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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청하기

에세이

by 인산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듯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여럿이 함께하면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가 아닌 존재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발달 심리학에서도 인간은 성장하면서 점차 관계의 폭을 넓혀 나가며 사회적 존재로 자리 잡는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작은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래와의 관계, 사회 속 관계망으로 점차 확장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인간 생존과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필수 조건입니다. 소설 『로빈슨 크루소』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 속 무인도에서의 고립된 삶은 생존은 가능할지언정, 온전한 ‘삶’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관계는 언제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큰 기쁨과 위로를 주지만, 동시에 실망과 배신, 갈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근원이 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치유되지만, 관계로 인해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를 회피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삶은 다양한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문제들은 때로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무거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어렵게 느낍니다. 내성적이거나 소심한 성격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활달해 보이는 사람도 도움을 요청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강인함을 요구받는 남성의 경우, 어려움을 표현하거나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왜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가』라는 책에서는 남성의 수명이 여성보다 짧은 이유 중 하나로, 고통을 감내하라는 사회적 압박을 지적합니다. 강해야 한다는 남성성의 고정관념은 남성들이 고통을 표현하거나 도움을 구하는 것을 억제하게 만들며, 그 결과 실제 자살률은 여성이 더 많은 시도를 하더라도, 완수율은 남성이 훨씬 높다는 통계로 이어집니다. 결국, 이는 타인에게 기댈 수 없는 문화가 만들어낸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어린 시절 형제자매가 많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유연하고 협력적인 성향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형제와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타협과 공존의 기술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이는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결코 나약함이나 무능함의 표현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오히려 이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신뢰할 수 있는 내면의 용기이자,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입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필요할 때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서로 기대고, 도우며, 연대하는 관계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거리낌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진심 어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많다는 것은, 한 개인이 얼마나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개인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 전체가 더 건강하고 따뜻해질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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