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아직 도시가 고요 속에 잠겨 있는 시간, 대부분의 창문은 닫혀 있고 거리는 숨을 죽인 듯 정지해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이는 공간이 있다. 지하철 차량기지, 금속과 전력, 기계와 규칙의 냄새가 가라앉은 곳. 차가운 선로 위를 걷는 한 사람이 이 정적의 중심을 지난다. 매일 아침 똑같은 자판기에서 뽑는 캔커피 한 통, 손에 익은 운전석의 문 손잡이, 조용한 출입.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고, 그 역시 이름 없이 하루로 들어선다.
열차는 아직 꺼져 있다. 전원을 켜는 손끝에 따라 계기판의 불빛이 하나씩 살아나고, 패널 위에 손을 올려 배터리와 브레이크, 각종 시스템을 천천히 점검한다. 출근길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 이 공간의 모든 것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차가운 철제 손잡이, 눌리는 버튼의 미세한 감촉, 마찰음 없는 기계의 움직임.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열차는 마치 빈 악보 같고, 그는 그 위에 첫 음을 얹는 사람이다.
도시가 열리기 전, 플랫폼은 늘 약간 흐릿하고 비어 있다. 그러나 그는 안다. 그 고요함은 멈춤이 아니라 준비라는 것을. 조명이 들어오고, 안내 방송이 시험처럼 흘러나오고, 한 칸씩 문이 열릴 준비를 한다. 그가 정차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도착한다. 아직 눈이 덜 깬 얼굴, 이어폰을 꽂은 귀, 입을 굳게 다문 채 탄 사람들 사이로 공기가 움직인다. 이 사람들의 하루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그는 이미 몇 개의 구간을 지나온 사람이다.
누군가는 이른 아침 열차가 시간 맞춰 오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또 누군가는 그것에 고마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정확함은 시간보다 먼저 움직이는 한 사람의 루틴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간보다 앞서 준비된 손끝, 누적된 몸의 감각, 아무도 모르는 판단의 순서들. 그 속에서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도시의 하루를 떠밀고 있다. 자신이 보이지 않을수록 도시의 질서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열차는 다시 어둠 속 선로를 따라 미끄러진다. 그가 보는 풍경은 언제나 앞쪽 유리창 너머, 조명을 받아 반사되는 터널 벽의 반복된 곡선이다. 늘 같은 구간이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오늘’이 어제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다른 사람이 타고, 매일 다른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어딘가는 환하게 불이 켜지고, 어딘가는 아직도 밤처럼 고요하다. 그는 그 사이를 통과하며, 도시가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손끝과 발로 느낀다.
하루의 시작은 늘 정해진 시각에 도착하지만, 진짜 시작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간에, 훨씬 적은 조도에서 조용히 만들어진다. 아무도 없는 터널, 정차된 차량, 침묵 속의 시스템.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출근 시간에 열차에 오르지만, 그는 이미 오늘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다. 목소리도 없고, 이름도 없지만, 도시의 첫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는 사람. 그는 오늘도 그렇게 도시를 다시 깨운다.
하루가 흐르듯, 그의 존재도 그렇게 흐른다.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지 않지만, 도시의 시작은 그의 손에서 비롯된다. 그는 알아준다거나 인정받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신이 움직이는 만큼 누군가의 하루가 정해진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면 된다는 것을. 어떤 이름도 없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며, 그는 하루를 완성한다.
가끔 그는 생각한다. 남지 않는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일까. 아니면, 오히려 진짜라는 뜻일까. 사라지는 걸 알면서도 매일 같은 자리에 도착해, 같은 장비를 점검하고, 같은 리듬으로 운전석에 앉는 자신을 떠올리며. 그러다 문득, 그가 지나온 선로를 되짚는다. 어둠 속을 가장 먼저 지나간 사람. 빛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하루를 열어둔 사람. 그는 그런 존재로, 오늘도 도시의 맨 앞을 조용히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