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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Sep 01. 2023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30년 전 덕질의 부활 2

중학생 때 동네에 자주 가던 서점이 있었다. 천정을 빼고 바닥과 벽면을 책으로 가득 채운 서점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당시 학교 앞 서점에는 주로 참고서나 문제집을 팔았지만 버스 정류장 앞 서점에는 참고서나 문제집 말고도 다양한 책들이 많았다. 대형서점은 멀리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나가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동네 서점은 나에게 보물섬 같은 곳이었다.    

  

그 서점 바로 옆에는 약국이 하나 있었다. 그 약국 역시 자주 가던 단골 약국이었다. 당시 만성 비염과 장염을 달고 살아 자주 약을 사야 했는데, 집에서 더 가까운 약국이 있어도 서점 옆 약국을 단골로 정해 거기서 약을 사곤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가 직접 서점 주인이 되면 어떨까? 아님 서점 옆에서 약국을 차려볼까? 당시에도 서점은 장사가 안 되었고, 약국은 장사가 잘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망하는 건 무서워 서점은 엄두가 안 났다. 서점 바로 옆 약국 주인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약국을 하면 옆의 서점에서 책을 사서 일하면서 책을 볼 수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서점 옆에서 약국이 아닌 다른 사업을 해도 좋겠다는, 무슨 일을 하던 바로 옆에 서점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세월이 흐르고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학교 근처 서점과 대형서점을 이용하게 되었고 나의 단골 서점은 도로 주변이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1999년경에서 2000년 경에 인터넷 서점이 등장했다. 나에게 신세계가 펼쳐졌다. 일반 서점보다 더 저렴하게 새책을 빠르게 집에서 받아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때부터는 인터넷 서점만 이용했다. 새책 정보도 빠르게 얻을 수 있었고 멀리 나가지 않고도 원하는 책을 집 안에서 빠르게 받아볼 수 있었다.      


2009년부터는 집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낯선 곳으로 멀리 이사를 가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하루 종일 집에서만 지내다 보니 인터넷 서점은 내게 더 큰 안식처가 되었다.  


공부방 운영에 필요한 책과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보면서 문득 어릴 적 작은 꿈이 떠올랐다. 내가 일하는 곳 바로 옆에 서점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그 생각이 인터넷 서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난 언제 어디서든 서점에 들어가 내가 궁금해하는 책을 찾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서점은 내 손 안 휴대폰 안에서 언제든 나의 방문을 기다려 주었다, 이렇게 어릴 적 가졌던 아주 작은 소망 하나가 디지털 산업의 발달로 자연스럽게 성취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시작하면서 디지털 공간에 작은 책방을 하나 열었다. 내가 읽었던 오래된 책들을 음악과 함께 소개하는 영상이다.      


다른 건 잘 버려도 책은 버리지 못한다. 결혼할 때는 신혼살림보다 책부터 먼저 챙겼고, 이후 이사할 때에도 많은 책을 운반하느라 이사 비용이 더 들기도 했다. 가끔 주위 사람들이 옛날 책은 버리지 왜 갖고 있냐고 뭐라 하기도 했지만 나에게 책은 사진첩 같아서 버릴 수가 없었다. 한 권 한 권 작가의 글 속에 내 기억이 덧입혀져 있다. 그러니 문득 그 시간이 그리워질 때 그 책을 꺼내 읽어 본다. 그러면서 그 책의 의미들에 나의 기억들이 연장된다.   

   

지금은 대부분 절판이 된 책들이지만 책들의 표지를 보니 예전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추억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내가 40여 년간 간직했던 추억의 글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공유하는 책방이다. 독서 인구가 줄어 동네 서점도 다 사라지고 출판계는 늘 어려움 속에서 고전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옛날 책을 좋아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디지털 공간을 채워간다. 다들 좋아하는 것만 똑같이 따라 하면 얼마다 재미없는 세상이 되겠는가. 지금까지도 유행에 따르는 걸 거부했던 방식대로 그냥 해보기로 했다.      


짧고 강하게 전달하는 것이 인스타 릴스나 다른 숏폼 영상의 특징이다. 나의 영상은 길고 느리다. 일반적으로 영상의 길이가 15초에서 20초 미만이 좋다는 데 내 영상은 최소 30초에서 최대 시간 1분 30초를 겨우 맞추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시 한 편 소개하는데 시가 너무 길어서 1분 30초짜리 두 편으로 나눠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조회수가 하루 만에 100을 넘기기도 할 때는 누군가 내 영상을 본다는 생각에 뿌듯함으로 다음 영상을 만들기 위해 책을 고르게 된다.     


제일 먼저 책표지와 표지 날개, 속표지, 목차가 있으면 목차도 찍고 본문 첫 페이지와 책 맨 뒤에 있는 판권정보가 있는 페이지 사진을 찍는다. 음악을 고르고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것이 마치 옛날 음악감상실에서 음악을 소개하는 디제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아직은 영상이 어설프고 부족한 점이 많지만 책과 문장들을 음악과 함께 소개하는 일에 나도 모르게 빠져 들고 있다.      


문득 30여 년 전 책에서 읽었던 문장들을 일기장에 옮겨 쓰고 혼자 읽기 너무 아쉬워 예쁜 편지지에 필사하여 친구들에게 편지와 함께 보냈고, 라디오를 듣다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녹음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읽고 혼자 듣기 아까워 그렇게 글과 음악을 친구들과 공유했다. 그리고 함께 나눌 생각에 즐거워 밤을 지새웠다.      


일종의 취미생활이었고 요즘 흔히 쓰는 말로 덕질이라고도 부른다. 이제 30년 전 덕질을 인스타 릴스를 통해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추억의 취미생활도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것들이 편리해졌다.      


나에게 인스타그램은 ‘백조의 호수’에서 ‘덕질의 공간’이 되었다.     


비록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30년 전 내가 친구들에게 좋은 문장과 음악을 소개해 주고 공감하길 바랐던 것처럼 누군가도 내가 느꼈던 기쁨과 위로를 얻길 바라는 마음이다.       


퍼퓸의 헌책방에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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