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보 프랑스어반
칠레, 멕시코, 우크라이나, 터키, 베네수엘라, 이탈리아, 베트남, 한국, 가나, 루마니아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모였다.
나이는 10대에서 60대로 다양했다.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처럼, 우리는 프랑스어를 차근차근 배워나갔고,
유치원 아이들을 다루는 선생님처럼, '나하'는 우리를 대했다.
'나하' 선생님의 큰 리액션과 다채로운 표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웃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서 이런 에너지가 나오지?"하고 감탄하기 일쑤였다.
보면 볼수록 '나의 40대도 그녀의 모습과 조금이라도 닮았으면'하고 바라게 되었다.
뽀글뽀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 분방한 머리카락까지
자유롭고 긍정적인 그녀를 표현해 주는 듯했다.
수업의 첫날, 우리는 동그란 원을 만들어 서로를 소개했다.
행동을 넣어 자신의 이름을 소개해야 했는데, 부끄러움에 서로 눈치만 보는 우리 사이로
'나하' 선생님이 먼저 '나! 하!'하고 외치며 오른발 뒤꿈치로 바닥을 한 번, 앞꿈치로 바닥을 한 번 쳤다.
차례가 다가 오자,
펄떡이는 심장과는 다르게,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써니'라고 소개하며 기역과 니은 모양으로 두 팔을 움직였다.
나하의 눈은 낙타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커지더니
자신의 딸의 별명도 써니라며 사랑스러운 이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어색하면서 유쾌했던 자기소개가 끝났다.
쉬는 시간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프랑스에 왜 왔어?"
"이탈리아는 심심하고 할 것도 없고,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언제까지 있을 거야?"
"잘 모르겠는데 아마 1년 이상?"
"그러면 나중에 뭐 하고 싶어?"
"모르겠는데, 나 아직 23살이야."
동갑내기인 이탈리아 친구 '나딜'의 말에 한동안 머리가 띵해졌다.
만 스물셋, 한국에서는 누군가는 취직을 했고, 누군가는 취직을 준비 중이며
나중에 뭐 할 거냐는 질문에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아야 할 나이.
나 또한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따르지 않았기에 대학 졸업을 잠시 중단하고
새롭게 시작하고자 프랑스에 왔는데
그럼에도 부담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그의 대답은
나를 해방시켰다.
인지조차 할 수 없었던 어떤 것으로부터.
앞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어떠한 가치관을 접하게 될지 기대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