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까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어도 뭔가 그리는 것이 즐거워 끊임없이 그렸다. 중학생 시절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는 환경을 마련하여 주어 적극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전시도 했던 기억이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살벌한 입시 분위기에서 그나마 미술시간과 개인 취미로 그림을 그렸는데 대학을 진학하고 나서는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아날로그 중심 세계에서 디지털 공간과 공존하는 세계로 변하는 격변의 세월이 흘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오면서 그림이 더욱더 중요해졌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1차적으로 정보를 접하는 것이 대부분 시각적인 부분이라 거의 모든 것에 그림이 들어가기도 한다. 모든 것에 시각적 표현인 디자인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전과는 달리 다양한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태블릿이나 스마트폰과 디지털 드로잉 펜만 있으면 연필화, 목탄화, 수채화, 아크릴화, 유화 등 온갖 종류의 그림을 다 구현할 수 있다. 재료에 구애받지 않으니 그림을 그릴 때 드는 비용도 절감하게 되었다. 게다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알리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도 달라졌다. 이제는 미술관 전시를 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 속에서 과거의 그림 실력을 되살려 보라는 남편의 권유로 작년 봄, 디지털 드로잉을 접하게 되었다. 거금을 들여 드로잉에 적합한 노트북과 드로잉 펜을 구입하여 디지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 보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30년 이상 그림이라고는 회의 시간 낙서 빼고는 전혀 그리지 않아, 이제는 그림을 어떻게 그렸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거 어린 시절에 그림을 많이 그렸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았을 뿐, 나의 눈과 손에는 어떠한 기억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떠한 감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그림이라는 것을 그리지 못하는 것인가’라며 거의 포기 상태로 있는데, 다시 처음부터 배워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하라는 남편의 지속적인 부축임에 작년 7월에 한겨레 문화센터 드로잉스쿨에 등록하여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과연 내가 30여 년 전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7주 과정으로 드로잉 스쿨에 등록하여 시작하게 되었다.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2시간씩 세 가지 다른 종류의 드로잉을 배웠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자세로 과거의 느낌도 떠올리면서 배워나갔다.
매주 그림을 조금씩 배우면서 왜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을 전혀 그리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나를 그림으로부터 떠나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화가들의 위인전기가 떠올랐다. 그림을 좋아하다 보니 화가들의 인생이야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던 것 같다. 그 시절 집에 있던 유일한 책은 세계위인전집이었고 여러 위인들의 이야기 들 중 밀레, 반 고호(그 당시에는 고호라 읽었다), 폴 고갱, 심지어 담징의 인생까지 심취해서 읽었던 것 같다. 읽다 보니 그들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위인들의 인생이 엄청난 고난을 극복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에 그 반열에 올랐지만 화가의 인생은 어느 위인들의 인생보다 더 처절했다는 것이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마음속에 강하게 각인이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나의 환경 역시 문화적 혜택을 쉽게 누리지 못했던 열악한 환경이라 전시회 같은 곳을 가보거나 그림에 대한 다른 정보들을 쉽게 얻지 못했던 것이 한몫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술가 특히 순수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생한다는 것이 주변의 이야기였다. 현대 미술과 응용미술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나의 진로는 그림이 아닌 것, 그림 그리는 것 외의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억지로라도 그려야 하는 수업시간 외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다가 더 이상의 강요가 없게 된 나이에는 아예 시도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세상도 많이 변했다. 태블릿과 디지털 펜 하나만 있으면 어떠한 그림도 그리는 세상이 온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세상이 왔기에 다시 한번 사라진 옛 감각을 되살려 보고 싶었지만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핑계였던 것 같다. 지금은 개인적 여건과 사회적 환경이 주어져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드로잉 스쿨 7주 동안 수업 시간 외에는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냥 그림보다 다른 게 더 좋아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더 솔직한 이유다.
드로잉스쿨 7주 과정이 끝날 즈음, 브런치 작가되기 프로젝트란 수업을 알게 되어 8월에 시작하고 9월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림보다 글쓰기가 더 좋다. 작년에도 두 가지를 해보고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자고 했는데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더 즐거웠다.
그렇다고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게 글을 잘 써서 즐거운 것은 아니다. 잘해서라기보다는 읽고 쓰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입시도 아니고 취업도 아니니 남들보다 실력도 안되고, 느려도 내가 가고 싶은 데로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이다.
브런치스토리 플랫폼에 대해 ‘그들만의 리그’라 부르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 어떠랴. 그들끼리 즐기고 행복하면 되고 그러다 보면 ‘그들만의 리그’가 ‘모두의 리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나만의 리그지만 내가 즐겁고 행복하니 된 것이다. 가끔 나만의 리그가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덤으로 주어지는 행복인 것이다.
p.s. 문득 내가 좋아했던 반 고흐가 생각났다. 캠버스 살 돈마저 없어 자신의 그림 뒷면에 또 다른 그림을 그렸던 고흐에게 태블릿과 디지털펜이 있었다면 그가 우리에게 어떤 그림을 보여주었을까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