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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 Oct 21. 2023

사르가소 바다에 빠지면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의 유명한 묘비명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란 영문에 대한 잘못된 의역이라고 한다. 직역을 하면 “오래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지”, “충분히 오래 살았다면, 이런 일이 언젠가는 일어날 것이라는 걸 알았어.” 정도의 의미이다.      


국민학생 때 처음으로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접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손바닥만 한 유머집에서 봤는데,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말로 정확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이 번역의 역사가 매우 긴 것 같다. ‘우물쭈물’이라는 단어만 튀어나와도 버나드 쇼를 떠올리니 최초의 번역자가 심하게 “의역”을 했다지만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사람들의 뇌에 각인을 시키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어쩌면 유머와 위트를 사랑한 작가였으니 버나드 쇼가 생전에 알았다면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의역을 더 반기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얘기하게 된 이유가 있다. 최근 들어 맥락 없이 이 말이 자주 떠올랐기 때문이다. ‘맥락 없이..., 왜지?’라고 질문하면 이내 마음속으로 들릴 듯 말 듯 꺼져가는 소리가 답으로 돌아온다.      


‘알면서, 왜 그래?’

 

나의 방점은 '우물쭈물‘이다.     


2년 전 20대 프로젝트라고 선포했다. 50대를 20대처럼 보내고 60대와 70대는 30대와 40대처럼 살아가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다. 마침 학생도 줄어들고 있었기에 좀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자고 15년 동안 운영하던 공부방도 정리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사실, 3개월 전에는 기대가 컸다. 공부방 사업을 정리하면 시간도 많이 늘어나서 무언가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평일도 휴일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감격’이라는 표현에는 어떠한 과장도 없다. 달력에서 2~3일 여름방학과 빨간 날을 빼고는 그동안 평일에 쉬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휴일 같은 평일을 만끽하고자 벙개 여행도 다녀왔다. 여행지 사진을 이용하여 SNS 짧은 동영상도 만들어 보았다.      


그동안 참여하고 싶었던 강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매번 시간에 쫓겨 지각하거나 아예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마음 편하게 다니면서 배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브런치 글도 전보다 자주 쓰고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매일 글을 쓰는 작가님들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쓸 시간이 생겼고 읽고 싶었던 책도 집중해서 읽을 시간이 생겼다.     


이런 시간을 만끽하면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릴스 만드는 연습도 틈틈이 했고 딸과 함께 요즘 핫하다는 곳을 찾아다니며 일명 ‘브랜드 현장체험학습’도 다녀봤다.     


15년 넘게 집에만 갇혀 살다가 여태껏 가져 보지 못했던 시간을 누렸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 용어로 ‘현타가 왔다’.     


말이 ‘20대 프로젝트’지 난 3개월 동안 경제 활동 없이 그냥 놀았던 거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름 마케팅과 브랜드를 배운다고 유료 수업도 들으면서 공부도 했지만 막상 현타가 오니 호기롭게 외쳤던 ‘20대 프로젝트’의 ‘20대’ 청춘에서 경제활동도 하지 않는 50대 중반의 평범한 아줌마로 돌아온 것이다.      


공부방 사업을 정리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났을 즈음 내 사정을 잘 아시던 한 권사님께서 호기심 반 걱정 반 안부를 물어봐 주셨다.     

“경제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멈추면 많이 힘들지 않아? 소득이 많이 줄면 부담이 클 텐데...”

이때까진 현실 파악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던지 그 질문의 답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리 보였다. 난 지금 백수다. 경제 활동을 멈췄으니 소득이 없다. 전에는 혼자서 생활비 정도는 벌었는데, 이 상황이 지속되면 20대 프로젝트고 뭐고 다시 소득이 생기는 일을 급하게 찾아야 한다.  하고 있는 일은 많은 데, 딱히 소득으로 연결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자존감마저 떨어졌다.      


9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브랜딩 프로세스'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함께 참여하시는 대표님들 모두 나름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신다. 지난주에는 브랜딩 프로세스 과정 중 핵심 자원과 핵심 활동을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의 핵심 자원과 핵심 활동이 무엇이냐는 강사님의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나만 백수?’ 갑자기 나의 모든 정체성에 물음표가 달리면서 머릿속이 백지상태가 되었다.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함께 참여한 다른 대표님들이 나의 핵심 자원이 ‘15년 동안 공부방을 운영한 경험’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4주 차 수업 때까지는 배운 이론을 바로바로 나의 업에 적용하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공부했다. 자신감도 충만했다.      


갑자기 현타(누가 만든 말이지 쓸 때마다 이 절묘한 의미 조합이 기가 막히다)가 오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존감이 떨어지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 온 것이다.


나의 핵심 자원이 공부방을 운영했던 경험이라는 조언을 듣고 나니 그제야 내가 가진 경험을 나누기 위해 블로그 활동을 시작했고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인스타 릴스를 만들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핵심 자원을 바탕으로 ‘글쓰기’라는 핵심 활동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나도 핵심 자원이 있었고 핵심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득도 없고 딱히 소속도 없으니 어느 순간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나의 계획서’를 일순간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3개월 전에도 2년 전에도 이런 순간이 하나의 위험으로 내게 오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위험이 떠오를 때마다 늘 이 시를 읽곤 했다.     



위험들

                      자넷 랜드     


웃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우는 것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에 휘말리는 위험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과 꿈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는 것은 순진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사는 것은 죽는 위험을,

희망을 갖는 것은 절망하는 위험을,

시도하는 것은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위험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이기에.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하므로.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있을 것이나

배움을 얻을 수도, 느낄 수도, 변화할 수도,

성장하거나 사랑할 수도 없으므로.

확실한 것에만 묶여 있는 사람은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와 같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오직

진정으로 자유롭다.     


- <마음 챙김의 시> 에 수록, 류시화 엮음


이 시를 읽으며 다짐도 했다.     

<‘아무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 확실한 것에만 묶여있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아직도 마음만은 젊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지금보다 더 젊다고 느끼던 시절 그때는 그저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 ‘고통과 슬픔을 피하는’ 방식으로 사느라 나에게 당면한 위험들을 용기 있게 감수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2022년 8월에 적은 글      


하지만 막상 위험을 겪으면, 겪을 때마다 예측 불가의 상황이다. 그러니 그때마다 나의 마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어지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모든 삶은 흐른다 – 바다에 관한 작은 철학>이란 책을 다시 펼쳐 보았다. 우연찮게 ‘사르가소 바다’에 대한 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바람과 해안이 없는 사르가소의 바다처럼 에너지와 희망을 잃어버린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마치 바람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는 배처럼 말이다. 사르가소의 바다는 우리의 삶에 비유하자면 ‘후회’와 같은 것이다. 후회에 사로잡히는 순간, 머리는 복잡해지고 행동은 느려진다. 그래서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정처 없이 서성이게 된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를 하느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르가소의 바다는 후회하는 우리의 감정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바다라고 할 수 있다.”     


“항해를 한다는 것은 길을 정해 따라가는 것이니 확신이 들지 않아도 묵묵히 따라가 보는 것이다.... 내가 이미 해버린 과거의 행동을 자꾸 곱씹고 후회하지 말자, 과거의 일에 미련과 환상이 남아도 이미 걸어온 길이다.... 애써 눈을 감고 부정하거나 억지로 변명을 찾지 말고 부족했던 점을 인생의 시나리오 안에 포함시켜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면 그뿐이다.”     

- <모든 삶은 흐른다 Petite Philosophie de La Mer>, 로랑스 드빌레르


나 역시 잠시 사르가소의 바다에 갇혀 있었다. 너무 오래 갇혀 힘이 다 빠질 뻔했다.

 ‘사르가소 바다’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계속 그 바다에 머물다 결국 그 안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곳이 ‘사르가소 바다’라고 인식하고 나면 빠져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내가 빠졌던 위험과 바다를 인식하고 나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다시 항해하기 위해 닻을 올리자.           



글을 쓰는 과정은 자기 긍정의 시간이다.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 안의 생각과 감정을 긍정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긍정의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면 ‘자기부정’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쓴 글들을 타자의 입장이 되어 읽고 고치는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자기부정의 시간은 내가 쏟아낸 생각과 감정들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기에 쉽지 않은 시간이다.     


자기 긍정과 자기부정의 시간을 통해 하나의 글쓰기가 완성되고 이 과정을 통해 나의 내면도 성장해 간다.      

앞으로도 이런 위기는 계속 닥칠 것이다. 또다시 사르가소의 바다에 갇힐 수 있다. 매번 느끼는 두려움은 같으면서도 다를 것이다. 그때마다 글쓰기를 통해 객관화하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나아가는 것이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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