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친구 가족의 초대

부모는 모두 같다

by 스몰토크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우체통에 카드가 한 장 도착해 있다.

4명의 가족이 자신의 이름에 색깔을 다르게 해서 싸인(Sign)을 하듯 커다랗게 써 놓은 걸 보니

누가 보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들 친구의 부모가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아들에게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늘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

밴드부에서도 같은 악기를 선택해 항상 옆자리에 앉아 연주하고

농구부에 들어가 운동도 같이 하고

학교의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하면서 붙어 다닐 정도로 단짝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처음 이들을 만난 것은 밴드부에서 하는 콘서트가 끝나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 애의 아버지가 먼저 자연스럽게 농담을 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아이들끼리는 이미 친구였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아들친구의 부모라는 것은 우리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평소 인사를 하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시킬 것은 예상도 못한 일이라

어색한 웃음으로 답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통성명을 하며 악수까지 건네는 적극적인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트게 되었다.


간간히 아들을 통해 그들의 안부를 전해 듣고

보통의 원어민들과는 좀 다른 듯한

그들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주로 부모가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늘 바쁜 다른 캐나다인들과는 달리

아빠만 일하고 엄마는 아이들 끝날 시간에 학교에 와서 픽업하고

방과 후 교외 활동을 위해 여기저기 싣고 다니면서 아이들 교육에만 집중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인데 어떤 면에서는 그런 교육적 성향이

무척 한국적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였나? 마음이 잘 통했는지 그들과는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친구의 엄마입장에서 볼 때 이방인인 내가

문화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많을 테니 이질감이 느껴질 만도 한데

그녀는 나의 한국적 교육방식에 대한 거부감은커녕 오히려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거나, 친구들끼리만 어디를 가야 할 때도

우리 아들이 가면 승낙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너도 갈 수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로

우리 아이에 대한, 또 나의 판단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해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번 우리가 이사를 하면서 그들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다.

정성껏 그려서 직접 만든 초대장을 집으로 보내고,

그들은 초대해 줘서 감사하고 기꺼이 응하겠다는 답장의 카드를 보내왔다.


외국인은 처음이라 경험이 없으니 뭐가 좋은 지는 모르지만

어차피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이니까 이왕이면 한국음식을 대접하기로 한다.

그들도 이국(異國)의 음식이 낯설긴 하겠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는 말을 모를 리 없을 테니

한국을 대표하는 불고기, 김밥 그리고 닭튀김등을 만들고,

혹시 그들이 못 먹거나 싫어할 경우를 대비해서

몇 가지 샌드위치를 손으로 들고 먹기 좋게 한입크기로 썰어

플래터(platter)로 준비해 놓았다.


직접 만든 초콜릿 케이크 디저트와 함께 음식들을 뷔페처럼 늘어놓고 나니

종류가 별로 없음에도 아일랜드가 가득 차 보인다.

그들이 사 온 와인과 꽃까지 놓으니 더욱더 풍성해진다.


다행히도 한국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지 왔다 갔다 하면서

이것저것을 덜어 다들 잘 먹으니 기분 좋고 뿌듯했었다.

그에 대한 부담감인가 아니면 답장의 의미였나.

오고 가는 따뜻한 정(情) 속에 이번에는 그들이 우리를 불러 준 것이다.


뜻밖의 초대를 받았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기꺼이 가겠다고 답장의 카드를 보내 주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우리 가족 외에 다른 가족이 함께 해 주니 좀 더 따뜻할 듯싶다.


외국인의 집을 그것도 초대를 받아 방문하게 되는 절호의 기회이긴 한데

이 또한 처음이라 기대와 설렘 그리고 약간의 흥분과는 별개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실수를 하지나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빈손으로는 갈 수 없으니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그들은 꽃과 와인을 들고 왔던데 우리는 뭘 하지?


얼마 전 하와이에서 사 온 커피가 생각난다.

예쁘게 포장해서 리본까지 달고 나니 별것 아니었던 커피가 제법 고급스러워 보인다.

역시 선물은 포장의 힘이야.

한 손만 들면 다른 손이 서운할 테니 마들렌느도 구워서 양손으로 들고 초대받은 집으로 향한다.


드디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외국인이 사는 집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집으로 들어서니 크리스마스 샵이나 가야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반짝반짝 화려함을 뽐낸다.

테이블을 따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많은 크리스마스 장신구들이 진열되어 있고,

직접 제작해 놓은 것처럼 보이는 철길에서는

하얀 눈을 맞은 듯한 기차가 돌아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진심인 가족들이다.


친구 아빠는 자신의 서재에 있는 책장과 책꽂이등을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자랑을 한다.

직업이 목수(Carpenter)도 아니면서 실제로 샀다고 해도 믿을 만큼 그는 전문가였다.


여자의 마음은 역시 여자가 아는 법인가 보다.

친구 엄마는 "집을 구경하겠느냐?" 묻는다.

"물론이죠! 정말 좋아요!"

그녀는 나를 데리고 이층으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안내하고,

부엌과 거실을 마지막으로 집안 투어를 마친다.

외국인들도 우리랑 똑같이 하고 사는구나!


거실 벽에는 연필로 스케치한 다음 살짝 색을 입힌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을 보고 자신이 직접 그렸다는데 아들 친구의 어릴 적 모습이다.

엄마는 화가? 솜씨가 꽤 훌륭한 듯하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도와줄까?" 예의상 물어보지만 괜찮다고 한다.

사실상 익숙하지도 않은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괜히 걸리적거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냥 있기도 그렇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주요리(Main Dish)는 연어 스테이크였다.

생선도 고기도 안 좋아하는 나의 까다로운 식성을 어찌 알았는지

감사하게도 나를 위해 따로 스시(Sushi)집에서

생선이 안 들어간 초밥을 사다가 놓아주는 배려도 해 주었다.


사진에서나 보던 그림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디너롤빵은 바구니에 천을 깔아 담아 놓고,

커다란 볼에 이것저것 들어간 샐러드까지...

디저트는 역시 초콜릿 케이크였는데 자신은 만들 줄 몰라 샀다면서 웃는다.


식탁에는 우리들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세워져 있고

자신의 이름이 있는 곳에 가서 앉으면 된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우리 집에 왔을 때 그들이 "어디 앉냐?"라고 물어본 이유가 다 있었다.


이름표도 없고 자리를 정해주지 않아 물어본 거였어.

것도 모르고 그냥 아무 곳이나 앉으라고 했으니 얼마나 성의 없어 보였을까.

서양의 식탁 예절을 배웠어야 했나 보다.


모두가 둘러앉으니 음식이 담겨있는 접시를 돌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앞에 있는 접시에 먹을 만큼만 덜어내고 다시 옆사람에게 토스하는 일을 반복한다.

이거~ 영화에서 봤는데...

가만히 앉아서 음식 접시를 하나씩 돌리고 여유롭게 담소도 나누면서 식사를 즐기는 거였네.

나름 머리를 쥐어짜면서 고민한 끝에 겨우 생각해 낸 것이 간이뷔페라고 만들어

원하는 대로 직접 가져다 먹으라고 펼쳐 놓았으니...


음식을 가지러 왔다 갔다 손님을 얼마나 산만하고 불편하게 만든 거였나.

아무리 로마에 왔다고 해도 초대받은 집에서 저런 꼴을 당한 그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친구 아빠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외국인이 우리를 보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 못하듯

우리도 그들이 당연 캐너디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빠는 네덜란드 엄마는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한다.


그는 차에 관심이 많다.

연식이 오래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모 회사 오픈카(Convertible)를 주차장에 놓고,

자신이 부속을 사다 하나씩 수리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수리공도 아닌데!...


게다가 휴가를 위해 보트도 지금 색칠을 하고 있다는 둥

이런저런 자랑 섞인 이야기들을 한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동생의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순애보(純愛譜)적 사랑으로 인한

로스쿨(Law School) 포기설까지

식사는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


설거지는 호스트가 하는 것이니까 그냥 가셔도 된다면서 그가 농담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뭔가 떠오른 우리는 모두 함께 큰소리로 웃는다.


그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식사를 마치고 나서

옆에 있는 딸에게 아빠가 귓속말로 뭐라고 하길래 무슨 일 있냐? 고 물으니

그들의 문화에서는 초대받아 간 집에서 음식을 다 먹으면

설거지를 해주고 오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아니! 무슨 손님이 설거지를 해요?"

한국 문화는 초대를 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것이지

초대받은 사람은 먹기만 하고 가면 된다고 극구 말린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해 준 일화라고 할까.


처음으로 외국인 가족의 초대를 받아 방문하면서 그들의 생활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삶도 우리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주로 아이들 이야기지만 대화도 함께 나눠보고 조금은 생소하면서도 좋은 경험이었다.


같은 것 하나 없이 다르기만 한 우리가

유일한 교집합(交集合)인 아이들로 인해 이렇게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또래의 아이들을 키운다는 공통분모(共通分母)를 갖고 있는 부모로서

대화의 화제 또한 아이들 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진로(進路),

대학은 어디로 갈 것인지,

전공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아이들의 꿈은 무엇이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보통 부모들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스토리들


물론 지역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서로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

같지 않은 부분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 잘되길 바라는 마음, 기대감, 염려와 걱정

부모로서 가지는 자식에 대한 생각들은 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모의 마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같다.

역시 부모는 부모다.


완전히 다른 우리가 서로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각자의 아이들의 부모로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같은 마음과 공감대를 형성해 가면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런 가족을 만난 건 크나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자라나 갈지

그 성장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그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오래도록 지속해 나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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