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삶은 계속 진행되고 우리는 또 살아간다

by 스몰토크

살다가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오면 자기 체면을 걸면서 괜찮은 척 살아갈 때가 있다.

마음의 방어기제가 몸의 면역체계처럼 순간 발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휘감고 있는 고통이 너무 커 그것을 감당해 내기 힘겨울 때, 아니면 한계를 모르고 참다 참다 어느 순간 모든 게 뒤죽박죽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상실을 경험할 때, 마치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에라도 걸린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만들어서라도 거짓의 세계에 실제의 자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속여서 현실을 부정하게 하고 급기야는 조정당하는 순간으로 이끌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소하게 때로는 아주 심각한 허언증에 걸린 채 스스로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서만 꿈틀거리며 괴롭힐 뿐 보이지 않는 불안(不安)한 실체와의 대면은 언제나 무섭고 두렵다.

어디서, 왜 온 건지 그 존재가 신비스러울 뿐 아니라 잡아먹힐까 봐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그 외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벌어지는 원치 않는 일들이 원인이 된 걸까? 혹은 잊고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

정체불명의 불안이라는 고질병이 불쑥불쑥 고개 내민다.


안대 술래잡기 놀이가 있다.

안대를 한 술래에게 잡힌 사람이 또다시 술래가 되는 게임이다.

대낮이라도 눈에 안대를 차고 있으면 깜깜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공포는 배가 된다.

자신을 노리고 여기저기서 찔러대는 알 수 없는 존재들에게 어떤 공격을 당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한 방어를 할 수도, 맞서기 위한 공격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허공에 대고 두 팔을 휘두를 뿐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그런 술레의 모습은 여간 바보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뒤에서 오는 것도 모르고 앞을 방어하겠다고 헛손질을 하고, 술레를 속이려고 박수를 쳐주면 코끼리 코를 하듯 빙글빙글 돌면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팔을 쭉 뻗는다.

술레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지도 모르는 적(敵)이 두려워 유일한 무기인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거겠지만 다른 이의 눈에는 의미 없이 흔들어대는 팔 사위가 그저 재미있는 웃음거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괴리(乖離)적 불안감은 이따금씩 정신 못 차리게 삶을 흔들어 대기도 한다.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면 숨어버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내재하고 있던 초라하고 누추한 것들을 투명망토로 씌워 살짝 숨기고 그 위에 이것저것 한껏 더해 현란(絢爛)하게 꾸며 놓고는 ~인척, ~가 아닌 척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잘도 속인다.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늘을 가리려고 두른 화려한 옷과 아름다운 미소가 어색해 어떤 이는 가식이라고 치부해 버리기도 하지만 언론이나 SNS를 통해 그런 거짓이 통하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연극무대에서 배우는 맡은 역할의 특징을 살리고자 특별한 메이컵을 하고 거기에 맞는 의상을 선택해서 입는다.

이렇게 살짝 분장을 하고 역할을 소화해 내다보면 어느새 대본 속의 인물로 이입이 되고 몰입하게 된다.

그러면 연극이 끝날 때까지 원래의 자신은 잠시 잊고 마치 등장인물 속의 캐릭터가 자신인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게 된다.

작품이 끝나면 열정을 갖고 연기한 배우들이 본연의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하는 이유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처음엔 숨고 싶어 티 안 나게 살짝만 변화를 주기 시작했지만 세상의 관객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보내면 조금씩 강도를 높이게 되고, 더 화려하게 더 밝게, 거짓을 사실로 꾸미는데 자신을 온통 갈아 넣기도 한다.

이미 고장 난 브레이크를 장착한 자동차는 억지로 멈추느라 위험해지기보다는 차라리 돌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거짓삶에 대한 양심으로 내면 속에서의 수많은 갈등이 자신을 갉아먹는다고 해도 자극적인 맛을 이미 경험했다면 예전의 밋밋했던 순한 맛은 더 이상 매력이 없다.

다시 찾을 일도, 물론 돌아가지도 않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참으로 오묘(奧妙)하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거짓부렁이로 살기로 작정하지는 않는다.

각자의 목표를 정해놓고 이끌어지는 대로 가다가 중간중간 만나게 되는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듯 예상 못한 곳으로 예고 없이 방향을 틀어 궤도를 이탈하는 경우가 더 많다.


분명히 과녁을 향해 똑바로 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갑자기 방향을 튼다.

엉뚱한 곳에 꽂혀 버리기도 하고 아예 밑으로 떨어져 여기저기 나자빠져 있는 화살과도 같다

정확히 조준해서 날린 대로만 날아갔다면 정가운데에 깔끔하게 꽂혔을 것을, 난데없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휘었기 때문에 상상 못 한 곳으로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정도로 힘을 주고 한 곳만 응시하면서 온 힘을 다하듯 열심히 살았건만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날아가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맡은 바 본분을 다하기 위해 가운데를 향해 달려간 화살을 빗나가거나,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고 나무랄 수도, 버릴 수도 없다.

마음을 가다듬고 흩어진 것들을 가지런히 주워 담아 이번에는 좀 더 눈을 부릅뜨고 집중해서 다시 날려보아야 한다.

무엇을 하든 기회가 꼭 한 번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껏 살아온 삶의 궤적들이 모여 다시 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아무리 훈련이 잘 된 타자도 매회 홈런만 날릴 수가 없고 투수도 줄곧 삼진만 잡을 수는 없다.

상대편 타자와 9회 말 말루에 투 스트라이크 아웃의 대치, 그야말로 투수의 공 하나에 사활이 달려있는 위기와 맞닥뜨리는 일도 수없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는 우리 삶에도 언제든 찾아 올 수가 있다.

이때 쓸만한 공 하나로 상대편 타자를 삼진으로 잡느냐 아니면 똥볼로 점수를 내주느냐는 공을 던지는 사람 스스로의 의지와 순간의 판단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10개 중에 최소 한두 개 정도의 화살촉은 미친척하면서 정중앙에 꽂히기도 할 테니까, 비껴간 것에 집착하느라 다시 오고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지금 괜찮지가 않다면 그래도 괜찮다.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껴 동굴로 숨는다고 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껏 꾸미고 다른 사람인 냥 살아간다고 해서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니까.

어차피 곳곳에 숨어 여러 경우의 수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삶의 시험에 넉다운당해 때론 고꾸라져 넘어지기도 하고 필살기로 부딪혀 싸우기도 하면서 우리는 삶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진행시키며 살아갈 테니까.

엎어지면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나고 전쟁을 걸어오면 무기장착하고 맞서 싸우면 된다.


삶은 계속 진행되고 우리는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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