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았던 인생 첫 고백 ssul
검지 손가락을 컵 입구 빙빙 돌리며
“어 사실” “아니야.. 말 안 할래..” “
내 앞에 있는 한 남자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이성에게 설레게 고백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시연했다.
나는 그대로 따라 했다..
“어 사실… 아니야.. 말 안 할래.. 아니다.. 진짜 말 안 할래.. “
“뭔데?”
“음.. 나 오빠한테 호감 있어. “
얼떨결에 첫 고백을 해버렸다. 한 번 정도는 내뱉어야 할 말이었다.
그는 당황했고 생각에 잠겼다가 웃기를 반복하더니 질문을 했다.
“그니까.. 진짜야? 왜? 아니 아니 언제부터?”
같은 또래보다 한참 위인 자신을 왜 좋아하는지 의문인 듯했다.
나도 그게 의문이긴 한데..
“어떤 점이 좋았던 거야?”
이어 나온 질문에도 그래서 대답하기 어려웠다.
딱히 어떤 점이 좋았다기보다는 ‘호감’이라는 감정 그 자체였으니까.
작게 한번 튀었던 불씨를 혼자 꺼트리고 잊었다가 오랜만에 보니 또 반짝하고 튀었다.
스스로에게 “도대체 왜 이 사람이 좋은 건지” 따지듯 여러 번 질문했지만 별 다른 이유를 찾지 못해 “그래, 또래 만나는 게 낫지. 그 오빠한테도 나한테도. “라는 결론을 혼자 짓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술기운을 빌려했던 고백은 운동 후에 마주하는 시원한 바람 같았다.
그 마음이 어느 정도 컸는지 작았는지 조차도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이런저런 현실적이고 한편으로는 공상적인 생각들이 나를 꽤나 괴롭혔나 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오늘 당장 누구에게 마음을 표현할 것인가요?”라고 물었던 교수님의 말씀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
정말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이 정도 말은 해야 되고, 또 할 수 있지 않을까.
“왜 우리는 표현을 하지 못하지?”
‘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 때문에 호감도 키우지 않고,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담아두기에는 예쁜 마음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사귀는 것과 별개로, 나는 그냥 이런 마음을 갖고 있었다고. 표현하고 싶었다.
오히려 말을 하고 나니까 불씨의 파편들이 사라지고
따뜻한 기운만이 남았다.
그는 대답했다.
“지금은 네가 아직 대학생이고 하니까 2년 후에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서 내가 너한테 연락할 수도 있는 거고, 일주일 후에 한 달 후에 조심히 연락할 수도 있는 거고. 다가간다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갈게. “
연애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제대로 된 해석은 못하겠지만 기분 좋은 repos(쉼)였다.
(친구들은 이걸 어장관리라고 부른다고 했지만.. )
거절 같지 않은 거절을 듣자 하니, 그가 왜 좋았는지 알겠다.
나 역시도 만난다면 비슷한 삶의 궤도를 걷고 있을 즈음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나’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 만..
- 대화 중 - 에필로그
“지금 기분 좋지? 엄청 웃네”(여)
“그럼 좋지. 고백을 듣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게 더 예의 없는 거야.”(남)
“막상 만나자고 들이대면 부담스러워할걸? “ (남)
“그건 모르지” (여)
“코인 노래방이나 가자. 이거 안 가면 더…”
“서로 어색하지 않게 행동하기다?” (남)
(여자의 속마음: 하나도 안 어색함. 다만 조금 남사스럽긴 하다..)
-인생 첫 고백 후기-
표현하고 나니까 시원하니 좋았다.
계속 생각나는 사람 없이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면 더 환하게 맞이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마무리도 잘 지을 수 있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종종 생각날 것 같은 순간이다.
용기 있고, 귀여운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유의미한 결과는 없었지만 기분 좋았던 고백이었다.
- 고백 조언 -
한 번 고백했다고 조언하는 게 웃긴데..
그래도 이 글을 보는 누군가 스스로 풀리지 않는 문제에 답답해하고 있다면
이해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말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디선가 이런 구절을 봤던 기억이 난다.
“마음껏 보고 싶다고 말하고, 마음껏 사랑한다고 말해요!”
동의한다.
“말하면 어때. 누군가 나를 좋게 보고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인데. :)”
자, 다시 한번 일상으로 Go back!
주의! 상대가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상태라면 고백을 하지 말 것!
공격은 안 되고, 작은 표현은 된다는 뜻이다. 특히 친구 관계에서는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fun facts! 사실 너무 좋아하면 앞에서 밥도 못 먹는 나 : 뚝딱이가 됨.
적당히 호감을 느끼는 것의 이로움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훅!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있으면... 있는 거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