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행복은 인류 보편의 가치이지만, 그것을 측정하는 방식은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OECD, 신경제학재단(NEF) 등의 기관들은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하며 순위를 매겨왔다. 그런데 이 지표에서 한국은 꾸준히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 사회가 실제로 불행한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숫자로 답할 수 없는 문제다. 행복지수는 서구적 기준을 바탕으로 설계되었고, 문화적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수치화하는 방식의 문제는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긍정의 배신』에서 지적했듯, 문화마다 행복을 정의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회는 긍정적 감정과 낙관성을 행복의 본질로 보지만, 또 다른 사회는 진지함, 희생, 연대와 같은 가치를 더 중시한다. 따라서 획일적인 지표로 국가 간 순위를 매기는 것은 각 사회가 경험하는 행복의 결을 놓치게 만든다.
덴마크와 한국을 비교하면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더욱 뚜렷해진다. 덴마크는 강력한 복지체계와 높은 세율, 정부에 대한 신뢰, 그리고 소득보다 적성과 자기실현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특징으로 한다. 이런 조건은 개인에게 비교적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보장한다. 반면 한국은 교육비, 주거비, 생계 부담이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으며, 체면 문화와 역사적 가난의 경험 때문에 물질적 성공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에 비교문화가 확산되면서, 개인은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고 낙오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행복지수의 순위에서 한국이 낮게 평가되는 근본적 이유 중 하나다.
흥미로운 점은 행복지수와 자살률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역설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평균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 또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면서도 동시에 높은 자살률을 보인다. 연구자 오스월드는 행복도가 높을수록 자살률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행복이 단순히 물질적 조건이나 사회적 풍요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행복이 높게 측정되는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는 개인의 박탈감이 더 커져 자살률이 상승할 수 있다. 결국 행복은 지표가 아닌 문화적 가치관, 사회적 맥락, 심리적 조건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공정한 제도와 사회적 신뢰가 확립되어야 한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개인이 만족과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또한 비교를 통해 체면을 세우고 우월성을 입증하려는 문화에서 벗어나, 상생과 관계 중심의 문화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일정 수준의 물질적 조건 이후에는 관계, 의미, 자율성과 같은 질적 가치가 행복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단순히 소득이나 복지 수준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 체면 문화,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와 긴밀히 얽혀 있다. 행복은 부의 축적보다 신뢰와 관계, 공정성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된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행복한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뢰 사회를 회복하고 상생 문화를 복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