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상담
아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시간에 뜬금없이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상담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냐?"라고 정중하게 묻는다.
거절할 수 없는 그 제안에 당연히 "yes" 해야지.
시간약속을 정하고 전화를 끊은 후 "이거 뭐지?"
선생님이 직접 전화해서 보자고 하는 건 한국에서도 없던 일이라 "무슨 일일까?"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해진다.
다음날 아이의 수업이 끝날 무렵 우리는 이 예상치 못한 호출에 잔뜩 긴장을 하고 학교로 간다.
선생님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밝게 웃으면서 우리를 반긴다.
신입생에 대한 인사 차원으로 그냥 부른 건가?
꿈도 야무진 예측은 빗나간다.
그는 우리에게 황당할 수 있는 질문을 한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니! 그건 우리가 묻고 싶은데요"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해 준다.
며칠 전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시험지를 돌려주는데
아들이 시험지를 받아 들고 뒤돌아 서자마자 쫙~쫙 찢으면서 울었다고 한다.
충격!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우리의 당황한 표정을 읽은 그는 침착하게 말을 이어간다.
"이유를 물어도 대답 없이 계속 울기만 하니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혹시 부모 없이 혼자 유학을 와 있나?
가디언의 보호하에 있다가 그(그녀)와의 사이에서
어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 힘들어하고 있나?
부모와 함께 있더라도 가족 간의 사이가 안 좋아서? 아니면 집안에 다른 골칫거리가 있어서?
아이에 대한 모든 걸 우리를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들어보니 선생님은 아들이 누구와 함께 있나? 가 무엇보다 중요했고
그게 누구든 만나 보고 아이가 처해있는 상황이 어떠한지 두루두루 알아보고
좀 더 파악해 보려 한 듯싶다.
일단 우리는 아이의 무례(無禮)해 보일 수 있었던 행동에 대해 먼저 사과를 한다.
그는 한국학교와 분위기에 대해서도 차분히 묻는다.
어떤 점이 다르고 이런저런 경우 한국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한국에서 아들의 학교 생활은 어땠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냈는지?
이런저런 말이 오가면서 대화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어쩌면 선생님이 가장 묻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질문을 한다.
"평소에 시험 성적으로 아이를 괴롭히나요?"를 신중을 기하면서 또박또박.
"Oh! NO~! NEVER!
오히려 온 지도 얼마 안 되니 80점이면 상당히 높은 점수고 기대이상이다"라고 했더니
다른 학생들 같으면 그 정도면 굉장히 만족하는 점수인데, 아들의 이상행동(異常行動)을 보고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아이의 경솔(輕率)했던 태도에 대해서는 우리도 몹시 당황스럽다.
다시 한번 선생님께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더불어 "아이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걱정이 되어
우리에게도 알려준 선생님의 배려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라고도 말한다.
어느 정도 확인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실마리가 풀렸는지
상담을 마무리 지을 즈음에
첫 한국 학생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 선생님은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이것저것 더 물어보고, 우리는 아는 대로 알려주고
분위기가 꽤 좋은 채로 긴급 호출로 이어졌던 그날의 응급 상담은 끝이 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넌지시 묻는다.
"왜 그런 거였어?"
혼날까 봐 긴장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아들이 입을 뗀다.
"점수가 너무 안 좋아서 화가 났어요"라고 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선생님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지"
"알아요! 점수를 보는 순간 짜증이 확 나서 그랬는데 바로 후회했어요"
"그래 그러면 안 되는 거야 "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깊이 반성도 하고 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하니
아들에게 묻는다.
"그런데 아들, 영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할 텐데 어떻게 시험을 본 거야?"
나의 질문에 살짝 긴장이 풀린 아들이
"어차피 이해는 못하니까 그냥 무조건 외웠어요 "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 살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걸 생각해 냈을까?
역시 각자도생(各自圖生)
자기 살길은 스스로 찾는다.
한국에서 아들이 다닌 학교는 좀 특별했다.
다른 초등학교는 오히려 시험이 없어졌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시험을 자주 치른다.
중간고사, 학기말 고사...
이제껏 배우고 공부했던 것을 시험을 통해 평가받는다는 시험의 좋은 의도와는 별개로
언제나 그 후에 나오는 성적으로 아이들끼리의 점수로 인한 경쟁을 부추기고,
거기에 몇몇 극성 엄마들 까지 합세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공부가 위주인 학교의 분위기로 만들어져 갔다.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살던 아들은 성적 결과 때문에
시험 때만 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왔을 것이고,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어떠한 사교육도 시키지 않았던 엄마의 별난 교육관 때문에
학교공부만으로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혼자 버티듯 공부해 왔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친구와 철없이 노는 것이 더 잘 어울리는 아들이
그런 별난 제도에 갇혀 휘둘리면서 살아가게 하기 싫어서 여기 온 건데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쌓여온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익숙하진 않았는 모양이다.
캐나다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는 우리도 잘 모른다.
다만 앞으로 살면서 원하지 않아도 공부를 해야 하는 시간은 많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장기 마라톤이 될 수도 있는데
처음부터 진을 다 빼앗기면 지쳐서 끝까지 달릴 수 없을 테니
숨 고르기도 하고, 가다가 물도 마셔주고
서둘러 가느라 앞만 보지 말고 옆과 뒤도 바라보면서 놓치는 것 없이
자신만의 속도로 땀 흘리듯 온몸으로 여유(餘裕)라는 것도 한껏 뿜어 내면서
느긋하게 가면 좋겠다.
캐나다 친구들처럼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웃고, 떠들고
공부보다는 아이들과 좀 더 재미있게 뛰어놀면서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도록
좋은 시간들을 더 많이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