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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Aug 18. 2023

우리 집에는 20대만 산다.

이번 생에 20대가 처음인 아들과 딸, 이번 생에 20대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나와 남편이다. 남편은 굳이 나처럼 20대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아니다. 그저 지난 20대 초반부터 50대까지 함께한 인생의 동반자로서 내가 20대 프로젝트를 선언했으니 반강제로 20대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 집에는 20대 둘과 자칭 20대 둘이 함께 살고 있다.      


생물학적 나이는 50대가 맞다.

흰머리도 군데군데 보이고 얼굴에 주름도 있고 탄력도 떨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허둥지둥 새벽예배를 갈 때는 얼굴에 생긴 베개자국도 쉽게 숨길 수 없는 그런 나이이다.


코로나 이후 천식 증세가 심해져 자기 전에는 천식약을 먹고 아침에는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인데 갱년기까지 가세하여 이른 봄부터는 늦가을까지 책상 밑에 선풍기를 두고 열이 오를 때마다 선풍기를 틀어야 한다.


근시와 난시가 심한데 노안까지 겹쳐 어딜 가더라도 돋보기는 필수품이 되었다. 마트 가서 장을 보다가 식품 성분이나 신선도를 확인할라치면 돋보기를 꺼내 써야 한다.      


30년 전 20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신체적으로 약해졌다. 그렇다고 내가 20대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 피부과 가서 시술하고, 안과 가서 수술하고, 운동해서  탄력이 넘치는 20대의 신체를 갖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나이를 먹고 노쇠해져서 20대만큼 혈기왕성하지는 못해도 천천히 속도조절하면서 20대에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해보면서 살겠다는 것이다. 50대가 지나고 60대, 60대가 지나 70대를, 그렇게 노년이니 노년의 삶을 계획하고 살 수는 없다. 아직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데 세상이 노년이라고 규정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 20대 프로젝트를 선언한 지는 2년 정도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세상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고무되었고 코로나19를 통해 그 시기가 앞당겨지는 상황이 되었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와중에 나는 50대가 되어 있었다. 50대 전까지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그동안 살았던 방식과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격변하는 세상을 외면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 속에 뛰어들어 역동적인 인생을 살고 싶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여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할 것이다. 나 역시 늘 두 가지 인생을 놓고 고민했다.      


그냥 고민 좀 덜하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편안함 속에서, 주어진 일들 중에서 조금  더 편하고 조금 선호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살 것인가? 조금은 피곤하고 불확실하지만 도전하는 삶을 살 것인가.


나의 피곤한 마음을 녹이듯 상냥한 목소리가 속삭인다.

‘인생 뭐 있어? 그냥 힘들게 살지 말고 하루하루 웃으며 즐겁게 살아. 뭘 그리 피곤하게 살려고 해? 나이도 먹고 그랬으니 즐겁게 소소한 일상을 보내봐. 그게 행복인 거야.’     


또 다른 곳에서는 뜨거운 목소리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또 다른 도전을 해봐야지. 그냥 시간을 보내며 편안함만 추구하고 살 수는 없잖아. 그러기엔 우린 아직 젊다고. 일단 해보는 거야. 뭐라도 시작해 봐'     


한쪽에서는 내게 소소한 행복을 누리라 하고 한쪽에서는 '으쌰으쌰'하며 거칠게 몰아붙인다.

사실 20대 프로젝트로 내 인생을 리셋했다며 큰소리쳤지만 어느 순간 갈팡질팡한다.      


“오늘 어떤 감정이 모든 것을 밀어내고 불쑥 떠오른다. 내일은 이 감정이 이집트의 미라보다도 더 완전하게 죽어버린다. 그래서 내일은 속속들이 찾아보아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이 감정은 불실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행복도 이 감정 못지않게 불실하다.”  
 - 마르쿠제의 행복론, 루드비히 마르쿠제     


앞으로도 내가 시도하는 모든 과정 속에서 어떤 감정들이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강렬했던 마음들이 완전히 죽은 것처럼 희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내가 어떤 일도 시도하지 않고 사는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다. 나의 마음속 싸움은 이것을 하던 저것을 하던 나를 언제든 뒤흔들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흔들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나만의 20대 프로젝트 도전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20대 프로젝트에 쓰는 글은 하나의 글을 쓸 때마다 내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확실하지 않은 감정을 죽이고 또 다른 나와 싸워 이긴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은 20대의 마음으로 50대가 도전하여 쓰는 승전의 기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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