한글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큰 글자의 제목과 소제목을 읽어보게 했다. 이 학생이 읽는 소리를 들어보니, 문장을 의미 단위로 끊어 읽지 못하였다. 여학생은 공부방에 들어온 후 약 1년 동안은 더듬더듬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라는 식으로 읽곤 했다. 이전에도 한글을 알아도 문장을 잘 읽지 못하는 학생이 종종 있었던 지라 이럴 경우에는 짧은 신문 기사 하나를 글자를 크게 확대하여 인쇄한 다음 비슷한 수준의 아이들과 번갈아 읽게 했다. 이렇게 2~3개월을 반복하고 나면 그제야 작은 글자들이 빼곡한 신문 기사를 다른 학생과 함께 교독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게 되었다. 3월, 4월 두 달 동안은 공부방을 아예 쉬다가 5월에서야 다시 공부방을 열었다.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는 학생들이 머리를 맞대고 교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읽기만큼은 놓칠 수 없는 중요한 훈련인지라 고민 끝에 학생들에게 각자 집에서 신문 기사를 읽고 이를 녹음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모든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이용해 읽기 숙제를 음성파일로 만든 후에 카카오톡을 통해 보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읽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녹음을 하면서 처음에는 정성껏 녹음을 하다가 나중에는 꾀를 부리기 시작하여 한 문장씩 빠트리고 녹음을 하더니 이제는 한 문단을 통째로 빠트려 읽지 않기도 했다. 학생들이 제대로 읽었는지 바쁜 저녁 시간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녹음만 듣고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꾀를 내는 아이들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아이들에게 신문 읽기가 즐거운 것이 될 수 없을까’라는 고민 끝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읽은 신문기사 내용에 대한 퀴즈를 풀기로 했다. 10문제 정도의 단답형 문제를 읽어 주면 아이들이 종이에 답을 쓰고 정답 수만큼 사탕을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아이들이 금요일 퀴즈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일단 다른 공부를 잠시라도 안 해서 좋고, 운 좋게 몇 문제라도 맞히면 사탕을 받을 수 있으니 아이들로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 시험을 앞두고 해야 할 공부가 많아서 한 주라도 퀴즈 시간을 넘기면 왜 퀴즈를 하지 않냐고 조르기 시작한다. 퀴즈 시간으로 나와 아이들에게 즐거운 금요일이 되었다.     


이런 즐거운 상황에도 신문 읽기를 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 2019년 가을에 들어온 그 여학생도 신문 녹음을 툭하면 빠트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이들이 직접 퀴즈 문제도 만들고,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퀴즈를 맞히게 하는 것이었다. 몇몇 학생들이 문제를 열심히 만들어오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여학생이  열심히 문제를 만들어왔다. 문제를 만들어 온 학생이 문제를 큰소리로 읽고 나머지 학생들은 나에게 카카오톡으로 답을 전송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니 퀴즈 시간이 더 박진감이 넘치게 되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문제를 만들다 보니 문제 내용 때문에 웃지 못할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문제의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텔레비전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프로에나 나올 법한 문제들이 나오고 단답형도 아닌 서술형 문제가 등장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문제를 내온 학생도 풀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게 된 것이다.      


보통 내가 문제를 낼 때에는 단답식으로 신문의 큰제목과 글의 흐름만 알아도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로 낸다. 그런데 아이들이 문제를 내기 시작하면서 시험문제보다 어려운 문제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가령, ‘컴퓨터에서 학습 능력을 실현하는 기술을 무엇이라고 하나요?’라고 해도 어려운 문제를 ‘머신러닝의 뜻은 무엇인가요?’라는 식이다. ‘꿀벌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으면서 바이러스를 옮기는 기생충을 묻는 질문에 '응애'라고 쓰도록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응애가 무엇인지 쓰라 한다. 물론 문제를 낸 학생도 쓰지 못한다.      


아이들이 만들어온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오로지 신문 기사 내용만 달달달 외우고 직접 써보기도 하면서 공부를 해야만 풀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아이들이 문제를 읽기 전에 문제를 빠르게 검토한 후 단답형의 쉬운 문제가 되도록 문장을 살짝 바꿔 주었다. 그렇게 문제를 검토해 주니 어렵게 문제를 만들어 오던 아이들도 점점 답형의 쉬운 문제로 만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여러 명이 문제를 만들다 보면 비슷한 문제가 겹치게 된다. 이때는 문제가 겹치지 않게 그날 제시할 문제도 정리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만들어 온 문제와 내가 낸 문제와 동일한 경우에 문제를 만든 학생은 사탕을 또 받는다. 이런 식으로 몇 개월을 하니 아이들은 내가 낸 문제에서도 사탕을 받고 다른 학생들이 만들어 온 문제로도 사탕을 받을 수 있어서 더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점은 처음 신문을 보고 사색이 되었던 그 여학생의 읽기 실력이 매우 좋아진 것이다. 국어나 사회, 과학 공부 실력도 좋아졌다. 심지어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공부방 벽면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공부하는 중간중간 몰래 꺼내 보더니 학교에서 책을 빌려와 읽기 시작하고 가끔 읽은 책에 대해 내게 얘기하기도 했다. 독서가 취미가 되었다.      


올봄 5학년이 되면서 이 여학생에게 사춘기가 왔다. 공부 외에 다른 것들에 관심이 많아져 다른 것을 배우기 위해 공부방을 떠나게 되었다. 


최근 그 여학생의 SNS 프로필 사진이 새로 올라와서 봤더니 자신이 읽은 책의 글귀를 사진으로 올려 두었다. 초등생들이 읽기 쉽지 않은 책의 한 글귀였다. 그 글귀를 보니 어디선가 책을 읽고 있는 그 여학생의 예쁜 모습이 떠오른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멀리 바라볼 때 지금은 책 읽기가 더 우선이다. 앞으로 닥쳐 올 삶을 살아갈 지혜를 쌓을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박스에 쌓아 둔 책을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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