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경 처음으로 인스타그램에 가입했었다. 뭔가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가입했지만 페이스북과 연동되어 내 사진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여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8월경 다시 시도하려다 인스타그램 분위기에 적응 못해 포기했다.
우연히 핸드폰 메모장을 살펴보다가 2020년경에 기록해 두었던 인스타에 대한 메모를 보게 되었다.
-인스타그램은 백조의 호수 같다. 수면 위에 드러난 모습은 우아하지만 물속 두 발은 쉴 새 없이 물장구를 치는 백조처럼 인스타의 사진들은 수면 위의 백조처럼 아름답지만 그 이면의 모습은 물장구를 치는 백조의 두 발과 같다.-
메모를 읽고 당시 나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으니 저 인스타그램은 별로일 거라고 말하는, 마치 먹을 수 없는 포도를 보고 ‘저 포도는 너무 실 거야’라고 말하는 여우의 모습과 같았다. 나를 우화 속 여우 같다고 말한 것이 과장이 아닌 것처럼 인스타그램의 표면에 드러난 현상이 백조의 호수를 연상케 한다는 말 또한 과장은 아닌 것 같다. 디지털 영상의 기술로 무장한 사진과 영상의 아름다움 이면이 물속에 숨겨진 백조의 다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다 보면 보이는 이면과 보이지 않는 이면을 함께 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잘못된 사회구조가 그렇다. 겉으로 볼 때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 인권문제, 노동문제, 환경문제 등 여러 문제가 숨겨져 있고 이러한 문제는 보기 싫어도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그 해결을 위해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인스타에 대해서는 굳이 보지 않아도 될 그 이면을 보려 했고, 안 해도 될 생각으로 혼자만 과도하게 심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인스타그램에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인스타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아닌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활동하는 시대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SNS 플랫폼을 이용하여 자신만의 색깔로 디지털 공간을 채워나가고 있다. 자신을 브랜딩 하는 기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각종 SNS 계정은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명함이 되고 있다.
그러던 중 인스타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연이어 있었다.
올봄에 우연히 참여한 인스타 강연과 최근 8월에 있었던 인스타 릴스 강연이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모임에서 인스타에 대해 자세히 알기 위해 인스타 전문가를 모셔 강연을 듣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인스타에 대해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으로 저녁에 일을 마치고 2시간 가까이 먼 길을 가서 듣게 되었다.
강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당혹감에 몸이 굳어졌다. 당연히 다른 강연처럼 사람들이 일정 수 이상 올 거라 생각했는데 인스타 강연을 듣겠다고 참여한 사람이 나 포함 3명이었다. 한 분은 주최하신 대표님, 한 분은 함께하는 운영진, 그리고 인스타를 하시면서 좀 더 활성화하길 원하시는 카페 사장님이었다. 얼어붙은 몸을 끌고 강연장에 들어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눴다.
인스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나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강연이었지만 강연을 듣고 나니 인스타를 배워보겠다고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속해 있는 모임은 마케팅과 브랜딩에 관심을 갖고 브랜드를 공부하고자 하는 20대 후반에서 30~40대가 주류였는데 대부분 인스타를 카톡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연령대였던 거다.
어찌 됐건 모르면 배우면 되는 것이니 최대한 많은 걸 배워가자는 생각에 열심히 필기하면서 들었다. 강연자 분께서 풍부한 자료로 인스타그램의 전반적인 내용과 여러 플랫폼 상황에서의 위치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셨다.
강연으로 한껏 마음이 고무되어 다시 인스타그램을 시도해 보았다. 설명은 많이 들은 것 같은데 막상 시도하려니 내가 어떤 콘텐츠로 인스타그램을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이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 계정만 구경하다 흐지부지 되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이번에 다시 인스타그램에 대한 짧은 강연이 있어서 배우게 되었다. 지난번 인스타 기초 강연과는 달리,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최신 정보라 그런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모였다. 인스타그램의 새로운 방향과 릴스 사용 현황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릴스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할지 등 핵심 내용을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 릴스 강연을 듣고 나서 이번에는 기필코 인스타그램을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것저것 하지 말고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배우자는 마음으로 릴스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릴스를 하려고 하니 또다시 부딪히는 문제가 있었다. 내 얼굴 공개였다. 영상 플랫폼에서는 대부분 자신 있게 얼굴을 공개하고 영상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것도 싫어하고 찍히는 건 더더욱 싫어하는 내가 자연스럽게 얼굴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영상을 찍을 수 있을지가 제일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또다시 인스타그램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20대 프로젝트 중 하나는 요즘 20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 플랫폼에 도전하는 것이다. 많은 플랫폼 중 굳이 인스타그램을 하려는 이유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 그나마 내 수준에 하기 쉬워 보였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도 않았을뿐더러 내가 영상에 직접 나오지 않으면서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콘텐츠도 찾지 못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며칠을 보내던 중 집을 둘러보다 거실 벽에 꽉 찬 책장이 보였다. 특히 내가 10대 후반부터 버리지 않고 보관했던 책들이 눈에 띄었다.
주로 1990년대 초반의 책과 더 오래된 것 중에는 1980대 후반의 책들도 있었다. 단풍 든 낙엽처럼 노랗게 빛바랜 책들이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볼 수 없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옛날 책에 관심이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그래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카페나 그림, 요리, 여행 등 취미생활을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면 지금은 볼 수 없는 옛날 책들을 소개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소개하는 영상이니 굳이 내 얼굴을 찍을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나만의 콘텐츠 주제를 찾고 나니 마치 인스타 계정에서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라도 된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강연을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릴스 사용법 익히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동영상은 찍지도 못하고 템플릿이라는 것을 만들고 텍스트를 입력하느라 식사도 걸러가며 연습해야 했다. 장면마다 다른 텍스트를 입력해야 하는 데 편집 방법을 몰라 여러 장면에 동일한 텍스트가 나오기도 했다. 인스타 릴스는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완성된 영상을 다시 수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오타가 많고 편집이 잘못되어 수정하는 법을 한참 찾다가 결국 못 찾아 삭제하고 다시 만들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어설픈 릴스 영상을 만들었다.
내가 <백조의 호수>라 비판했던 그 인스타그램에 드디어 첫발을 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