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학교로의 첫 등교

아들이 마주하는 새로운 세상

by 스몰토크

아이가 캐나다에 와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 아침

괜히 부산을 떨며 온 가족이 함께 서둘러 학교를 향한다.


차를 타면 10-15분 정도 걸리지만 걷기엔 조금 멀게 느껴진다.

아직은 차가 없어 걸어야 하는데 오늘은 아들의 첫 등교를 축복이라도 해주듯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인도 옆으로

차들이 저마다 바쁘다는 핑계로 쌩쌩 소리를 내며 달려가고,

방금 전 맘속으로 하늘의 축복이라고 읊조리던 낭만이 무색하게,

결투(決鬪) 신청을 해 오는 투사(鬪士)처럼

온 힘을 다해 사정없이 퍼부어 대는 눈이 자꾸 시야를 방해한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거리를 검(劍)과 창(槍)으로 맞서듯

눈을 헤치며 걷다 보니 참!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날이다.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과의 생소(生疏)한 만남이 주는 어색함과

그곳에서 마주하게 될 모든 것이 긴장되었을 아들에게

이런저런 말로 마음을 다독여줄 여력도 없이

학교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우리는

말없이 걷고 또 걷는다.


캐나다에는 사립학교를 제외하고 크게 공립학교와 가톨릭 학교가 있다.


보통은 살고 있는 지역 주변에 있는 학교로 배정이 되어 다니게 되는데

우린 가톨릭 학교로 보내기로 한다.

부모 중 한 사람이 가톨릭 교구에서 세례를 받으면 입학 가능한 자격이 주어 진다.

이미 가족 모두 세례를 받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승인받을 수 있었다.


3월에 시작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이곳은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아들이 9월까지 기다리려면 시간이 애매하다.

대부분 이런 경우 9월에 중학교 2학년으로 반 학년을 올려서 진학시키기도 한다.

선행학습이 잘 되어있는 한국 학생들의 경우

사실 이렇게 해도 수업을 따라가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어차피 유학 아닌 유학을 왔는데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당장은 이곳이 처음인 아이가 공부보다는 낯선 환경에서

친구들과 익숙해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맨땅에 헤딩하는 모험을 해 가면서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천천히 느긋하게 가기로 한다.


우리가 선택한 이곳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동시에 운영하는 학교로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은 자동으로 같은 중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단 몇 개월이라도

아이를 다시 초등학교 6학년으로 입학시키기로 했다.

9월이 되면 중학교 1학년이 되는 것이니까 한국으로 보자면

반학기가 늦어지는 셈이다.


인생 긴 여정이다라는 견해로 본다면 반년정도 늦어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반년을 포기하니 우리가 얻은 수확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친구들과 같은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아이가 말한다.

"친구들이 저보고 유치원 때부터 학교를 쭉 같이 다닌 동창이라고 말해요.

제가 여기서 태어난 줄 알더라고요"

"그래? 근데~ 동창은 맞지 비록 몇 개월이지만"


순수한 어린아이들이라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함께 수업 듣고 지냈던 기억이 깊이 각인되었나 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전학 온 이방인이 아닌

처음부터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보통의 친구로 알다니...


어떠한 편견도 없다는 뜻인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이던지.

결국 우리가 반학년 늦추기로 한 선택 틀리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학교엔 우리 아이가 첫 한국인 학생이다.

각 학교마다 한국 학생이 최소 한 두 명은 꼭 있는데 이곳은 없다.

아무런 인맥도 정보도 없으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톨릭 학교로 찾아간 것이었는데...

선생님들도 한국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어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한국 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의미가 이 학교에서 적응해 나갈 아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는 모른다.


영어를 배워본 적도 해 본 적도 없으니 말이 통하는 친구가 없어 당분간은 외로울 거고

혼자 다 알아서 해나가야 하니 많이 힘들 수는 있지만

적응하느라 할 수밖에 없을 테니 영어는 금방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결투로 승부를 보느라 잔뜩 성이 나있던 사나운 눈길을 헤치고 겨우 도착한 학교 사무실에

"우리가 왔노라"를 알리고 난 후 기다리고 있으니

앞으로 아들을 맡게 될 담임선생님이 2층에서 내려온다.

선생님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어색한지 아들이 자꾸 고개 돌려 우리를 쳐다본다.


이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남편은 "눈물이 나왔다"라고 한다.

"눈물이? 왜?"

"말도 안 통하는 이곳에서 어른인 우리도 겁나는데 어린아이가 앞으로 겪어 나가야 할 많은 일들을 생각하니 너무 짠하고 안쓰러워서".


하긴 무서울 텐데 아무 말도 못 하고 끌려가듯 따라가는 아이를 보고

가엾어하는 아빠로서의 애끓는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간다.

내게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들이 마주하게 될 세상은 우리도 가 본 적 없는 길이라 두렵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어떤 상황이 펼쳐져 저를 반길지 모르는데도 저벅저벅 용감하게

자신의 새로운 세상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아들이 나는 무척 대견하다.


물론 시작은 서툴고 두려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감당하기엔 조금은 어린 나이긴 해도 괜찮다.


미약(微弱) 하나 우리가 정성으로 깔아놓은 카펫을 사뿐히 밟고 서서

홀로 이겨내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고

오롯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길을 잘 찾아

키가 크듯 무럭무럭 성장해 나갈 테니 뿌듯하기도 하고

오히려 나는 엄청 설렌다.


학교가 끝나면 아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캐나다에서의 첫 등교날 처음 본 학교의 느낌,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어땠을까 무척 기대가 된다.

낯선 곳에서의, 어색한 하루.

그곳에서 아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는지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아마도 캐나다 친구들새로운 곳에서 잘 버텨나갈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 보다 적응력이 빠르니까 서툴면 서툰 채로

어떻게 해서든 저 살길 찾아가며 잘할 것이라 믿는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들에게는 어떤 내일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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