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를 읽고
류귀복(柳貴福), 얼마나 귀한 자식이었으면 이름을 ’ 귀할貴, 복福이라 지어주었을까.
그는 로비에 성당이 있는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다. 강 건너에 있는 똑같은 건물에서, 간암 말기 판정받은 엄마와 나는 로비의 성당을 지날 때마다 간절한 기도를 했었다. 간절히 기도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 하루는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하루인가.
귀복(貴福)이라는 귀한 아들에게, 신혼의 어느 날 갑자기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중증 난치질환이 찾아왔다. 한쪽 팔이 30도 정도의 각도로 굽어지더니 일직선으로 펴지지 않았다. 며칠 후에는 두 다리가 심하게 저려와서 열 걸음을 채 옮기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눈의 포도막염 치료를 위한 눈에 맞는 주사의 공포와 슬픔, 원형 탈모, 펴지지 않는 왼쪽 팔, 심하게 저린 다리… 차라리 생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평생에 잊지 못할 가슴 아픈 말을 힘겹게 꺼내셨다.
“엄마가 아프게 낳아줘서 미안해”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눈물샘이 폭발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어머니 탓으로 돌리며 원망한 적은 없다.
다행히 효과가 뛰어난 주사 치료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고통에 서서히 무뎌질 수 있었으나. 통증은 그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기쁨과 슬픔에 수없이 교차되는 나날을 보냈다.
그는 2009년부터 로비에 성당이 있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영상을 촬영하여 모니터에 띄우는 ‘치과 방사선사’이다.
그는 중증난치질환을 앓으면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는 법을 배웠다. 지금까지 인내심 많은 아내 덕분에 행복한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료들 덕분에 뛰어난 업무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넘치는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 덕분에 잘 성장할 수 있었고, 자식처럼 아껴주시는 장인, 장모님 덕분에 부끄럽지 않은 사위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본인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진다면 상대방이 나를 빛나게 해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자신이 밝게 빛나는 순간이 있다면, 자신을 환하게 비춰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한다.
그는 20살에 원추각막 판정도 받아 20년 동안 안경 도수 교정을 하고 있기도 하다. 강직성 척추염과 원추각막은 유전질환이라 아이 갖기가 두려웠다. 그러던 중, 결혼 후 5년이 되던 해 보석같이 소중한 딸아이를 얻게 되었다.
이름은 류서아(柳㣽妸) 어질㣽 아름다울妸, 살면서 가장 많이 불러줄 엄마가 어질고 아름답게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서아가 5살 때 사시, 약시, 원시 판정을 받고 안경을 쓰고 유치원에 가자 그는 불안하다.
딸 서아가 커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딸바보 아빠는 스마트폰 사진 촬영에 대해 공부를 했다. 셔터를 누르는 매 순간이 그의 가족의 가장 젊고 행복한 시절이다. 서아의 미소를 담다 보면 흐뭇하게 웃고 있는 그를 발견하게 된다.
서아의 유치원 행사 날에는 ‘일일 vj’가 되어 서아와 친구들을 촬영해 준다. 엄마들의 프로필 사진으로 선택되면 뿌듯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가 없다면 아무리 햇살 좋은 야외에서 구도와 각도를 사용해도 예쁜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카메라 프레임 밖에서 자신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가족들이 있어야만 아웃포커싱 되며 웃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이 두드러지길 바란다면 곁에서 흐릿하게 있는 조연이 먼저 행복해지면 된다고 한다.
어린이날인 오늘, 아마도 그는 가장 젊고 행복한 순간의 7살 서아의 미소를 누구보다 많이 담울 것이다. 딸 서아에게 아빠는 두 가지 소원이 있다. 책을 좋아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다.
로비에 성당이 있는 건물은 그에게 직장을 넘어선 감사함이 있는 곳이다. 응급실과 외래주사실, 류머티즘내과가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덕분에 10년 가까이 병원 직원과 환자를 겸임하면서 직장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2주에 한 번씩 자가면역치료제 주사를 맞으면서 비타민처럼 진통제를 수시로 복용하다 보니 병원 직원인지 환자인지 구별하는 게 늘 어렵다.
저질체력으로 골골대면서도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는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매달 1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선물할 기회가 있으면 아무튼 책 선물을 한다.
글을 읽는 것만큼 쓰는 것도 좋아해서 정성을 담아 담백하게 써 내려간 글이 누군가에게 심심한 위로가 될 때 가장 뿌듯함을 느낀다. 브런치 스토리의 인기작가이기도 한 류귀복 작가는 책을 출간했다.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
류귀복 지음
지성사 출판
류귀복 작가의 책을 읽어 보고 싶어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다. 4층 5번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집어 들었다. 방사선사라는 전문직에 대한 설명이 많아서인지 의학 코너에 꽂혀있다. 창가에 서니, 그가 근무하는 로비에 성당이 있는 건물이 바로 앞에 보인다.
사랑하는 아내와 소중한 딸과 함께라면 아픔까지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꿈같은 삶을 살고 있는 그가 그 건물 안에 있다. 그에게 손짓이라도 하고 싶어 진다.
결혼 후 처음으로 꽃바구니를 보냈을 때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접하며 그는 이후로는 기념일이 되면 잊지 않고 꽃을 챙기고 있다. 예쁜 꽃만 바라봐도 미소가 지어지는데 꽃에 담긴 마음까지 느껴지니 자연스레 작은 한 송이 꽃이라도 미소가 주어진다. 예쁜 문구와 항상 함께 한다.
“수현아 생일 축하해. 다시 태어나도 나랑 살자”
“초콜릿보다 달달한 인생을 만들어주는 아내여서 고맙고 사랑해”
아내 또한 꽃꽂이 원데이 클래스 이후 계절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꽃들로 꽃꽂이를 하고 테이블을 장식한다. 꽃은 그들의 삶의 일부이기에 꽃을 사랑하는 내게도 큰 울림을 준다. 직장에서 화이트 데이를 맞아 남자직원들이 여직원들에게 초콜릿 상자를 선물할 때도 그의 기발한 문구에 여직원들이 환호한다.
“꽃밭에서 일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지닌 힘은 강하고 파급력도 커서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를 기준 좋게 바꾸어주기도 하고 여럿을 한꺼번에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예기치 않은 일들로 가득한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있을까.
아픈 시간을 원망하는 비중이 높은 삶에서 건강한 순간을 감사하는 비중을 높여갈수록 그의 행복의 평균값이 높아진다. 타인의 시선에서 보면 부러운 삶이지만 스스로 감사하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없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본인이 감사할 수 있다면 행복해진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지름길은 감사에 있다.
타인의 기준에서 행복할 필요는 없다. 내 기준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가진 상대적 가치의 기준선이 낮아지면 된다. 친구가 그에게 잘 지내냐고 묻자 대답한다. “잘 지낸다의 기준치를 낮게 하면 잘 지내” 천사 같은 아내와 본인이 천사라고 믿는 딸과 함께 살고 있으니 지금 있는 그곳이 그에게는 곧 천국이다.
“수현아, 사랑해. 우리 지금처럼만 행복하자”
류귀복 작가는 짧은 여정 동안,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떠올려보길 바라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잘 지내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