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니버스 Jan 19. 2023

마케터의 흔한 퇴사 이야기

쇼핑몰 인하우스 마케터

어제 퇴사하고 정신이 없었는데 잠을 깊게 자고 나니 정신이 조금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잊기 전에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모두가 그리는 이상적인 계획을 가진 퇴사를 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는 못했습니다. 내부 적자로 인해 거의 통보를 받았고, 저도 안 그래도 퇴사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상호 간에 잘 얘기를 나누고 그만두었습니다.


회사에서 수익성 문제로 제가 진행 중인 부서를 접게 되었다고 통보를 받았었습니다. ROAS 뿐만 아니라 대략적인 ROI를 알고 있기 때문에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왔고 이직 자리를 조금씩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쇼핑몰 마케터가 보았던 문제


이제 퇴사했으니 시원하게 말해보자면 브랜딩과 제품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통해 왔던 기간이나 매출에 비해 브랜딩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시간이 필요했고, 제품은 고유하지 않고 가격 경쟁력이 부족해 수익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인력 부족과 현금 부족의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빠르게 수익을 내야 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방법이 없지는 않았지만, 인력과 돈이 부족하니 대신 시간이 필요했고 최대한 빠르게 마케팅을 전개했습니다. 진행해 본 결과 지속적인 개선은 가능하지만, 기초가 탄탄하지 못해 잡아가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그간 회사가 버텨줘야만 했습니다.



개선하는데 비용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당장 개선이 필요한 상세페이지나 이미지 등을 교체하려면 비용이 필요했었는데 그것도 요청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최대한 있는 자원을 활용하려고 했는데 자원이 많지 않아 금방 동이 났습니다.


다른 것보다 제품 문제가 가장 컸었는데, 우리가 파는 물건을 남들도 똑같이 팔고 있었습니다. 같은 제품을 우리가 더 잘 표현해야 수월한 판매가 가능한 상황인데, 상위 포식자들이 마케팅을 이미 잘하고 있고 가격이 낮아 비집고 들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같은 제품에 더 비싼 가격, 수익성과 지속성이 매우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특정 플랫폼에서는 판매가 원활하게 진행되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일부 플랫폼의 판매를 보고 확장을 시도한 것인데 여기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제품이 플랫폼의 특성과 여러 요인이 맞아서 판매가 원활하게 되었던 것인데, 내부에서는 이것을 제품의 경쟁우위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퇴사하며 느낀 점


마케팅을 죽어라 하는 과정에서 저는 성장했지만 그것도 한계로 가고 있었고, 회사는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니 서로를 위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주요 지표들은 긍정적으로 개선이 잘 되고 있었는데, 회사가 버텨줄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이 객관적으로 너무 짧았습니다.



팀장으로 입사하고 거의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렇게 단기간 유지도 어려우면 채용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이야 이런저런 일이 많으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그래도 1년 정도는 유지할 생각을 하고 사람을 신중하게 채용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제가 위에 일하면서 느낀 점들을 내부에 시원하게 공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연하지만 상당히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작은 기업에는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홀가분한 퇴사


그래도 긍정적인 것은 제가 좋은 기회를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퇴사 자체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걱정이 많았던 회사에서 퇴사해서 좋은 기회를 찾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가끔 퇴사할 때 좋지 않게 마무리가 되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서로서로 배려하며 잘 마무리가 되어 좋습니다. 일도 최선을 다해서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찝찝함이 없습니다. 


마케팅하면서 초기 추이를 지켜보느라고 주말과 밤도 없이 들여다보고 분석한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한 연애는 후회가 없다는 말처럼, 아주 후련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마케팅하면서 초기부터 이렇게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면서 일한 것은 처음이라,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한 달 만에 번아웃이 왔었는데 결국 돌파구를 찾으면서 해결되기는 했었습니다.






이제 잠깐 쉬면서 글도 열심히 쓰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알아봐야겠습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제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연한 카피라이팅을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