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동안 운영하던 공부방을 정리하고 나니 시간적 여유가 생겨 그동안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던 여러 강연을 들으러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강연을 들을 때 한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근시와 난시가 심해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니는데 나이가 들면서 노안이 생겨 돋보기를 필수품으로 챙겨야 했다. 공부방을 운영할 때는 좁은 거실 안이라 돋보기만 쓰고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문제는 강연을 들을 때다. 강연 자료를 볼 때는 돋보기로 봐야 하고 앞에 강연자와 PPT를 보려면 원래 쓰던 안경을 써야 했다. 그렇다고 매번 돋보기와 일반 안경을 수시로 바꿔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온전히 강연에 집중해야 하는 데 안경을 번갈아 쓰는 것이 강연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일반 안경을 쓰고 안경테를 코 끝에 최대한 내려 각도를 맞춰 강연자료가 보일 수 있도록 조절을 했다.
하지만 이것도 매번 하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초점렌즈라는 것을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안경점에 갔다. 안경점 사장님으로부터 다초점렌즈의 종류에 대해서 긴 시간 동안 설명을 들었다. 20~30만 원 저가렌즈부터 300만 원 이상의 고가 렌즈의 장담점을 들었다. 안경 사장님은 300만 원짜리 렌즈를 쓰고 있고 매우 만족하지만 너무 고가라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내게는 50~60만 원대 렌즈를 권해 주셨다.
저가형 렌즈를 쓸 경우 다초점렌즈의 특성상 아래를 볼 경우 보이는 면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여서 울렁거림이 심하다는 이유인데 그러한 단점을 어느 정도 줄이면서 가격 부담까지 줄인 렌즈가 50~60만 원대 렌즈라는 것이다. 단점을 최소로 줄인 것이지 여전히 울렁거림은 아주 조금씩 남는다는데, 내겐 50~60만 원 대도 고가 렌즈다. 이 고가의 렌즈를 구입해서 평생 쓰는 것도 아니고 일정 기간 이후 다시 바꿔주어야 하니 비용부담이 많이 되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다 요즘 유행하는 시력교정 수술을 받아야 하는 가 싶어 시력교정술을 알아보게 되었다.
한 의사 선생님이 카스텔라 세 개를 놓고 라식, 라섹, 스마일 라식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시는 유튜브 동영상을 남편이 보여 주었다. 아무리 카스텔라로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어도 실제 각막이 머릿속에서 떠올라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들 시력교정술을 받는 추세라고 하니 차라리 불편한 안경보다는 시력교정술을 해보자고 하던 차에 근시와 난시가 심해진 딸부터 수술을 받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강남의 유명 안과에 갔다. 상담을 받고 딸이 먼저 수술을 받게 되었다. 딸이 받은 수술은 스마일 라식이다. 딸이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동안 내가 돌봐주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수술비도 비싸고 무엇보다도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나는 겨울에나 수술을 받겠다고 했다. 그리고 딸이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수술 전 상담을 받을 때는 사람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거의 통증이 없고 회복도 빠르다는 설명을 들었다. 딸도 무거운 안경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는지 오전에 상담을 받고 바로 당일 오후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에 들어간 후 20분 후에 나왔다. 긴장하고 떨었는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약 처방과 이후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자 긴장도 풀리고 마취도 풀렸는지 딸이 통증으로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픈지 가만히 누워있지도 못하고 서서 안절부절못했다. 아프면 진통제를 먹으라고 하여 진통제를 먹었지만 통증은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수술 첫날 통증이 심하자 딸이 심각하게 한마디 한다.
“엄마, 엄마는 수술받지 마.”
“그렇게 아파?”
“응”
딸의 말을 듣고 시력교정술에 대한 미련은 싹 사라졌다.
3일 후 통증이 사라지고 시력이 좋아져 잘 보이자 통증에 대한 기억을 잊은 듯 딸이 다시 말을 바꿨다.
“엄마도 꼭 수술해.”
“생각해 보고...”
딸의 말을 들어도 난 이미 수술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터였다.
사실 난 겁이 많다. 특히 주삿바늘에 대한 공포가 있어서 뾰족한 바늘을 보면 심하게 공포를 느낀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 방송 뉴스에서 백신접종에 대한 기사가 나올 때 맨살에 주사 바늘로 찌르는 장면이 갑작스럽게 나오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런 장면을 보면 현기증이 난다. 누구나 병원 치료에 대한 공포가 있겠지만 난 과민한 편에 속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20대 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와 동갑이었던 외사촌과 함께 점을 빼러 피부과에 갔던 적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점이 없이 깨끗한 피부를 갖고 싶어 했던 지라 상담을 받고 점을 빼는 시술을 받기로 하고, 사촌이 먼저 시술을 받았다. 나는 바로 문 밖에서 대기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간히 사촌이 아파서 “아, 아~”라며 통증을 참느라 끙끙거리는 소리를 다 듣고야 말았다.
‘좀 아픈가 보네’라고 생각하는 데, 마침 의사 선생님 목소리도 들려왔다.
“잘 참내요.”
아, 그 한마디에 놀라, 나만 그날 점을 빼지 않고 그냥 병원에서 나왔다. 그 통증을 참을 자신이 없었다. 그냥 겁이 났다.
이후 5~6년이 지나서 유난히 얼굴에 점도 많고 잡티가 많아 다시 한번 도전하기로 했다.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창구에 접수와 수납을 담당하는 여직원의 얼굴이 나보다 점이 훨씬 많고 컸다. 이제는 레이저 통증에 대한 공포보다 도대체 이 직원의 얼굴에는 빼지 않은 점들이 왜 이리 많은 걸까?라는 생각에 상담만 받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안과에도 안경을 쓰시는 안과 선생님들이 있다. 안경 쓰는 의사 선생님의 예를 들어 시력교정술에 대한 부작용을 얘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번 딸의 수술과 관련해서 여러 설명을 들어보니 시력교정술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희망적인 상황이고 각막의 특성상 시력교정술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 시력이 다시 나빠졌을 경우 각막의 상태에 따라 수술을 다시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다시 하지 못해 이후 안경을 써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노안도 심해 수술이 좀 더 복잡한 렌즈 삽입술을 해야 하고 수술비도 훨씬 비싸다고 한다.
지금 딸은 수술 후의 통증도 없어졌고 시력도 회복되어 안경 없이 편하게 지낸다.
딸이 수술 후 겪었던 그 통증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억한다. 나의 통증처럼 선명하다. 20대 딸도 참고 수술을 받았는데 겁 많은 나는 그냥 지금의 불편함을 좀 더 감수하기로 했다.
‘난 역시 안경이 더 잘 어울려’
용감한 20대가 되지 못한 겁 많은 50대의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