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틀린 사람이 될 준비

by gyst

인터넷 방송 BJ들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많고 많은 기사들을 읽는 게 취미였던 몇 년 전의 나는 ‘이런 하찮은 이야깃거리도 뉴스가 된다니’라는 오만한 생각에 휩싸여있었다. 그 생각의 기저에는 ‘자극적이고 별로 도움도 안 되는 저런 방송들을 보는 건 인생 낭비나 마찬가지야’와 같은 편견이 자리해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에겐 인터넷 방송 세계를 다루는 기사들이 중요한 이야깃거리일 수 있지 않은가? 단지 나의 관심사가 아닐 뿐.


기사의 내용은 읽지도 않은 채 제목만 보고 인상을 찌푸리던 스스로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내가 진정한 꼰대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 아이돌 노래를 들려주면 인상부터 찌푸리고 보는 어른들이 생각났다. 일단 시끄럽고 익숙하지 않으니 듣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 내가 그 사람들과 다를 게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새롭고 낯선 것들에 대한 파악을 유보하는 내가 싫었다.


수두룩한 사람들이 왜 인터넷 방송 BJ들에 열광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끔찍하게도 싫은 인터넷 방송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유명 BJ들의 방송을 클립 비디오로 감상하고, 또 생방송을 같이 달리다 보니 그 채팅창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소속감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실시간 방송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다 같이 웃고 떠들고 분노하고 궁금해하는 과정들은, 친구들과 같은 주제로 대화하며 공감해 주는 느낌을 받았다. 한 가지 더 좋았던 점은 실제로 사람을 대면할 때 발생하는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적었다는 것.


나는 어느샌가 방송 알림 창이 뜨면 급하게 달려가 채팅을 치고 있었다. BJ의 주식이 하락할 때면 같이 아쉬워했고, 맛있는 식사를 할 때는 나 또한 즐거웠고, 슬픈 일이 있으면 같이 울기도 했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 이렇게 깊게 공감하고, 생활의 일부분을 공유받는 느낌이 생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하고 유쾌해서 꽤 긴 기간 동안 인터넷 방송을 챙겨보고 BJ 팬질을 이어왔던 것 같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형식의 관계 방식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서로 대면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언제 어디서나 텍스트로 소통 가능하고, 일방적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철저히 쌍방인 이 관계. 바쁘고 시간 없는 현대인들이 좋아할 만한 장점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BJ 소식을 다루는 기사를 보고 언짢았던 나는 완전히 틀린 사람이었던 것이다. ‘인간관계는 실제로 만나서 쌓아나가야지’, ‘교양에 도움이 되는 취미생활을 가져야지’ 하는 교과서적인 가치들만 이어온 나는 몸 군데군데 오답이 묻은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중이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우리가 지금 먹는 음식들은 교과서에나 실릴만한 고대의 자료들이 될 것이고, 우리가 입는 옷들은 오래된 빈티지 의류가 될 것이다. 지금 대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가까운 미래에 완전하게 하찮은 가치들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변하지 않고, 세상은 끝없이 변화하는 데에서 오는 이 갭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인터넷 방송과 유튜브가 TV 프로그램을 대체하듯 AI가 인간을 대체하고, 가식이 진심을 대체하고, 껍데기가 본질을 대체하는 세상이 언젠가는 도래한다. 그래서 나는 완전하게 틀린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그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다. 정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평생 나만 오답을 외쳐오진 않았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는 자세를 통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