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겨버린 초승달, 형태가 생겨버린 슬픔
"아직도 짐 안 쌌어?"
오후 7시에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엄마의 음성.
다음 날 새벽 난 프랑스로 떠난다.
"응!"
"도대체 언제 싸려고?"
한겨울에 뿜어 나오는 입김처럼 음성에 답답함이 서려있다.
내일 떠나는 것이 안 믿겼는지.
철이 덜 들었는지.
공항으로 출발하기 12시간 전,
12개월짜리 짐도 다 안 챙겼지만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러 아이스링크장을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마음대로 해라"
엄마가 했을 때 가장 무서운 말을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을 새워서 새벽 4시가 되니 반쯤 물에 젖은 빵 모양을 한 초승달이 보였다.
한 시간 동안 여느 때나 그랬듯 대충 빠르게 방 청소를 하고 분주한 몸놀림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캐리어 큰 거 두 개. 배낭 하나. 포르투갈이라고 쓰여있는 천 가방 하나.
아빠가 짐을 차에 모두 실었다.
엄마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고, 무뚝뚝하던 동생이 인사를 하다 하늘을 쳐다봤다.
그 모습을 보니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웃으며 서둘러 동생과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가 나왔던 집으로 다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한식을 먹었다.
아빠가 여행용 크로스백을 사서 주었다.
"나는 행복하게 보내줄 거야!"
아빠가 눈물을 아주 조금 훔치며,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울을 바라보듯 나도 눈시울이 아주 약간 붉어진 채로 미소를 지었다.
슬픔은 재빠르게 꾹꾹 눌렀다.
'나도 웃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
이제는 아빠와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짐 검색대로 들어가는 길이 하필이면 텅 비어 있었다.
'오늘 떠나면 일 년 뒤에나 볼 수 있겠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영화 관련한 전공으로 다시 프랑스 대학을 가겠다는 다짐.
처음으로 온전히 내가 내린 선택이었다.
서로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짐 검사하는 곳에 들어서자마자, 아빠에게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자마자
몇 시간 전부터 꾹꾹 눌러온 슬픔의 기운이 퍽! 하고 터져 나왔다.
가슴에 체한 듯 얹혀있던 슬픔이 줄줄줄 흘렀다.
애석하게도 노트북 가방에서 노트북이 꺼내지지 않았다.
울면서 계속해보는데 뒷사람들은 매섭게 쳐다볼 뿐이었다.
옆에서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홀로 서기'의 시작이었다.
'그냥 빼지 말고 두세요.'
보안검색요원이 말했다.
그렇게 14시간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과연 어떤 일들을 겪게 되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바뀔까. 정말 해낼 수 있을까.'
비행기가 뜨기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미안해. 가기 전에 맛있는 거 해줘야 하는데 하나도 못해줬네."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눈앞이 또 뿌예지고야 말았다.
그러든 말든 언니는 방에서 잘 자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