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새 마침내 둥지를 떠나다

아들의 첫 번째 독립

by 스몰토크

아들이 대학을 다른 주(province)로 가게 되면서 집을 떠나

저절로 독립(獨立)을 하게 되었다.


홀로서기를 위해 새로운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비상(飛上)의 날개 활짝 편 채 긴 여정을 떠나는 아들의 출발이 대견하기만 하다.


이곳에서는 아이가 자라면 대부분은 경제적 독립을 한다.

일정나이가 되면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안다.

말하지 않아도 부모의 집을 떠나 렌트비를 절약하기 위해 친구들과 집을 셰어 하기도 하고,

자신의 학비와 생활비도 스스로 마련하느라 자주 휴학을 하기도 한다.


오래전에 재미있는 모 회사 광고를 본 적이 있다.

집을 떠나 독립할 생각은 않고 게임만 하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가 내린 극약처방으로

"이걸 줄 테니 먹고 떠나라"는 무언의 압력과 함께

아이가 좋아하는 스파이시 치킨 랩 샌드위치를 사 온다.


천진난만하게 좋아라 하면서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에게 미리 싸놓은 짐을 보여준다.

굳투고(good to go)를 외치는 부모님과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눈치를 챘는지

꼭 떠나야 되나요?를 말하듯 "굳투고"? 눈치 보며 반문(反問)하던 아이의 표정.


때는 이때다 승기(勝機) 잡은 용사들처럼

다시 한번 쇄기 박듯 명쾌하게 목청 높이고 둘이 합창하며 "굳투고"를 외친다.

그 와중에 샌드위치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떠나겠다 결심했는지

속없는 아이는 그걸 또 손에 들고는 짐을 실은 택시에 실려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면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다.

당시에 황당해하는 아이의 표정과 모습을 보고 엄청 웃으면서 본 기억이 있다.


결혼 전까지는 부모의 보호하에 함께 사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우리의 어릴 때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금수저로 태어난 것도 아니면서 먹고 입고 재워주고

대학 등록금은 물론이고 결혼 비용까지도 모두 대 주다니

이 얼마나 불합리한 일인가?

그 짐을 부모님께 다 지우고 받기만 하면서 살았던 철없던 지난날이 반성된다.


아들은 대부분 이곳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타주(他州)로 자진 유학을 떠난다.

같은 대학을 가는 친구가 없어 당분간은 혼자 생활해야 한다.


자신의 꿈을 위해 스스로가 결정해서 떠나는 것이니 우리 욕심으로 붙잡을 수도 없는 일이다.

새로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

처음 이민 간 것처럼 홀로 적응해야 할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아직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우리는

집을 떠나 홀로 지내는 것이 처음인 아들이 스스로도 잘 해낼 수 있도록

이런저런 기본적인 준비를 해 준다는 우리 마음대로의 이유를 대며

학교가 있는 곳으로 아이를 따라 떠난다.


아들은 기숙사 대신 비용이 비슷한 작은 스튜디오에서 지내기로 한다.

비좁은 그곳에서 셋이 엉켜 자고, 먹고, 필요한 물건들 사다 나르고,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아들이 다니게 될 학교도 가보고

주변 환경은 어떤가 둘러보기도 하면서 나름 여행 온 듯 함께 시간을 보낸다.


시간은 참으로 야속하다.

우리의 마음을 알리 없는 이별의 순간은 연착(延着)도 안 하고 모범생임을 과시하듯

정확한 시간에 맞춰 결국 오고야 말았다.


서로 쿨 한 척 인사를 나누고 방을 나선다.

우리가 떠나면 혼자 남아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이곳에서

외롭게 지낼 아들을 생각하니 왜 이렇게 안쓰럽고 짠한지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아이만 방에 남겨두고 와야 되는 착잡(錯雜)한 마음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데

"잘 지내 아들" 하면서 문을 닫으려는 찰나 그렁그렁 붉어지는 아이의 눈을 보았다.

몸으로나 나이로나 다 자란 것 같아도 우리랑 헤어지는 이 순간이 슬퍼지는 건

아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만 내 눈과 가슴이 가만있을 리 없다.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높은 둑으로 겨우 막아놓고는

꾹 참고 애써 못 본 척 웃으며 손을 흔들고 얼른 문을 닫는다.


잘했어! 잘한 거야! 어떤 위로를 건넬 틈도 없이

참고 있던 나는 돌아서서 한걸음 떼면서부터 이미 통제불능(統制不能)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택시 안에서, 공항 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집에 와서까지

폭풍같이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아들을 군대 보내면서 꺼이꺼이 우는 어미의 심정이 이런 걸까?

헤어지는 슬픔이 깊어 울고,

이제껏 꼭 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놓게 되는 무서운 상실(喪失)로 인해 겁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며칠 동안은 아들 없는 빈 방만 들여다보며 얼굴이 퉁퉁 부운 채로

아무것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면서 보낸다.


처음 유치원에 입원(入園) 할 때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자신을 빼앗듯 데려가는 선생님을 보고

항변(抗辯)하듯 소리치며 운다.

엄마가 손을 놓으려 하면 천하가 무너져 내리는 줄 알고 잡고 있던 손을 더 꼭 잡는다.

이제는 내가 유치원 아이가 된 듯하다.


아들과 분리(分離) 되는 일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먹먹한 슬픔이다.

분리 불안은 아이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듯하다.

어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두렵고 아프다.


슬픔을 넘어 총 맞은 듯 뻥 뚫려 구멍이 나 버린 가슴속에

아들 떠난 빈자리는 쓸쓸하고 공허하기만 하다.

이 마음 들킬까 꼭꼭 부여잡고 온기 가득했던 빈 둥지만 자꾸 들여다본다.


아이가 어릴 때는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육아 때문에 힘들어서 하는 말일테다.


아이와 함께 보낸 그 소중한 시간들이 얼마나 짧은 순간이었는지...

잠깐 고개 돌리면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듯 빠른 속도로 사라져

찾느라 엄마를 기절시킬 정도로 놀라게 만들던 때만큼이나 급하게

아이들의 성장시계는 째깍째깍 쉼 없이 달려가고,

아이와 씨름하느라 지쳐버린 엄마가 한숨 한번 크게 쉬고 나면

어느새 훌쩍 자라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부모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듯이 아이들도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이가 자신의 삶의 방편(方便)을 찾아 떠나는 순간이 다가오면

최선을 다했음에도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이 모든 걸 아직은 알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일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놓기까지는 많은 연습과 시간이 필요하다.


군대를 보낸 엄마가 아들이 첫 휴가를 오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고

그다음 휴가 나오면 고무신 신고 나가고

그다음에는 또 왔냐?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내게도 언젠가 아들의 독립이 당연함으로 여겨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이도 나도 보내고 맞이하는 일이 익숙해질 테니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시간일 것이다.


이제 방학이 되면 집으로 돌아올 아이를 기다리는 것도 작은 일상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평소에도 아들에게 자주 해 주던 말이다.

돌아갈 곳은 단순히 장소만의 의미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아들에게는 우리가 그리고 우리 집이 바로 "돌아올 곳"이다.


언제든 아들이 오면 그리고 어쩌다 잠시 들른다 해도

낯설지 않은 평안함으로 쉬어 갈 수 있게 항상 엄마 미소로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해 줄 거다.


주인 떠나 온기 사라진 썰렁한 방에는 내 사랑으로 방안 가득 따뜻함이 항상 넘쳐날 수 있도록

기꺼이 아들의 빈방 지킴이가 되어 주련다.


홀로서기를 통해 새로운 곳에서 비상(飛上)의 날개 활짝 펼치고

청운(靑雲) 꿈을 향한 거침없는 날갯짓을 시작한 아들의 호기로운 출발을 손뼉 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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