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운전면허증을 따고 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불시에 음주단속을 할 때 검사기에 대고 입으로 불어 보는 거였다. 누군가는 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이 운전하는 차 보조석에 타고 갈 때마다 음주 단속을 만나면 내가 불어 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해하곤 했다. 운전면허가 없었을 땐 뭔가 운전자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절차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술을 안 마시면 경고음이 울리지 않을 것인데 그래도 술을 마시지 않고도 단속기의 경고음이 울릴 수 있을까라는 이상한 호기심이 발동하곤 했다.
드디어 필기 합격, 1차 실기 합격 후 주행에서 1번 실패하고 2번째로 합격했다. 하지만 운전면허를 따도 곧바로 차를 몰고 자유롭게 다닐 수는 없었다. 당시 내가 사는 곳은 서울에서도 상당히 차가 많이 다니고 복잡한 곳이었기 때문에 쉽게 차를 몰고 다니지 못했다. 그러니 음주단속을 하는 밤거리에 차를 혼자 몰고 다니는 것은 이후로도 한동안 불가능했다.
어느 정도 운전이 익숙해지고 나서 음주단속에 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술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무척 떨었다. 잘못 불어서 다시 불라하면 어쩌지? 경고음이라도 울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하지만 나의 상상 속의 일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고, 이후 음주 단속에 응하는 것도 떨지 않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상상만 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어제 서울에서 저녁 늦게까지 강연을 듣고 나서였다. 마침 딸의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과 비슷해 피곤한 딸을 자취집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딸이 있는 종로로 서둘러갔다. 낮부터 저녁까지 연이은 강연을 듣느라 식사를 하지 못해 중간에 사두었다가 제대로 먹지 못한 빵을 운전하면서 먹었다. 당이 떨어지면 딸을 자취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경기도 남부까지 운전하고 오는 길이 몹시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먼저 먹다 남은 버터프레첼 반쪽을 먹고 올리브치아바타 5분의 1쪽을 먹고 나니 딸이 있는 종로 3가에 도착했다.
딸을 태우고 다시 차를 돌려서 가는 데 종로 3가 뒷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다.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도로변에 술집이 가득했고 사람도 너무 많았다. 인도까지 술집 테이블로 꽉 차 그 길은 거의 대낮처럼 환했다. 그 구역은 사람도 취하고 도로도 취하고 불빛마저도 취한 듯 번쩍거렸다.
딸과 나는 술판으로 가득 찬 거리를 보고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다. 내비게이션만 믿고 들어왔는데 술 취한 사람들이 택시를 잡느라 차도를 막고 있었다. 300여 미터 밖에 안 되는 도로를 통과하는데시간이 많이 걸렸다. 술 취한 거리를 빠져나와 종로 3가에서 종로 5가로 진입했다.
정지 신호에 걸려 정차하고 있는데 멀리서 교통경찰이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다. 내 차 앞에 3대의 차가 검사를 받고 내 차례가 되었다.
‘속으로 오랜만에 음주단속을 만나보네’라며 여유 있게 교통경찰의 단속에 응했다.
“입으로 불어 보세요”
“후후”
“삐~삐삐 삐삐삐....”
‘어, 이게 무슨 일?’
갑작스러운 경보음에 나도 놀랐지만 교통경찰도 놀라는 눈치였다.
옆에 있던 딸이 놀라면서 묻는다.
“엄마, 술 안 마셨잖아. 혹시 생크림빵 먹었어?”
“엥? 생크림 빵이라니?”
“혹시 빵을 드셨습니까?”
경찰도 똑같이 묻는다.
‘아니, 내가 빵 먹은 걸 어떻게 알고...’’
컵홀더에 쌓인 빵봉지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일단 경고음이 들리면 재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차를 운전하여 경찰차가 있는 곳까지 가서다시 한번 불어 보았다. 여전히 경고음이 울렸다.
빵을 먹고도 경고음이 울리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물로 입 안을 헹구고 다시 검사하면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차에서 나와종이컵에 가득 따라 준 물로 입 안을 여러 차레 헹구었다.
입을 헹구는 동안, 나는 차도 중안 선을 등지고 서 있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야밤에 경찰차와 음주단속 경찰관 옆에 서있으려니 뒤통수에 느껴지는 지나가는 차들의 시선이 몹시 따가웠다,
다시 한번 검사기를 가까이 대고 불어 보았다.
“삐~”
“정상입니다, 안전 운전하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지도 모른채 형식적인 인사말을 건내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 차로 돌아왔다.
내 차 운전석에 털썩 주저앉듯 앉고 나니 그제야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뭔 일?”
“엄마, 크림빵을 먹으면 음주단속에 걸린다는 얘길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
“그래? 근데 엄마는 크림빵이 아니잖아. 버터프레첼과 올리브치아바타를 조금 먹었는데?”
딸의 자취집까지 가면서 버터프레첼과 올리브치아바타의 어떤 성분이 알코올과 흡사한지 뇌피셜을 가동했다.
딸은 버터프레첼의 버터 성분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버터로 크림을 만든다 해도 버터에서 알코올 성분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치아바타라면 먹은 양이 너무 적었다. 아주 적은 양으로 음주단속에 걸릴 정도라면 치아바타 빵을 한 번에 여러 개 먹으면 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 버터프레첼과 올리브치아바타를 만드는 과정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두 빵에서 내가 음주단속에 걸릴만한 단서를 찾고 싶었다.
찾아보니 버터프레첼에는 생버터를 빵 위에 햄처럼 올리는데 고급빵의 경우 발효버터를 쓰는 경우가 있고, 프레첼과 치아바타 모두 발효과정을 거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빵반죽이 발효하는 과정에서 탄수화물을 분해하여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익지 않은 빵 반죽 얘기고, 빵 반죽이 오븐에서 뜨겁게 구워지면 알코올이 모두 날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빵이 구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알코올이 남았던 건가? 게다가 빵을 한 개 다 먹은 것도 아니고 손바닥 만한 치아바타 5분의 1쪽과 버터프레첼 반쪽을 먹고 음주단속에 걸릴 정도면 두 빵을 다 먹으면 만취상태라고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