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에게는 훌륭한 전통문화가 존재하지만,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그 계승과 보존이 단절되는 아픔을 겪었다. 1980~90년대 경제 성장과 교육 수준 향상과 더불어, 우리는 마치 고고학자들이 왕릉을 발굴하듯 잊혔던 전통문화들을 되찾는 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관계의 문화, 즉 어울림의 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 곳에 정착하여 씨족사회를 이루고 서로 돕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웠던 농경문화의 특성상, 한국인에게 관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부르는 것은 곧 '관계의 존재'라는 뜻이다. 진정한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없을뿐더러 숨 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관계는 삶의 본능에 활력을 불어넣고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된다. 그렇다면 유독 한국문화에서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의 전통과 관계 문화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이국에서 경험한 수직의 미학
1980년대 유학 시절, 친구와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출발하여 독일 국경인 라인강을 건너 슈바르츠발트(흑림)를 통과한 후, 뮌헨,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거쳐 빈까지 약 2주간 이어진 긴 여정이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유학 시절 가장 큰 추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숲이었다. 특히 흑림은 독일가문비나무, 너도밤나무, 산악 단풍, 잣나무, 유럽 마가목 등으로 가득했는데, 나무들이 하나같이 하늘로 곧게 뻗어 있어 감탄을 자아냈다. 동시에 컴컴한 숲과 엄청나게 큰 나무들을 보며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30여 년이 지난 후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했을 때, 그 두려운 감정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젊은 시절의 여행과는 달리 '실버 코스'로 온천 지대를 주로 방문했다. 온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을 보며 일본이 화산과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에 따른 혜택도 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비해 습한 일본 날씨는 다다미, 유카타, 온천욕, 목조 2층집 등 일본의 생활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본의 산은 마치 인공적으로 조림된 듯 반듯하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특히 후쿠오카의 삼나무 숲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빼곡한 삼나무들이 조경된 것처럼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우람한 나무들을 보며 흑림에서 느꼈던 수직적인 위압감이 되살아났다. 이는 우리나라 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에 더욱 생소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후쿠오카의 명물인 구마모토 성도 방문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총사령관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1607년에 개축한 성으로, 일본 3대 성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성벽의 선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돌을 쌓은 방식이 가지런하지 않고 삐뚤빼뚤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 병사들이 조선의 엇갈린 돌 쌓기 방식 때문에 성을 공격할 때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곧게 쌓은 돌에 비해 엇갈리게 쌓은 돌이 공략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경험한 기요마사는 조선의 성 쌓기 기술자들을 대거 잡아다가 구마모토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머나먼 이국에서 성벽을 쌓았을 조선 기술자들을 생각하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조선 기술자들 덕분에 구마모토성은 실전에서도 난공불락의 견고한 요새가 되었고, 곡선의 미학이 잘 드러난 아름다운 성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실 일본의 건축 양식은 삼나무의 수직성을 닮아 있다. 일본의 전통 가옥은 대부분 직선적이고 반듯하다. 이러한 일본의 직선주의와 개인주의는 식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대체로 그들은 식탁에서도 사각형의 개인 쟁반에 각자의 음식을 놓고 자기 음식만을 먹는다. 다른 사람과 음식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젓가락이 식탁 곳곳을 왕래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경험한 일본의 색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잿빛'이라고 말하고 싶다. 기와와 나무로 된 2층집은 우중충한 잿빛이었다. 가이드는 이러한 주택 색깔이 주위 자연과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지만,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잿빛은 왠지 모르게 외롭고 우울한 느낌을 주었다. 철저한 개인주의, 남에게 간섭하지도 받기도 싫어하는 태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남도 자신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성향, 조용한 생활로 옆집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모습, 그리고 개인적인 삶을 즐기려는 태도는 옆 나무와 전혀 닿지 않고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간 삼나무의 수직성, 개인적인 식탁, 그리고 잿빛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굽은 소나무의 미학
한국의 산에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직선이 아니라 비스듬한 대각선과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서로 엉켜 있는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무질서한 듯 아무렇게나 서 있는 소나무는 사실 한국인의 실생활에 깊이 뿌리내린 곡선 혹은 엉킴의 미학을 대변한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높고 깊은 산속에 있는 웅장한 나무가 아니라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정겨운 나무다. 노래 가사에도 흔히 등장하고 그림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하는 소나무에는 한국인의 혼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애국가 2절 가사에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남산의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 영원히 존재하는 동안 한국인이 행복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애국가에서 굳이 소나무를 언급한 까닭은 소나무가 바로 한국인의 나무이자 한국의 전통을 상징하며, 한국의 문화와 혼이 고스란히 배어있기 때문이다. 가곡 <옛 동산에 올라>의 1절에도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베어지고 없구려"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이 노래는 고향을 방문하여 어릴 적 놀았던 동산을 찾았으나 그곳의 상징이었던 커다란 소나무마저 베어진 허전함을 노래하며, 일제에 의해 조국을 강탈당한 비애를 사라진 소나무를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소나무는 한민족의 상징이었다.
동네 야산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나무는 과거 경제가 어려웠을 때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였다. 마른 솔잎은 불쏘시개가 되었고, 솔잎은 건강식품으로, 송진 또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소나무는 종류에 따라 훌륭한 건축 자재가 되며, 소나무 아래에서는 유명한 송이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러나 어릴 적 한국 산의 40% 이상을 차지했던 소나무는 굽은 형태 때문에 쓸모없는 나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하루빨리 소나무를 잘라내고 유럽이나 일본처럼 곧게 뻗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어린 마음에 우리는 복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못생기고 미워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삐뚤삐뚤한 소나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나무라고 생각한다. 소나무는 한국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나무다. 소나무 숲은 나무줄기들이 서로 상관하듯 엉켜 있다. 곧게 뻗은 플라타너스나 삼나무와는 달리 소나무는 둔탁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무게감이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곡선을 그리며 비스듬히 서 있는 소나무는 옆의 나무를 상관한다. 옆 나무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오로지 하늘을 향해 뻗는 삼나무와는 달리, 소나무는 하늘보다는 주변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곡선의 미학과 어울림의 문화
한국인은 이러한 소나무의 굴곡을 통해 전통 건축이나 전통 의상에 나타나는 유명한 곡선의 미학을 배우지 않았을까? 한옥의 처마 곡선이나 한복, 버선에서 볼 수 있는 곡선은 소나무의 곡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식탁 문화 또한 소나무와 밀접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개인 쟁반에 차려진 일본 식탁이나 음식을 자기 접시에 담아 먹는 서양 식탁에 비해, 한국의 식탁에서는 음식을 공유한다. 밥과 국을 제외한 반찬은 식탁에 둘러앉은 누구나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각자는 반찬을 집기 위해 식탁 이곳저곳으로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인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젓가락의 동선은 자칫 충돌할 수도 있지만, 식탁에서 젓가락 부딪힘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의 표정과 움직임을 눈치로 살피며 양보하기 때문이다. 젓가락의 움직임이 무질서하지만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상생하는 식탁 미학은 구부러진 소나무들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과 다를 바 없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하는 식탁 문화는 옆 나무와 섞여 있는 소나무의 무질서한 모습, 즉 수평성과 맞닿아 있다.
한국의 전통 돌담도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잘 보여준다. 직선적이지 않으며 일관성이 없는 돌담은 구멍과 여백 덕분에 오히려 단단함을 보장받는다. 돌들이 서로 힘을 겨루어 제자리를 찾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무너지지 않는 돌담이 된다. 자연 형태의 돌이 지닌 곡선과 그로부터 생겨난 여백은 관계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크기와 형태가 다른 묵직한 돌들이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돌담은 금방 무너져 버릴 것이다. 소나무나 돌담처럼 겹치고, 떠받들고, 의지하고, 상관하는 문화, 즉 관계의 문화가 바로 한국의 전통문화인 것이다. 직선이 아닌 곡선은 시각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관계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옆 사람을 '상관하는' 문화가 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한국에서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고향, 나이, 부모님, 형제 관계, 배우자의 직업 등 사사로운 질문을 스스럼없이 했다. 이른바 '호구조사'를 해야 속이 풀렸다. 혼기가 지난 노총각이나 노처녀를 만나면 대뜸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따지거나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나서는 일도 흔했다. 이는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상관하는' 문화가 지나치면 배려 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그래서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화병'이 많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우울증'이 많다는 농담이 있기도 하다.
성숙한 관계의 문화로 나아가기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숙고해야 할 것은 소나무나 돌담처럼 관계의 풍습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이다. 이 관계성은 지나친 간섭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옆으로 누운 소나무는 다른 소나무와 맞닿아 있지만, 그로 인해 두 소나무의 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여럿의 젓가락질이 오가지만 충돌하지 않고 모두가 맛있고 배부른 식탁이 된다. 이처럼 관심을 가지되 그 관심으로 인해 상생할 수 있는 지혜,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계 문화다.
지금까지 한국인은 이러한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여러 번 보여주었다. IMF라는 국가적 환란을 맞아 장롱 속에 깊이 간직해 놓았던 금붙이를 내놓았던 일, 유조선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서해안이 오염되자 너도나도 몰려들어 손으로 일일이 돌멩이를 닦아 내던 일은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소나무와 식탁, 그리고 돌담에서 배운 곡선과 어울림, 소통의 미학은 과거 대가족의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되었다. 형제자매들 사이에 갈등과 화해를 겪으며 세상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고, 양보하는 미덕과 타협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형제자매 사이의 건전한 경쟁은 훗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요즘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숟가락을 들고 아이의 뒤를 쫓아다니는 젊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 장차 그 아이가 성장했을 때 소나무와 같은 어울림의 생명력과 진정한 소통 의식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