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문자교환
아들이 독립을 하고 집을 떠나게 되면서 거의 매일 1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카톡으로 문자 교환을 한다.
엄마와 아들이 문자로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도대체 그 시간 동안 무슨 말을 하는데?
얼굴 보고 해도 그 정도는 못하겠다.
다들 그렇게들 말하면서 질투인지 염려인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아들의 배려가 없다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황송한 은혜로 우리의 카톡은 일상이 되었고
오랫동안 서로의 안부를 그것도 영어로 교환을 해 오고 있다.
원어민과 말할 기회가 별로 없는 나를 위한 일종의 사려 깊은 배려인 셈이다.
아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왔으므로 어느 정도 한국어로의 언어 습득이 되어 있는 상태다.
집에서도 우리끼리는 온전히 한국말로만 대화를 하기 때문에 영어와 한국어를 거의 완벽하게 한다.
한국어와 영어를 할 때의 억양이 틀려지긴 하지만 두 언어의 발음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내가 영어를 고민할 때마다 “저한테 영어로 말해 보세요”라고 하는데
괜히 쑥스럽기도 하고, 영어를 못하는 엄마의 못난 모습을 들키기도 싫다.
당연 서툴 수밖에 없는 실력으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행태는 더더욱 보이고 싶지 않다.
아들이 어릴 때는 내가 모든 걸 가르쳤는데
시간이나 환경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바뀌게 된 역할 변화로
이제는 내가 아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어린 아들 눈으로 보았을 때 완벽할 수밖에 없었을 엄마의 존재가
사실은 한없이 부족했구나를 깨닫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았다.
몸이 커지면 생각도 함께 자라는 아이가 더 이상은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것처럼,
이미 다 들켜버렸을 텐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듯,
감추고 있던 나의 모자란 부분들을 스스로 들춰내 폭로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데 그랬다.
원어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이 좋은 기회를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날려 버렸었다.
하지만 영어는 역시 어렵다.
특히나 우리처럼 나이가 든 사람들은 단어 하나 외우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영어를 못하면 바보 일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그냥 바보로 살래 할 수는 없으니
공부를 해 보기로 한다.
영어권에 살면 생활 자체가 영어 일 텐데 굳이 공부를 따로 해야 하나? 하겠지만
해야 한다.
그래서 시작해 본다.
예전에는 많은 돈을 내고 학원엘 가야만 수강(受講)이 가능했지만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로 요즘은 컴퓨터만 켜면 그 속에서 많은 영어 강사들이
저마다 자신의 비밀 노하우들을 공짜로 알려준다.
한국에서도 요즈음 영어 잘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진 이유일테다.
지구력(持久力)은 자신 있으니 매일 같은 시간에 시작해서, 같은 양의 시간 동안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천천히 공부를 한다.
거북이 경주처럼.
캐나다에 살면 저절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영어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영어공부를 한 시간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다.
누구는 1년 반 만에 또 어떤 이는 2년 만에 들린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인지 그것도 아닌 듯 쉽다.
평소에도 카톡으로 대화를 해 왔지만 영어로는 공부를 시작하고, 한 2년쯤 되었을 때
복습을 한다는 차원에서 아들의 권유로 하게 되었다.
전화로 하거나 얼굴을 직접 보면서 영어로 말을 하는 것은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으니
우선 문자로 시험 삼아해 보기로 한다.
시작은 서툴 테니 역시 긴장이 된다.
스승이 아들이라서 더 떨린다.
다른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을 해도 이렇게나 가슴이 콩닥거리지는 않을 듯싶다.
나의 허접한 영어 실력으로 과연 그게 될까?
타이프 치는 속도도 요즘 아이들과 달리 빠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없다.
다섯 개의 손가락 모두를 사용한다 해도 독수리 타법에 가까운 템포로는
속도감에서도 완전히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방해꾼은 저리 가라 물리쳐가며 열심히 따라가 보련다.
드디어 처음 영어로 문자 하던 날
척하면 착해야 하는데 나는 과정이 필요하다.
먼저 문자로 보내온 영어를 읽고 해석부터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머릿속으로 내가 보낼 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이 모든 작업이 끝나고 나면 겨우 핸드폰에 한 글자씩 새가 부리로 먹이를 쪼듯이
똑똑똑 소리를 내면서 적는다.
그것도 아들의 긴 문장에 비해 단답형으로 답하듯, 될 수 있는 한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나의 글이 아들에게 가 닿는 시간은 우리가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이나 길고도 멀다.
당연 느릴 수밖에 없다.
시험 보러 가도 이 보다 더 떨릴까? 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지나친 극도의 긴장감으로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가물 가물한 한 시간 정도를
서로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들로 주고받는다.
부담스러웠던 순간이 겨우 끝이 났지만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다.
홀가분해질 틈도 없이 여유는 사치다
한 시간 동안의 공부를 평가받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합격 결과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안절부절 심사평을 듣는다.
"예상보다 괜찮은데요. 생각 이상이에요"라고 말해 준다.
"Are you serious?"
물론 아들이 나의 사기충천을 위해서 해 준 말이라는 걸 잘 알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그 말 한마디로 큰 위로를 받는다.
아무리 꾸준히 공부를 해도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 듯하고,
영어 실력은 제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는 것 같아 늘 조바심이 났는데,
오늘 아들의 칭찬 한마디로 자신감 급상승(急上昇)이다.
참 단순하기도 하지, 그걸 또 믿는다.
긴 시간에 걸쳐 숙고하고 나름 심혈을 기울여 문장을 만들어 보낸다 해도
형편없는 영어문자에 틀린 단어와 문장이 얼마나 많을까?
영어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게 다 부족해 손 봐줄 것투성이고
자신이 뭔가를 해 줘야 하는 이런 시간이 또 얼마나 귀찮고 짜증 날 까만은
좋은 스승으로서 아들은 꼰대처럼 지적질하거나 틀렸다고 말하면서 고쳐 주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문자 하나 보낼 때마다 계속 끊기고
나는 선생님께 혼나는 학생처럼 틀린 걸 고치면서 신경 쓰느라 주눅 들어할 거고
그 귀한 시간을 몇 마디 나눠 보지도 못하고 마쳐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매일 일상을 주고받는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선생님과 공부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대화는커녕
서로가 지쳐 금방 싫증을 내고는 그냥 한국말로 하자고 했을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이런 불편한 과정이 없으니 대신 내가 좀 더 집중해야 한다.
답을 보내오면 빠르게 눈으로 스캔하고
그 내용을 통해서 이럴 땐 이런 단어를 쓰는구나,
이렇게 문장을 썼어야 되는구나를 스스로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일부러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들이 생긴다.
시간은 언제나 익숙함을 선사한다.
빠른 속도에 절대로 맞출 수 없던 내가 차츰 속도감도 늘고
홀로 공부하면서 암기했던 단어들과 긴 문장들을 사용하면서 대화가 점점 편안해진다.
혼자 공부하던 시절에 원어민들이 내가 외웠던 문장으로 이렇게 말하면 알아들을까?를
고민하느라 입안에서만 뱅뱅 돌고, 실제로는 쭈뼛거리느라 말도 못 꺼낸 채로 지나간 일이 많았다.
배웠던 문장 중에 이 걸 한 번 써먹어볼까? 과연~ 하고 아들에게 보내보니 바로 답을 해온다.
된다~ 통한다~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니 영작(英作) 속도도 조금씩 늘고
문자 보내고 받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된다.
여전히 많이 틀리고 미숙(未熟)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로 카톡을 주고받는 것은 이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쟁점의 문제가 있다.
그 정도 수준의 영어로 글이 아닌 말로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글로 하는 영어와 말로 하는 영어는 조금 다른 듯하다.
아직도 내 영어 말하기의 수준(level)은 검증되지 않은 채 미궁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래도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면서까지 복습할 수 있도록
기꺼이 도와준 아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입으로는 문자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도
문장 만들어 가는 능력과 자신감은 많이 키워진 듯하다.
가끔씩 한국인이 외국인과 대화를 나눌 때 웃는 모습을 본다.
한국인 특유의 친절함 때문이 아니라 영어에 자신감이 없어서 일 수도 있고,
분명 영어를 말하고 있지만 이상한 발음과 싼 티 나는 문장정리가 부끄러워 일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사람만 보면 피해 다니거나,
괜히 말하고 나서 어색해 바보처럼 씩 웃는 못난 모습도 보였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 잘 알아듣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들이 알려준 영어로 문자교환이라는 약효(藥效)는 명확했다.
엄마를 위해 기꺼이 명의(名醫)가 되어준 아들로 인해 나의 영어공부는 꽤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아들과 내가 함께 지내고 있다면
규칙적으로 매일 아들이랑 엄마랑 얼굴 보면서 자신들이 보낸 오늘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는 일이 쉽지 않을 수 있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조금은 특별한 우리의 상황이 핸드폰 안에 있는 작은 공간을 통해
자신의 안부를 전하도록 부추겼을 수도 있고,
우리의 언어가 전해주는 감정선을 너무 잘 알아서 말만 하면 바로 알아듣는 우리말보다는
번역하고 해석하느라 느낌이 한번 걸러지는 영어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꾸미지 않고
더 자연스럽게 대화가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확실히 우리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말도 영어로는 미묘하게 기분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해"는 낯간지러워 아들에게 대놓고 말하기 힘들지만
"love ya!"는 부끄러움이 훨씬 덜 한 지 말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은 듯하다.
안부를 전하고 영어공부도 한다는 일석이조의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긴 하지만
편지로 글을 주고받듯 매일매일 서로의 일상을 알리고,
때로는 흔들리는 그래서 아픈 청춘이라 힘들어하는 아들의 고민도 친구처럼 잘 들어주고,
비록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하찮더라도 작은 의견 하나쯤은 말해 줄 수도 있는 거니까
영어로 소통을 나눠보기로 한 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가끔씩 부딪히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이런 귀중한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허락해 준 아들의 고마움과
핑계김에 영어로 나누었던 우리의 잊을 수 없는 카톡 문자교환의 추억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