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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Oct 19. 2023

예일대 연구에 관한 전설 따라 삼천리

갑자기 핸드폰으로 광고 알림이 떠서 봤더니 ‘예일대 4분할 연습장’이라는 상품이 보였다.

예일대 노트라니. 처음에는 예일대생은 4분할 노트를 썼다는 얘긴가? 했는데 시중에는 여러 4분할 노트가 있고, 이 노트는 예일대 로고로 표지를 디자인한 노트일 뿐이었다. 워낙 명문대로 이름난 대학이니 노트 사용자에게 동기부여 차원의 디자인인 거다. 사용 후기 댓글을 보니 ‘스탠퍼드 갈 거지만 예일대 노트 쓴다’는 재미난 후기도 있었다.     


내게는 ‘예일대’라면 잊지 못할 사연이 있다.     


공부방을 처음 시작하기 1년 전 학생들을 지도할 때 좀 더 전문적인 지도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서울에 있는 모대학과 신문사가 공동주최하는 학습코치자격증 강의를 신청하게 되었다. 4개월 동안 기본 코칭 수업을 받으면서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감정코칭 방법 등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이 수업에서 처음으로 예일대 연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연구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3년에 미국의 예일대학교에서 진행된 연구로 삶의 목표와 가치에 대한 조사이다. 예일 대학교 졸업생 중 3%만이 인생의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글로 써놓았고. 이들은 20년 후 97%를 압도하는 성공을 거두었다는 실험결과였다.    


여기에 예일대생은 아니지만 목표를 적거나 시각화한 성공 사례로 짐 캐리도 언급되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꼭 성공해야겠다는 집념으로 짐 캐리는 스스로에게 천만 달러짜리 수표를 써 주고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3년 안에 꼭 천만 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성공했다는 예화다. 즉 생각으로만 머물지 말고 기록하고 구체적으로 시각화해야 성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최근에야 알았지만, 짐 캐리의 예화는 사실이지만 예일대 연구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1953년이라는 연도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고 1980년대 초반부터 자기 계발서, 신문, 칼럼 등에서 널리 인용되고 있지만 정작 예일대에 의하면 이러한 연구기록은 없다고 한다.      


당시 코칭을 지도하시는 강사님께서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소개해 주셨기에 15년 넘게 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짜라고 하니 이게 웬 전설 따라 삼천리인가 싶었다.  지금도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이 예일대 연구가 사실이 아니라는 글보다는 사실을 전제로 확신에 찬 글들이 더 많다.       


나는 학습코칭에서 배운 대로 공부방 운영에 적용하였다. 공부방 학생들에게 동기부여가 되겠다 싶어서 내 나름대로 자신의 목표를 구체적으로 쓰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매달 마지막 날에 자신의 꿈 즉 어른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사람을 쓰고 한 달 동안 일상생활 속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나 하기 싫어도 꼭 해야 하는 일, 그 달에 잘한 일을 스스로 칭찬하고 반성할 점도 직접 적어보는 시간이다.      


초등학생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어린 초등학생들에게는 ‘목표’라는 말도 어려웠고 ‘자신의 꿈’이라는 말도 낯선 단어였다.      


그냥 부모에게 등 떠밀려 공부방에 왔거나 친구 따라 재미로 공부방에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때마다 ‘목표 세우기’를 쓰는 시간만 되면 아이들은 이걸 왜 하는지 물어볼 때가 많았다.     


“쌤, 이거 왜 맨날 해요?”     


그럼 난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에게 설명해 준다.      

“예일대라는 아주 유명한 대학에서 연구를 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세하게 써서 기록한 사람들이 더 많이 성공했데. 그러니 너희도 이렇게 쓰다 보면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지 않겠어? 그치?”     


“아, 그래요?”

대답하는 말은 수긍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대치를 좀 더 낮게 잡았다. 이들이 뭔가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기보다는, 최소한 집이나 학교 등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생각해 보고 스스로 반성하고 자신을 칭찬하도록 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이런 생각도 무척 힘들다. 옆에서 도와주어야 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몰라요...”     


“다음 달에는 뭘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거 없는데요?”     


“그럼, 하기 싫은 건?”

“하기 싫은 것도 없는데요?”     


“무슨? 하기 싫은 게 왜 없어. 너 공부하는 거 싫어하잖아. 소리 내어 책이나 신문 읽는 것도 싫어하고. 원고지 필사하는 것도 싫어하잖아.”

“아하, 그러네요.”     


“그래, 그렇게 하기 싫은 것도 써보고, 그러고 나서, 하고 싶은 것도 써봐. 가령 이번 달에는 부모님이나 친구와 함께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던지, 아 맞다. 너 지난번에 친구네 집에서 파자마파티 하고 싶어 했잖아. 그런 걸 써 보는 거야. 자꾸 써 보면 더 쉽게 이루어진데.”     


“그래요? 그럼 공부방 안 다니는 거요.”     


“그래, 그거라도 써봐. 또 알아? 안 다니게 될지. 여기 공부방 다녔던 어떤 누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공부방에 들어와서 6학년 졸업해서 공부방을 나갈 때까지 ‘공부방 안 다니기’라고 썼거든. 결국 졸업해서 나갔잖아. 근데 여기가 더 좋다고 중학교 들어가서 다시 다니고 싶다고 해도 선생님이 중학생은 받지 않잖아. 그러니 이뤄진 거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마음 편하게 쓸 수 있게 되고부터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을 솔직하게 쓸 수 있었고, 심지어 자신의 부모님이 그 내용을 읽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부모에게 꼭 해달라고 조르고 싶은 내용을 일부러 적기도 했다. 이제는 글로 자신의 요구사항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이 어른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적는 부분에서는 시대의 유행도 읽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프로게이머나 만화가, 가수 등등 다양한 꿈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티브이 프로에서 요리대결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일 때는 요리사가 꿈인 경우도 많았다. 스마트폰을 초등학생 누구나 갖고부터는 웹툰 작가나 유튜버에 편향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마트폰으로 많은 정보를 접해서 좀 더 다양한 직업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정된 정보 속에서 갇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을 칭찬하고 반성하는 부분에서도 재미난 사연이 많았다.

어떤 학생은 성격이 내성적이라 자신의 감정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지 못한다. 또 ‘생각’ 자체가 귀찮은 학생들은 자신이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없다’고 우긴다.     


“저번에 글씨 예쁘게 써서 선생님이 칭찬해 줬잖아.”

“아, 그러네요.”     


“너, 지난주 수학 시험에서 ‘매잘(매우 잘함)’ 받았잖아.”

“그런 것도 써도 돼요?”

“그럼.”     


반성하기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에 신문 소리 내어 읽을 때 너무 빨리 읽어서 녹음이 제대로 안 됐더구나. 천천히 또박또박 읽지 않았던 것 쓰면 되겠네”

“요즘 학교에 갈 때 지각을 자주 했다면서...”     


남매 지간인 학생들에게는 재미난 반성과 칭찬이 있다. 이번달 반성하기에 ‘오빠랑 싸웠다.’가 나오면 다음 달 칭찬하기에는 ‘오빠랑 안 싸웠다’ ‘심지어 오빠한테 안 대들었다’라고 쓰기도 한다.       


이렇게 1년 정도를 꾸준히 하자 자신을 표현하는 게 조금은 자연스러워졌다.     

“동생이랑 놀아줬다”

"동생을 때렸다."

“방 청소를 했다.”

“이를 안 닦았다.”


비록 예일대의 연구가 사실이 아니었다고 해도, 15년 동안 학생들에게 적용하면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굳이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되새기지 않아도 아이들은 이미 한 달에 한 번씩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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