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하루, 사라지는 것을 지키는 사람

이름 없는 사람들

by 찌니

사람들이 모두 떠난 사무실에는 이상한 온기가 남아 있다. 회의실 의자는 대충 밀려 있고, 책상 위에는 마시다 남긴 컵, 다 읽지 못한 서류, 서둘러 꺼낸 간식 포장지 따위가 어제의 긴장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퇴근이라는 말은 그 공간에서 사람을 지워내지만, 감정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몸은 사무실을 벗어났지만, 그들이 남긴 하루의 무게는 그대로 바닥 위에, 책상 위에, 문고리와 창틀의 사이사이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음으로 도착하는 사람은, 하루가 끝났다고 여겨진 그 순간을 처음부터 다시 마주하는 사람이다.

그는 늘 같은 시간에 건물로 들어선다. 아직 도시가 본격적으로 깨어나기 전, 가장 고요한 어둠과 가장 얇은 시간의 틈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이미 그 안에는 누적된 하루들이 앉아 있다. 불이 꺼진 복도는 마치 하루의 잔상이 아직 남아 있는 공간 같고, 냉기 섞인 공기 속엔 말로 남지 못한 수많은 기색들이 어지럽게 떠다닌다. 그는 말없이 조명을 일부만 켜고, 조용히 청소도구 수레를 밀며 걸음을 옮긴다. 어느 복도의 끝에는 휴지가 구겨진 채 떨어져 있고, 복사기 옆 쓰레기통은 비워지지 않은 채 넘쳐 있다. 누군가는 늦게까지 남아 있었고, 누군가는 너무 피곤한 채 자리를 떴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하루를 마친 순간 공간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시간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다. 그가 해야 하는 일은 단지 먼지를 닦아내고 바닥을 쓸고 정리를 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남겨진 하루의 흔적을 하나씩 되돌리는 일이다.

그는 매일 같은 코스를 돌지만, 같은 하루를 만난 적은 없다.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의 위치, 의자의 각도, 문틈에 낀 메모지 한 장이 모두 다르고, 책상 위에 놓인 정수기 컵 하나조차도 어제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공간이지만, 반복되지 않는 삶의 잔상이 남아 있다. 그 잔상을 지운다는 건 생각보다 조심스러운 일이다. 너무 빨리 지우면 그 하루가 허무해질 것 같고, 너무 늦게 지우면 새로운 하루가 들어설 틈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손끝으로 닦고, 어깨로 밀고, 아주 천천히 하루를 비워낸다. 누군가의 피로가 담겼던 키보드 위, 누군가가 몰래 한숨 쉬었을지 모를 창가의 자리, 지나가며 급하게 정리한 서류 더미까지. 그는 이름을 몰라도 그 자리에서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책상 위의 흐트러짐은 말보다 더 정확하게 어제의 하루를 말해주곤 한다.

그는 흔적을 지우는 사람이지만, 그 흔적을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어제의 분주함과 피로, 무심한 말과 몰래 쓴 웃음들을 모두 손끝으로 느낀다. 아무도 없는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닦고 쓸고 치우는 그 시간 동안, 그는 어쩌면 누구보다 그 공간의 감정을 오래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자리를 뜨면서 감정까지 다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군가 그 자리를 다시 정돈하지 않으면 하루는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그는 그 끝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가 자리를 지나간 후엔, 모든 것이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되돌아가 있다. 누가 닦았는지, 누가 정리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저 깔끔해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다음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 그는 생각한다. 내가 지우는 이 모든 흔적들은 정말 사라지는 걸까. 매일 반복되는 이 청소가 단지 공간을 되돌리는 일이기만 할까. 아니면 어쩌면 나는 이 공간을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모든 것을 지우고 떠나지만, 그 잔상들이 내 손끝에 쌓여 있는 건 아닐까. 기억이라는 건 꼭 간직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아주 조용히, 다시 비워내는 것, 아무것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남기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는 어느새 청소도구를 정리하고, 불을 끈다. 복도엔 점점 빛이 들어오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건물은 서서히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간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자리는 누군가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자리가 되어 있다. 그는 오늘도 어제의 하루를 지웠고, 그 지움으로 오늘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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