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손가락에서 본 낯선 반지

또 다른 의미의 이별 예감

by 스몰토크

어느 날 문득 아들의 손가락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낯선 반지를 보았다.

그 순간 또 다른 의미의 이별을 예감한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집으로 돌아오게 될 줄 알았다.

우리가 함께 가지 않고 따로 살기로 한 이유도 어차피 4년만 있으면 이곳으로 다시 와

여기서 정착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아들은 좀 더 크고 넓은 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펼치고 싶었나 보다.


대학원을 위해 큰 도시가 있는 다른 주로 또다시 옮기게 되면서 더 많은 기회를 찾아간다.

졸업 후에는 직장도 당연히 그곳에서 갖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우리랑 함께 살게 될 일은 점점 더 묘연(杳然)해질 수밖에 없다.


방학기간 중에도 인턴쉽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주말 끼고 며칠만 휴가를 내고 와 잠깐 머물다 간다.

맞이하고 보내는 일이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왔다가 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쓸쓸하기만 하다.


그냥 이곳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여기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고

나는 헤어질 때마다 겪어야 하는 이런 우울한 감정들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픈 마음 달래려 홀로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오랜만에 아들이 온다고 한다.

오면 먹이려고 좋아하던 몇 가지 음식들 콧노래 부르며 뚝딱 만들어 놓고

아들과의 행복한 재회를 기대하며 혹시 늦을까 서둘러 공항으로 향한다.


아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신이 나 들뜬 어린아이처럼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쏟아내며 수다를 떤다.


늘 그렇듯 아들이 오면 떨어지고 싶지 않아 껌딱지처럼 옆에 딱 붙어서 조잘조잘.

귀찮을 엄마의 그런 철없는 태도도 마다하지 않고 다 받아준다.

너그러운 아들과는 달리 나는 배려심이 없나 보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피곤할 아들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저 좋아서 방으로 쫄래쫄래 따라간다.


침대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평소처럼 오랜만에 본 아들의 손을 잡아본다.

한 손을 잡고 끌어다 내 손바닥 위에 얹어놓고는 다른 손으로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는데

찌릿찌릿 뭔가 이상 신호가 감지된다.


뭐지?

아들의 손을 스캔하듯 훑으며 살펴본다

그때 반짝하는 빛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너구나!

이때만 해도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평소에도 아들은 네 번째 손가락에 늘 묵주 반지를 끼고 있으므로

당연히 그것 일 것이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 몸에는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의 다섯 가지 감각 이외에 6감(sixth sense)이라고 하는

여섯 번째 감각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그 반지가 맞나?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호들갑스럽게 이리저리 양손을 만지며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아니다! 그거랑은 뭔가 다르다.

묵주반지는 오른손에 그리고 왼손에는 비슷한 듯 다른 반지가 끼워져 있다.

"어머머머!"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머릿속으로는 여러 생각들로 꽉 차 혼돈 그 자체지만 일단 아닌 척 침착하게 묻는다.

"이거~ 커플링 같은데?"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정한 아들은 순순히 시인한다.

"네! 맞아요"

What?


결국 올 것이 온 건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내 품에서 떠날 것을 막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닥치니 아무 말도 생각나질 않는다.


갑자기 한대 퍽 얻어맞은 느낌이다.

드디어 내 사랑이 떠나는구나!

사랑에 배신당한 충격이란 게 바로 이런 건가 보다.

아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맘속으로 소심하게 항변(抗辯) 해 보지만 이미 갈아타버린 사랑 앞에

내 사랑은 한없이 무력(無力)하고 초라하다.


독립할 때 와는 뭔가 다른 느낌의 이별이 예견(豫見)되어서일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서운해지는 마음과

내 안에 있던 커다란 무언가가 몸속에서 쏴악 빠져나가는 듯한 허무함으로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을 쳐댄다.


어떤 말을 해야 하지?

쿨(cool)한 척해야 하는데 좀처럼 마음이 허락하질 않는다.

나의 반응을 살피는 아들은 아들대로 이 어색한 분위기가 멋쩍어서 인가

한동안 우리는 둘 다 말이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이미 헤집어진 마음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어른인 척해야지.

잠시 나간 정신 줄 간신히 끌어다 부여잡고 냉정을 찾아본다.

"어떤 아이야? 어떻게 만났어? 언제부터 사귄 거야?"

말문이 트이니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집요하게 묻는다.


아들이 대학교 4학년 때 한국에 있는 모 기업에서 여름방학 동안

한 달 반 정도 인턴쉽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여자친구가 한국인?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울아들이 그렇게나 재주가 좋은 지 정말 몰랐다.


가끔 외국 여자친구를 데려오거나 외국인이랑 결혼한다고 하면 어쩌나를 고민한 적이 있다.

어차피 한국이 아니니 외국인 며느리를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의 지인들도 많이 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홍길동도 아닌데 시어머니 시아버지를 "어머니! 아버지!"라 말하지 못하고

애들 부르듯 이름을 부른다고 하고, 집에 전화했을 때 아들이 아니고 며느리가 받으면

"엄마!" 하고는 더 이상은 심도 깊은 한국말로 대화가 안 되니까 바로 아들을 바꿔준다고 한다.


어떤 이는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서 다리 꼬고 앉아

맞담배를 뻐끔뻐끔 핀다는 소리를 하면서 기막혀하기도 한다.


문화가 다르고, 사람의 성향마다 다 다를 수는 있다고 해도

우리 세대의 통념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이야기이고

그때만 해도 아이가 어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그냥 웃어넘겼는데

이제는 내 일이 되다 보니 그 말들을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한국말도 못 하고, 우리 문화도 잘 모르는 외국인 며느리와 소통자체가 안돼 애를 먹는 것보다는

여러모로 잘 통하는 한국인 며느리가 그래도 더 낫겠지.


자식이 나이가 들면 짝 찾아 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지인들 총동원해 그들 주변에서 괜찮은 한국 여자 사람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는 걸 많이 보아왔다.


우리가 그런 수고를 할까 봐 알아서 며느리감을 만들어 놓았으니 잘 된 일이다

생각하려 해도 야속한 마음이 자꾸 가슴을 쥐어짠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단지 반지만 보여 주었을 뿐인데 너무 앞서가는 건가?


장거리 연애도 마다하지 않고 서로 커플링까지 교환해서 낀 것 보면

아마도 아들은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하는 듯하다.

아이의 독립을 통해 이미 떠나보내는 일을 경험했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혼은 또 다른 별리(別離)의 마음인가 보다.


독립으로 몸만 떠날 때와는 다르게

결혼은 마음마저도 함께 가버리는 것 같은 좀 더 상처가 깊은 상실의 느낌이다.


어릴 때의 꼬물 대던 기억으로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쑥쑥 자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생각을 하다니.

다 컸구나!

대견하면서도 홀로 마음 상해 힘들어하는 나 스스로에게 이미 한번 호되게 겪었음에도

여전히 이별 훈련은 안 된 건가? 질책하듯 질문해 본다.

그보다는 잡고 있던 아들 손을 꼭 잡은 채로 아직은 놓고 싶지 않은 거겠지...


아이가 결혼을 한다고 해서 부모에게서 완전히 떠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섭섭하고 허한 지 알 듯 모를 듯 일만(一萬) 가지도 넘는 감정들이 교차(交叉)하면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시간이 지나면 이 마음 또한 스쳐 지나간 이야기로 남겠지만

지금은 계주(繼走) 경기에서 대기(待期) 중인 다음 선수에게 바통터치(baton touch)를 하듯

아들을 사랑하는 이에게 넘겨줘야 하는 엄마로서의 아쉬움과 허탈한 마음만 가득하다.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으로서의 삶을 계획하고

작은 반지를 통해 자신의 반쪽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무언이지만

사실은 대놓고 사랑을 공표(公表)하고 나서는 아들에게서

어른 엄마로서 마음정리를 다해 떠나오는 연습을 또 한 번 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예감한 또 다른 의미의 먹먹한 이별이 좀 더 가까이 와 있는 듯한 이 밤

복잡한 상념(想念)으로 뒤흔들려 버린 잠자리가 어지럽기만 하다.


내 마음속 심해 한가운데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는 깊은 슬픔 전해 들었나?

타들어가는 내 맘처럼 새까맣게 물들어버린 밤하늘엔 나를 위로하려고 나온 수많은 별들이

온통 하얀색 실로 수를 놓듯 저마다의 빛을 발하며 내 방 유리창으로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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