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60일간의 동거

또 다른 추억의 시간

by 스몰토크

아들이 두 달 여의 휴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결혼식까지 3개월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지만 며느리 될 아이가 아직은 한국에 있고,

퇴직도 하지 않은 상태라 시간적으로 자유롭지가 않다.

거리상으로도 너무 멀어 왔다 갔다 하면서 신혼집 꾸미기에 일일이 신경 쓸 수가 없다.


앞으로 사랑하는 이와 함께 살게 될 집을 마음껏 꾸며볼 기대로

엄마랑 가구도 보러 다니고, 그릇도 사러 다니고

그러다가 의견이 안 맞아 서로 얼굴 붉히기도 하는 그런 일련의 일들이

신부가 결혼 준비하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풍경인데

친정 부모님도 해외주재원으로 외국에 나가 계시니 그녀에겐 그런 재미나 추억도 사치인 듯하다.


친정 엄마만큼은 못하겠지만 내가 대신하기로 하고

대충 살림살이도 마련하고, 이것저것 돕는다는 정당한 이유를 핑계로

아들의 신혼집으로 함께 떠나기로 한다.

추억 여행 이후로 또다시 아들과 단둘이 60일간의 동거가 시작된다.


아들이 집으로 오기 전, 미리 마련해 놓고 온 신혼의 보금자리는 크지는 않지만

둘이서 살기에는 적당한 듯하다.


집만 덩그러니 있고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당장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다 나르는 일은

거의 중노동에 가깝다.

둘이서 하려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아들과 땀 흘리며 열심히 고생한 대가로

필요한 것들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 자리 잡고 앉으니

텅 비어 썰렁했던 집은 우리의 온기까지 차츰 스며들면서 사람의 향기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요즘은 직접 발품 팔고 다니지 않아도 온라인 쇼핑이 잘 발달되어 있어

화면 안에 화려하게 펼쳐진 수많은 그림을 보고 피곤한 눈 비벼가며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클릭 하나면 주문까지 완료되니 얼마나 편리한가?


아이들이 선택해서 주문해 놓았던 침대랑, 가구들은 배달시간을 최대한 맞춰보려고 했는데도

도착하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혹시 몰라 이럴 경우를 대비해 가지고 온 침낭과 비행기에서 쓰는 목베개로

우선은 피난민처럼 바닥에서 자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 아들은 출근을 하게 되고,

나는 간단한 아침식사와 주말에 다려놓은 의상들을 꺼내주며 부산스럽게

아침마다 출근을 돕는다.


아들이 집을 나서면 혼자 남아 아침 겸 점심을 대충 챙겨 먹고는

설거지를 끝내고 난 다음 근처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착하자마자 유리벽으로 되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층마다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서고들이 장엄하게 한눈에 쫘악 펼쳐지며

두 팔 벌리듯 나를 반긴다.

더불어 풍겨오는 책 냄새가 간질간질 코를 자극한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책을 보았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살짝 다르긴 하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하던 생각도 나고

무엇보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좋다.


어느 것을 먼저 볼까?

간택받길 기다리는 아이들을 거만하게 위아래로 쏵 훑어본 다음

'파비오 볼로' 작가의 "내가 원하는 시간"처럼 마음에 와닿는 제목이 눈에 띄면

곧바로 그걸 들고 빈자리를 찾아가 앉는다.

한참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다가 아들이 돌아올 시간쯤 되면

내일을 위해 나만이 알 수 있는 표시를 해놓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준비를 한다.


식탁이 없어 캠핑 온 듯 바닥에서 저녁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면 아들 껌딱지인 나는 또 옆에 딱 붙어 앉는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우리 이번 주말에는 어디 가?"

안 가면 안 될 것처럼 보채듯이 묻는다.

가끔은 혼자 먹고 있을 나를 위해 점심시간에 사무실 근처로 불러 맛있는 밥도 사주고,

주말에는 반찬거리 사러 슈퍼도 같이 가고, 야외도 데리고 나가 구경도 시켜준다.

아들 키워 놓으니 이런 호사도 누려본다.


아들이 "오늘 9시부터 5시 사이에 침대 온대요" 하고 카톡을 보내오면

제시간에 올 리 없는 그들이 정확히 언제 오는지 몰라

매일의 루틴이 되어버린 도서관도 못 가고 하루 종일 벌서듯 기다린다.


가구들이 하나씩 들어오면서 방으로, 거실로 제 자리에 안착하고 나니

제법 아늑한 신혼부부의 집모양으로 꾸며진다.

나의 임무도 끝나가고, 아들은 아들대로, 나는 나대로

함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벌써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간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되고, 집모양새도 갖추어지면서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다.

이제 아들의 그녀만 이 집에 들어오면 완벽해진다.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짐도 정리하면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즈음,

며느리 될 아이에게서 카톡이 한 통 온다.

이곳으로 2주 동안 늦은 여름휴가를 온다고.

덧붙여 내게

"제가 가 있는 동안 조금만 더 계시다 가시면 안 될까요?라고 정중하게 묻는다.


국경이 가로막고 있는 롱디 커플이라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는데

오랜만에 가져보는 그 귀한 시간을 "나하고?"

얼마나 아들과 단둘 이만 보내고 싶었을까만은

"가시지 말고 저랑 같이 시간도 보내시고, 저는 경험이 없어 잘 모르니까

어머님의 안목으로 괜찮아 보이는 것들도 함께 사러 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한다.


나보다는 그녀가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미리 이런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익숙해지는 것도 좋을 듯싶어서

서먹서먹 하지만 그녀의 제안을 받기로 한다.

무엇보다 그렇게 말해주는 아이의 심성이 너무 어른스럽고 이쁘지 않은가?


아직은 결혼전이니 걸어서 오고 갈 수 있는 거리의 근처 호텔에 따로 숙소를 마련해 묵기로 한다.

아들이 출근하면 그녀가 집으로 온다.

내가 준비해 놓은 밥을 먹기도 하고, 근처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브런치를 즐기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자리를 옮겨 커피도 마시고,

수렁처럼 깊은 둘만의 수다의 늪에 빠져 들어간다.


뭔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 넘도록 저녁준비도 까맣게 잊은 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온 아들이 여자 친구의 카톡으로 어디냐? 고 물으면

그제야 놓았던 정신줄 챙기고 바쁜 척하면서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아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기도 한다.

혼자 가기 아쉬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끌고 돌아서는 아들을 매정하게 뒤로하고는

또 둘만 남아서 여기저기로 기웃기웃 눈요기 쇼핑도 하고,

피곤하면 커피숍에 앉아 또다시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녀는 같이 있으면 행복하고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魅力)이 있다.

한 번 빠지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는 떠들고 또 떠들어 댄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할 정도이다.


이상한 건 그녀가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편할 때 나오는 그 어떤 어색함 하나 없이

모든 행동이 다 꾸밈이 없어 보인다.

어려워하지 않으니 편안해서 좋다.

혹시~! 나도 이미 그녀의 위험한 유혹에 빠져 버린 건가?


셋이 저녁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밤 10시가 넘으면

아들이 호텔까지 데려다주면서 걸어가는 그 시간 동안 겨우 얻게 되는

둘만의 데이트를 잠깐 즐긴다.


매일 꿈같이 즐거운 날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셋이서 함께 보낸 추억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어쩔 수 없이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들과 보낸 60일 안에는 그녀와의 2주도 있다.

한국에서의 어색한 첫 만남 이후 아들의 여자친구로 우리 집을 한번 방문했으니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벌써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덕분에 함께 지내는 동안 우리는 줄곧 안온(安穩)했다.


명목상으로는 도와 달라는 이유였지만 세대가 다르니 취향도 다 다를 테고,

둘이 알콩달콩 의논하면서 하면 더 좋을 텐데 굳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잡아 주었다.

결혼도 안 한 상태에서 시어머니 될 사람이랑 밥도 같이 먹고,

수다도 떨고 하는 것이 많이 불편했을 텐데도 돌아가는 날까지 웃는 모습 잃지 않고,

딸이 엄마 보살피듯 날 챙겨주는 그녀는 정말 예쁘기만 하다.


사람은 자꾸 보고 부딪혀서 지내야 정도 들고 소원해 지지도 않는다.

아들과 그녀 그렇게 셋이서 함께 보내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실제로 조금 더 가까워지고 편안해진 듯하다.


아들의 그녀로서 그리고 내게는 며느리가 될 사람으로서 결혼 전에 웃고, 떠들며

미리 가족 연습이라도 하듯 보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몇 개월 후면 진짜 가족이 되어 이곳으로 오게 될

그녀의 결혼 전 깜짝 방문은 우리에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조잘조잘 대던 그녀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2주 정도 늦어졌지만 나도 이젠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보내는 일에만 익숙했던 내가 이번에는 떠나는 입장이 된다.


아들이 갈 때마다 공항에서 보안검사 마치고, 가방을 챙겨 맨 후 손을 들면

바이바이 흔들어 주면서 엄마마음으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곤 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손인사를 해 주는 아들의 배웅을 받다 보니

남겨놓고 오는 마음 또한 편하지가 않다.

이 또한 아리고 쓰라린다.

늘 떠나기만 했던 아들은 나를 보내면서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아들과의 60일간의 동거는 집에서 보낸 시간 그리고 둘만의 추억 여행 때보다는

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아침마다 출근을 돕고,

저녁이면 침대에 나란히 앉아 예능 프로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고,

주말에는 기차를 타고 떠나보기도 했다.


어릴 때처럼 아들 옆에 누워 잠도 자고, 내가 만들어 준 집밥도 함께 먹었다.

특별한 것 없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만들어 낸 순간순간은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기만 하다.


우리 집에서, 그리고 아들집에서

총 4달여 동안 오롯이 아들과 함께 보낸 잊지 못할 그 시간들은

행운처럼 다가온 귀한 선물이었다

빛바랜 나의 낡은 삶의 서랍 안에 넣어두고

나만이 볼 수 있도록 자물쇠를 채워 둔 채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들은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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