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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의 신발

동화

by 인산

신발 가게에 안 가 본 사람은 없겠죠? 고무 냄새를 풍기며 예쁘게 단장한 신발들이 신발장에 죽 늘어서 있는 모습, 참 멋지죠? 그런데 우리가 신발을 고르는 걸까요? 신발이 우리를 고르는 걸까요? 당연히 우리가 신발을 고른다고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잘 들어봐요. 손님이 신발가게에 들어오면 신발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를 쳐요. 왜냐고요? 왜냐면 이제 저 손님이 누군가를 골라서 가져갈 거거든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자기 차례가 될 수도 있잖아요. 신발들은 저마다 뽐내며 가능한 눈에 띄는 자세를 취하면서 자기를 골라달라고 아우성치는 거예요. 선생님이 질문하면 서로 대답하려고 손을 높이 이 더 높이 드는 아이들을 상상해 봐요. 그런 식이라니까요.


한 손님이 어떤 신발이 맘에 들었다고 쳐봐요. 그럼 그 신발을 신어보겠죠? 그때가 신발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에요. 신발은 최선을 다 해서 손님의 발에 맞추려고 노력해요. 맞춘다는 것은 크기를 맞춘다는 뜻도 되지만 모양과 색이 손님의 양말과 옷의 색과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에요. 조화. 참 멋진 말이죠?


“크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신발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해요. 크기는 다양하니까 걱정 말고 모양과 색이 맘에 들면 말하라는 뜻이죠. 손님은 신발을 신고 이모저모 쳐다봐요. 거울에 비춰보기도 하고 걸어보기도 하고 옆 사람한테 물어보기도 해요.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어요. 그러면 신발은 가슴이 두근거려요. 맘이 약한 신발은 아예 눈을 감기도 하죠. 신발 가게의 모든 신발은 입을 꾹 다물고 모두 집중해요. 티끌 소리 하나 없는 침묵 속에서 손님의 입을 쳐다보는 거예요.


“다른 거 볼까요?”


손님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면 탄식하며 신발들은 또다시 자기를 선택해 달라고 아우성을 쳐요.


“맘에 들어요.”


이렇게 말하면 그 신발은 손님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거고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에요. 모양은 골랐지만 크기가 남았거든요. 이제부터는 형제들의 싸움이 시작되는 거죠. 형제들의 싸움이라... 왜냐하면 똑같은 모양과 색을 가졌다 해도 신발의 크기가 다양하거든요.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모양과 색깔이 같은 신발들은 한 어머니 배속에서 나온 형제들이라고. 크기만 다르지 모든 것이 똑같잖아요. 가장 큰 사이즈가 맏형이라면 제일 작은 사이즈는 막내라고 할 수 있어요.


“225 주세요.”


영수 엄마가 말했어요. 신발가게 주인은 긴 장대로 꼭대기에 있는 신발 상자를 꺼내요. 상자에는 커다란 검은 글씨로 ‘225’라고 쓰여 있거든요. 아까부터 위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225는 한숨을 몰아쉬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어요.


“아, 지금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이제야 신발 구실을 하게 생겼어.”

“한번 신어보렴.”


영수는 다소곳이 앉아 신발을 신었어요. 225는 가능한 한 몸에 힘을 빼고 영수의 발이 쏙 들어오자 얼른 안아줬어요.


“야 잘 맞는다. 아주 예쁘네.”


엄마와 가게 주인이 동시에 말했어요. 그러면 영수 마음도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어요.


“게임 끝, 게임 끝났다. 다른 손님 오나 보자.”


실망스러운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어요. 225 형제들은 225를 축하해 주었어요.


“야 225, 잘 가. 축하한다.”

“어 그래, 나 먼저 갈게. 잘 있어.”

“우리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면 안 돼. 훌륭한 신발이 되어야 해.”

“알았어. 걱정 마.”


신발은 두 짝이에요. 두 짝은 쌍둥이라고 해도 좋아요. 오른쪽 신발과 왼쪽 신발은 크기와 모양이 똑같잖아요?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다르다고요? 그럼 밑바닥을 서로 맞춰 봐요. 똑같죠? 오른쪽 신발과 왼쪽 신발은 사이가 좋아야 해요. 서로 박자가 잘 맞아야 하기 때문이죠. 발이 멈추면 두 짝의 신발은 나란히 있지만 걸음 걷기를 시작하면 하나, 둘, 하나, 둘 하면서 서로 번갈아 발을 밀어주잖아요. 두 신발의 리듬은 그만큼 중요해요.

하지만 어떤 때는 쌍둥이 신발이 다투기도 해요. 생각해 봐요. 오른쪽 신발과 왼쪽 신발이 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겠어요? 어린이들이 가끔 넘어지는 이유는 바로 신발들이 다투기 때문이에요. 두 신발이 싸우면서 서로 엉켜 버리면 넘어지는 거죠. 쌍둥이 신발이 왜 싸우냐고요? 글쎄요... 그럼 영수의 새 신발은 어떤가 볼까요?




신발이 처음부터 발과 친한 것은 아니에요. 신발 가게에서 처음 신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막상 신고 돌아다니면 좀 불편해요. 새 신발과 발이 친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서로에게 냉담한 거죠. 발이 억지로 맞추려 하면 신발은 가끔 짜증도 내요. 여러분 가운데 새 신발을 신었을 때 발에 물집이 생긴 적이 있죠? 새 신발이 발과 친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에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대개 신발과 발은 사이가 좋아져요. 그때가 되면 발냄새도 정겹고 신발이 발에 맞추어 스스로를 바꾸기도 해요. 사이가 좋아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그거야 간단해요. 신발을 신고 다닐 때 발이 편하다는 느낌이 들면 사이가 좋다는 증거죠. 발과 신발이 서로를 비비면서 느낌이 좋다는 신호를 보내면 열이 나요. 걸었을 때 발이 더워지거나 땀이 나는 경우가 있죠? 그건 발과 신발이 사이가 좋아서 그런 거예요.


영수도 방 안에서 새 신발을 신어보았어요. 기분이 참 좋았어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새 신발을 신는 기분 이해할 수 있죠? 영수는 새 신발을 신은 채 마당으로 내려왔어요. 그리고 천천히 걸어 보았어요. 신발 바닥에 흙이 묻는 것이 신경이 쓰였지만, ‘어차피 더러워질 텐데.’ 이렇게 생각하며 위안했어요. 약간 뒤꿈치가 불편했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시간이 흘렀어요. 영수는 왼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요. 왼쪽 다리를 끌다 보니 영수 신발은 왼쪽 신발이 오른쪽 신발보다 훨씬 빠르게 닳아요. 오른쪽 신발은 아직도 깨끗했지만, 왼쪽 신발은 어느덧 닳아 버렸어요. 이런 사정을 알 까닭이 없는 오른쪽 신발이 투덜거렸어요. 사실 오른쪽 신발은 좀 이기적이었거든요. 쌍둥인데 성격이 비슷하지 않냐고요? 물론 다르죠. 세상에서 똑같은 성격은 하나도 없잖아요.


“좀 잘할 수 없겠어? 그게 뭐니?”

“잘 안돼. 견디기가 힘들어.”

“그래도 견뎌야지. 나 봐. 아직도 끄떡없잖아.”


오른쪽 신발은 자신이 단단해서 잘 견딘다고 생각한 거예요.

왼쪽 신발은 오른쪽 신발의 눈치를 보면서 이를 악물고 영수의 몸무게를 지탱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왼쪽 다리를 끌 수밖에 없는 영수의 발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어요.


시간이 갈수록 오른쪽 신발과 왼쪽 신발은 차이가 더 벌어졌어요. 오른쪽 신발은 청년처럼 힘이 넘쳐 나는데 왼쪽 신발은 등인 휜 노인처럼 해진 곳이 많아졌어요. 오른쪽 신발은 왼쪽 신발이 더욱 못마땅해졌어요. 왼쪽 신발이 다 닳으면 자기가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소용없잖아요.


“너 때문에 나까지 큰일이 나겠다. 정말 신경질 난다.”


성격이 급한 오른쪽 신발은 참지 못하고 왼쪽 신발을 자꾸 걸기 시작했어요. 그럼 어떻게 되겠어요. 둘이 싸우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신발이 자꾸 걸리자, 영수는 넘어지는 일이 많아졌어요. 영수의 무릎에 약을 바르며 엄마가 말했어요.


“신발을 새로 사든지 해야지 원”


신발은 깜짝 놀랐어요. 이제 끝장이구나 생각하며 가만히 있는데,


“그래도 한쪽 신발은 아직 새것이니까. 조금만 더 신을래요.”


영수가 말했어요.


“휴”


한숨을 쉬면서 오른쪽 신발이 말했어요.


“너는 내 덕분에 살아남게 된 거야. 나 아니었으면 넌 벌써 재활용 쓰레기통에 들어갔을 거라고.”


오른쪽 신발은 거만하게 왼쪽 신발을 쳐다보았어요. 왼쪽 신발은 더욱 주눅이 들었어요.




하루는 왼쪽 신발만 혼자 남게 되었어요. 영수와 함께 나갔던 엄마가 다시 들어와 오른쪽 신발만 들고 갔거든요.


“이상하다. 오른쪽 신발을 어디로 데려갔을까?”


왼쪽 신발은 무척 궁금했어요. 둘이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금방 오겠지. 뭐.”


이렇게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도 오른쪽 신발은 오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혼자 있으려니 왼쪽 신발은 심심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어요. 오른쪽 신발에게 잔소리를 듣고 시달림을 받을 때는 밉고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보이지 않자 그리워졌어요.


“참 묘하네. 구박할 때는 꼴 보기 싫었는데. 안 보니까 보고 싶네.”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어느 날 영수가 불쑥 나타났어요. 왼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있었어요. 왼발과 다리를 통째로 깁스했어요. 오른발? 오른발이야 신발을 신고 있었어요.


“아하, 그래서 나를 놔두고 갔구나.”


영수의 모습을 본 왼쪽 신발은 금방 알아차렸어요. 그동안 영수는 왼쪽 다리를 수술하러 병원에 입원했던 거예요. 오랜만에 만난 쌍둥이 신발은 반가워했어요. 서로 많이 보고 싶었나 봐요. 참 이상하죠! 같이 있을 때는 그렇게 싸우는데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은 거...


“안녕!”

“안녕!”


둘은 반갑게 인사를 했어요. 왼쪽 신발이 인사를 하면서 오른쪽 신발을 쳐다봤는데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해 있었어요. 그사이 엄청나게 닳은 거죠. 그러지 않겠어요? 왼발은 목발에 의지하고 오른발로만 걸었다고 생각해 봐요. 오른쪽 신발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영수가 방으로 들어가자, 오랜만에 오른쪽 신발과 왼쪽 신발이 나란히 놓이게 되었어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했지만 어색하기도 했어요. 오른쪽 신발은 왼쪽 신발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어요. 자기가 더 낡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거든요. 옛날에 왜 왼쪽 신발이 자기보다 더 빨리 닳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 거죠. 오른쪽 신발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왼쪽 신발이 말했어요.


“괜찮아. 우린 어차피 한 몸이야. 우리 둘 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머지 짝은 아무 쓸모가 없어. 그게 우리 신발의 운명이잖아.”

“미안. 옛날에 구박한 거 미안.”


오른쪽 신발이 들릴락 말락 말했어요.


“영수가 수술이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수술 결과야 어쨌든 우리가 힘을 합쳐서 영수의 발을 편하게 해 주자.”

“그래, 그래, 그렇게 하자.”


둘이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는데 보기가 좋았는지 보름달이 구름 사이를 지나며 이따금 눈을 깜빡였어요. 그렇게 밤이 깊어 갔어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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