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퍼퓸 Sep 16. 2023

디지털 명함 시대에 프로정신이란

예전에는 명함이 필수품이었다. 누군가를 업무상 만나게 되면 늘 명함을 주고받았고, 오랜만에 학교 동창들을 만나더라도 명함부터 주고받았다. 한 친한 대학 동창은 만날 때마다 명함이 바뀌어 졸업 후부터 20여 년 간 받은 명함을 한 곳에 모아보니 친구의 이직과정을 한눈에 확인하기도 했었다. 당시 명함첩을 전화번호부보다 더 중요하게 보관하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명함첩도 사라졌고 사람들을 만나 명함을 건네는 일도 많이 줄어들었다. 혼자 일하는 나의 직업 상 명함을 주고받지 않은 점도 있으나 적어도 명함의 역할을 다른 것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  

    

아직도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명함을 주고받긴 하지만 예전보다는 형식적인 과정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SNS의 주소와 아이디를 묻고(요즘 명함에도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친구추가나 팔로잉이라는 형식을 통해 교류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SNS프로필을 꾸미고 꾸준히 사진이나 영상을 업데이트하여 자신의 근황이나 경력을 전하고, 그 프로필 사진을 통해 타인의 안부를 살피게 되었다.      


예전에 사용했던 ‘자기 PR’, ‘자기 홍보’라는 개념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방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면서 명칭도 퍼스널 브랜딩으로 바뀌었다. 누구나 개인의 고유한 아이덴티티, 가치관, 경험, 스킬, 이야기 등을 강조하고 관리하여 자신을 브랜드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전문 지식을 가진 소수’만 가능한 분야가 아닌 ‘누구나’ 가능한 분야가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SNS가 카카오톡이고, 좀 더 전문화된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인 것 같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가 그 사람의 관심사나 취미, 사업 등을 알리는 디지털 명함이 되었다.      


오래전에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잠깐 블로그를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관심 있는 기사를 공유하곤 했다. 당시에는 딱히 올릴만한 나만의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하여 자연스레 블로그 활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올 7월, 15년 동안 운영했던 공부방을 정리했다. 그동안 운영하면서 쌓인 공부방 관련 자료들을 그냥 두기 아까워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했다. 그래도 나름 프랜차이즈에 의존하지 않고 나만의 공부방 사업을 해왔던 터라 공부방 운영이나 학생 지도 관련 자료들이 상당했다.  


블로그 활동은 20대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은 주로 나의 취미 생활을 담고 블로그는 나의 경력과 관련된 콘텐츠를 담아 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나의 퍼스널 브랜딩의 기초를 세워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뭐든 처음 시도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건 마음먹은 만큼 쉽지 않다. 그중 가장 힘든 부분이 사진과 영상이다. SNS에서 사진과 영상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인데, 익숙지 않으니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는 셈이었다. 남들 하는 거 보면 쉬워 보이고, 나름 스마트 폰은 최신폰이라 똥손도 커버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최신폰도 똥손 커버는 안 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릴스나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나면 제일 먼저 남편과 딸, 아들한테 링크를 보낸다. 그럼 자동으로 하트 세 개가 뜬다. 하지만 하트를 받음과 동시에 냉정한 평가도 받아야 한다.


“엄마, 사진이 좀 이상해.” “엄마, 사진 이렇게 찍으면 안 돼!”라는 문자가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담긴 채 내게 전송된다. 가끔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으면 20대 딸은 스마트폰으로 직접 시연을 해주기도 한다.     


왕년에 사진 좀 찍었다는 남편은 한술 더 떠 "초점이 안 맞네", "구도가 잘못 됐네", 급기야는 "다시 찍어라"라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나마 제일 잘 찍었다고 생각한 사진이나 영상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사진이 되고 만다. 그 부족한 2%를 개선하는 것이 나의 과제인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부방 사업 관련 콘텐츠 외에도 일상의 모습을 나타내는 콘텐츠도 부가적으로 담고 있는데 정작 사진이나 영상 찍을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아 좋은 기록을 남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주에도 집에 있던 구문초 화분이 모두 시들어버려 다시 작은 화분 네 개를 사서 큰 화분에 옮겨 심은 일이 있었다. 구문초는 우리 집을 모기로부터 지켜주는 중요한 화분이기 때문에 구문초가 시들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큰 화분에 옮겨 심었다. 온 정성을 다해 분갈이를 하고 나서야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지 못한 걸 떠올렸다.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예쁘게 완성된 화분 하나뿐이다.      


식당 방문이나 핫플레이스 방문 때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색다른 요리를 먹거나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가더라도 의식적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야 하는 데, 많은 경우 다 끝나고 난 뒤에야 사진과 영상을 찍지 못했음을 깨닫곤 한다.      


매번 사진 찍기를 잊어버리자 남편이 액션까지 취하며 또 한마디 던진다.

“자 봐봐, 이렇게(옆으로 넘어지면서 사진 찍는 행동을 동시에 취하더니) 실수로 넘어지더라도 셀카를 찍으면서 넘어질 정도의 프로 정신을 발휘해야지.”     


오죽하면 ‘감사 기도 후 식사’가 아니라 ‘감사기도 후 사진 찍고 식사’라고 되뇌어야 하는 상황이다.     


SNS플랫폼을 통해 나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여 자신만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나의 성장뿐 아니라 타인의 성장도 도울 수 있는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 정신의 부재...

왕초보 사진 영상 실력...

남편의 잔소리...     


이 세 가지는 퍼스널브랜딩을 위해 50대 중년의 아줌마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20대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쭉~          

이전 04화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