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캐나다에서 살아온 지 어느새 20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우리 가족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니 주어진 날들을 성실히 살아 내야 했고 힘에 부쳐 할딱 거리긴 했지만 선택을 했으니 따라오는 책임감으로 매일매일을 버티듯이 살아온 듯싶다.
어느 누구도 무엇하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이 없이 낯선 이곳에서 우왕좌왕...
이제껏 경험해 본 적도 없던 일들을 몸으로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때로는 무섭고 때론 부당하다 억울해하기도 하고 그렇게 수없이 울고 웃다 보니 야속하게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흘러 내게 흰머리와 주름을 남겨놓
고도 뭐가 더 남았는지 여전히 열일 중이다.
오랜 시간 살다 보면 타향도 고향이 된다고 하는 말이 맞는 듯싶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어둔했던 때와는 달리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은 곳이다는 사실을 몸으로 마음으로 깨닫게 된다.
감정표현에 서툰 우리와는 다르게 언제나 여유롭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조금은 더 쿨해 보이기만 하던 외국인들의 감정도 사실은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다를 것이 없어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beautiful~"...
그들도 다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들을 우주에서 UFO 타고 날아온 외계인 보듯 피해 다녔다.
돌이켜 보면 공포영화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그들을 보면 무서워했는지...
머리, 눈동자등 외모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서였을 수도 있고, 알아들을 수도, 할 수도 없는 낯선 언어로 딴 세상 말을 하니 더 두려웠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 알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데 Are you ok? 또는 Can I help you? 물어봐주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의 일임에도 나만 아니면 돼 보다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땀 흘리면서 까지 애써주는 그들의 몸에 베인 것 같은 양보와 친절은 감사하고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보상 없는 그 친절이 더 무섭고 부담이 되어서 오히려 모른 척해주길 더 바랬던 적도 있지만 더 이상 외국인들은 외계인이 아니었으며 낯설었던 모든 것들은 이제 익숙함으로 대신한다.
지나칠 때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낯선 이에게 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외쳐대는 "Hello"에도 어떤 의미 같은 것은 없음을 알게 되니 내 입에서도 오가며 그저 스쳐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거부감 없이 뱉어 내게 된다.
어차피 어른이 되어서 시작한 영어가 어찌 완벽할 수야 있겠냐만은 더 이상 부당한 일에 바보 같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가던 어리바리했던 때와는 달리 얼굴 붉히며 당당하게 대들고 따질 수 있는 용기를 갖추게 되면서 그럭저럭 괜찮아졌고 이방인으로써 여전히 미숙해서 겪는 많은 일들도 나만의 문제는 아닐 듯싶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많지는 않지만 외국인 친구와 지인들도 생기고 같은 처지에 있는 한국 친구들도 있어 가끔씩 만나 차 한잔 하며 우리말로 수다도 떤다.
먹고 사느라 뒤돌아 볼 새도 없이 지나쳐 버린 많은 시간과 일들이 후회와 회한으로 남는 것 같아 흔적 없는 세월이었다고 치부해 버렸지만 지나간 모든 시간들은 이곳에서의 삶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어간 시간들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의 삶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고생했던 것 말고 특별히 기억나는 것도 없지만 익숙해져 간 탓에 어색함 대신 오랜 시간 속에서의 편안함이 자리 잡는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의 모든 것이 더 낯설게 다가온다.
하늘에 닿을 듯 삐죽삐죽 높이 솟아 있는 건물들은 하나의 아트 전시장에 나와있는 훌륭한 예술 작품 같아서 마치 우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해도 도시와는 동 떨어진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 촌티 팍팍 내며 "여기서 타는 것이 맞는지? 를 물어야 한다.
외모도 말로도 의심할 여지없이 한국인인데도 그런 걸 묻는 내가 수상해서 "저 아줌마 뭐지?" 할 것 같아 죄지은 것도 없이 괜히 움츠려 든다.
부모 형제에게도 나의 존재는 예전에 내가 있던 자리를 스스로 비우고 나간 그래서 어차피 왔다가 갈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언어의 힘이 약해지다 보니 발언건조차 없어진 지 오래다.
그렇다 보니 가족회의에서는 자연스레 투명인간이 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더 이상은 가족이라는 이름에도 끼지 못하는 것 같은 서운함에 갈 때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괜히 상처만 받고 돌아오곤 한다.
떠나 있는 동안 다가가기 힘들 정도로 변해 버린 내가 살던 곳
뾰족한 건물만큼이나 가까이 가면 톡 찔려버릴 것만 같은 그곳에서도 나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어느 곳에서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붕~떠있는 삶.
어쩌면 이제는 이곳에서의 삶이 더 익숙해서 편안한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