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추억 쌓기 여행

아들과 단둘이 라스베이거스

by 스몰토크

아들의 폭탄선언으로 발동 걸린 결혼이 올 연말로 성급하게 결정되고 나니

마음이 초조해진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는 것 같은 조급함으로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서둘러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아니고 빠른 시간 안에 기억에 남을 일을 만들기에는

여행 만한 것이 없을 듯하다.

어차피 결혼하고 나면 아들과 여행 가는 일은 쉽지 않을 테니

서둘러 계획을 세워 보기로 한다.


남편은 항상 가족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들이 사춘기 일 때도 여자도 아닌 다 큰 사내아이가 부모 따라 장 보러 가고 싶을까 만은

"조직의 쓴맛을 보고 싶냐?" 하면서 쇼핑도 가고, 산과 바다, 어느 곳이든

가족은 늘 같이다.


그래놓고 갑작스럽게 휴가를 낼 수 없어 본인은 빠지겠다고 한다.

나중엔 며느리까지 해서 넷이 가겠지만,

결혼 전에 우리 셋이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

안 가면 후회할 텐데 싶지만

가정경제가 우선이니 어쩔 수 없다.

아들과 나, 둘만 가는 걸로.


사실 우리 둘만 떠나는 것이 엄마인 내게는 더 큰 의미다.

벌써부터 기대감 업(Up) 되어 가슴이 두근두근 행복하기만 하다.


번개 치듯 급하게 잡은 3박 4일의 일정은 생각만큼 길지가 않다.

멀리 가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라 가까운 곳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라스베이거스가 그나마 가장 적당한 듯하다.


여행이란 원래 가서 보다 가기 전이 더 좋은 법이다.

계획도 세우고, 맛집도 찾아보면서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설레고, 즐겁다.

신세대인 젊은 아들이랑 뭔가를 하려니까 다 알아서 해주니 내가 따로 할 일이 없다.

괜히 신나고 좋으니 옆에 딱 붙어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척 만한다.


숙소랑 동선 그리고 레스토랑까지 빠른 검색으로 알아보고,

예약할 것은 미리 해 놓고 바로 짐을 챙긴다.

아들이 어설픈 나를 잘 케어해 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기억을 가득 쌓고 돌아오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채 아들과의 추억 쌓기 여행을 떠난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날씨에 숨이 턱 막힌다.

말로만 듣던 사막이라서 그런가 보다.

택시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가 짐을 풀고 있자니

눈치 따위 있을 리 없는 뱃속에서 꼬르륵 꼬륵 신호를 보내온다.

금강산도 식후경.

밥부터 먹으로 나가본다.


조금 걷다 보니 높은 건물의 호텔들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뷔페가 가성비 좋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으로 들어가 본다.


호텔답게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들이 형형색색 한껏 치장을 하고, 눈호강까지 시켜준다.

하지만 갖은 매력을 발산하며 유혹을 해와도 입이 짧은 나는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먹을 것이 그렇게나 많은 데 된장찌개에 밥,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은 이유는 뭘까?


나 같은 사람은 아무리 가성비가 좋다 해도 돈이 아깝긴 하다.

그래도 뷔페의 좋은 점은 원하는 걸 맘껏 골라먹는 거니까,

이것저것 먹을 만한 것들만 몇 가지 담고, 디저트까지 살뜰히 챙겨 먹고 나온다.

역시 가격은 생각만큼 비싸지 않았다.


호텔 주변밖에서는 시간마다 벌어지는 분수쇼를 구경하느라

사람들이 핸드폰 들고 사진을 찍어댄다.


인파에 밀려 파도 타듯 걸어 다니다 보면

초상권(肖像權)이라는 신성한 권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정없이 침해당한다.

어느 사진에 내 얼굴이 찍혔을까?

여기저기서 눌러 대는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예민한 내 귀를 자꾸 자극한다.


각 호텔마다의 테마로 꾸며 놓은 멋진 장식들 구경하러 투어를 다니는 것도

이색풍경인 듯하다.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 해지니 거리의 네온사인들이 하나둘씩 빛을 발한다.


서로 경쟁하듯 저만 봐달라고 깜빡깜빡 화려하게 번뜩이고,

모두들 잠도 없나? 새벽까지 구경 나온 사람들로 차고 넘치는 이 도시의 밤은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그 속에 우리도 슬쩍 발을 들여놓고 유영하듯 헤매고 돌아다닌다.


다음 날은 그랜드 캐년을 가느라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다.

버스투어라 그들이 짜 놓은 일정대로 따라야 하니 도착하면 가서 보고

여기 왔다 가노라 사진 찍기 바쁘다.


사막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앉아 자신들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몇 채 안 돼 보이는 집들이 듬성듬성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간다.


슬라이드 필름이 펼쳐지듯 보이는 바깥 풍경은 옛날 서부영화에서나 보던

사막의 모습 그대로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가 지나가는 걸 저들은 알기나 할까?

과연 저 속에 정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게 맞기는 한 걸까?

뜨거운 열기에 아지랑이만 이글이글 피어오를 뿐

관심 없다는 듯 온 세상이 조용하기만 하다.


타들어 가는 날씨 탓인지 인적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어 보이고,

키다리 높은 선인장들과 물기 없이 말라버린 채로 불에 타 버린 듯

가지가 새까맣게 변한 나무들만 우리를 반긴다.


수도시설이 없어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고, 뱀이 나와 벽을 타고 다닌다고도 한다.

다쳐서 병원 가면 밴드 하나 붙여주면서 가라고 한다는 등

오며 가며 가이드까지 겸하는 운전기사의 재치 있는 안내가 웃음을 유발한다.


드디어 도착한 그랜드 캐년의 장엄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진 찍기도 두려울 정도로 높은 절벽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탈 때 마냥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glass walk 위를 걸을 때는 아래를 봐야 묘미인데 고공 공포증이 방해하는 통에

바라볼 수가 없다.

겁 많은 나를 아는 아들이 장난치듯 미는 시늉을 하니 난간을 붙잡고 그대로 주저앉는다.

아들! 혹시 이거 장난 아니고 엄마를 정말로 밀어버리려는 거?

에이 설마~ 아니지?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무섭다면서도 억지웃음 웃어가며 열심히 손가락으로 눌러댄다.


일정은 정해져 있고 가야 할 곳은 많아 추억을 만들기는커녕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기만 하다.


둘만의 꿈같은 시간을 기대하면서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아들과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라테는 말이야!

삶이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하면서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었는데

고단함으로 지쳐버린 밤이 돌아오면 까무룩 잠들기 바쁘다.


뚜벅이 마냥 열심히 걸어서 돌아다닌 기억과

뷔페 투어하듯 각각의 호텔에 가서 밥 먹은 것 말고는

추억으로 남길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단 한 번뿐이었던 아들과 단둘이 라스베이거스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사실 추억이 뭐 별거인가?

아들과 둘이 같은 방 침대에 누워서 자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모든 것 자체가 추억인거지.


추억 쌓기에 꼭 무슨 대화를 나누고 의미 있는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 듯싶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추억은 쌓인 거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가고 비는 주룩주룩 잘도 내린다.

긴 시간일 것이라 생각했던 두 달의 시간이 다 되어가고

아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은 쭉쭉 다가온다.


산으로 계곡으로 그리고 둘만의 여행도 가보고

나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막상 보내려니 아쉬움이 남는다.

진즉에 그런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졌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도 된다.


역시 두 달은 짧다.

아니 더욱더 긴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절대 길게 느껴지진 않을 그런 마음이다.


사실 둘이 집에서 뒹굴 뒹굴 거리며 보냈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의 시간들이

그 어떤 여행에서 경험했던 것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다.


짧지만 굵게 결혼 전에야 오롯이

아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온전한 시간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늦지 않게 이제라도 이런 소중한 시간을 아들과 보낼 수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더불어 함께 보낸 좋은 기억들은 영겁(永劫)의 시간만큼이나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뇌리에, 그리고 마음속 깊이 오래오래...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다시 그리워진다.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리워진다 우리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그리워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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