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하루, 끝과 다시를 지키는 사람

이름 없는 사람들

by 찌니

병원의 밤은 낮보다 더 조용하지만, 그 고요는 멈춤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분주함이다. 복도에는 불이 반쯤 꺼져 있고, 간헐적으로 울리는 심박기 소리와 기계의 알림음이 공간을 나직하게 흔든다. 사람들은 대부분 잠든 시간, 병원 안에서는 깨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몸이 아파 잠들 수 없는 이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가장 조용히, 가장 오래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 병실의 불빛 사이를 천천히 걷고, 시트를 매만지고, 링거의 흐름을 확인하는 사람. 소리 내지 않고 문을 열고, 불필요한 말은 삼키고, 눈빛만으로 상태를 살피는 사람. 그녀의 하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를 마감한 직후에 시작된다.

밤의 병동은 낮과 다르다. 면회도 없고 전화도 없다. 복도엔 웃음소리 대신 숨소리만 흐르고, 텔레비전은 꺼진 채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그러나 그 고요는 무거움과 함께 있다.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는 공간, 아주 미세한 신호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공간. 그녀는 그 움직임을 감각으로 먼저 알아채고, 어떤 상태가 어떤 징후로 바뀌는지, 어떤 침묵이 어떤 경고보다 더 정확한지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름 없이 일하지만, 병동의 하루는 그녀의 손끝에서 정돈되고, 그녀의 걸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모든 환자가 잠들었을 때, 그녀는 그래도 다시 한 번 병실을 돈다. 손전등을 낮게 켜고, 천천히 침대를 돌아보며 상태를 점검한다. 어떤 이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고, 어떤 이는 손을 허공에 쥐고 꿈을 꾸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녀는 그 손을 조심스레 담요 안으로 넣고, 베개의 각도를 조금 조정한다. 아무도 모르지만, 아무도 그걸 요구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일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손길은,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는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일지도 모른다.

병원에서는 하루가 ‘끝났다’는 말과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동시에 사용된다. 어떤 이는 밤사이 악화되고, 어떤 이는 회복된다. 어떤 자리에서는 가족들이 울고, 어떤 자리에서는 혼자 조용히 숨을 고르는 이가 있다. 그런 장면들을 모두 지나며 그녀는 매일을 살아간다. 기뻐할 틈도, 슬퍼할 틈도 없이, 단지 눈앞의 상태에 집중하며. 감정은 뒤로 밀고, 판단은 앞으로 당긴 채. 누구도 그녀의 얼굴을 기억하지 않을지라도, 그녀는 수많은 마지막과 처음을 매일 지켜보고 있다.

가끔 그녀는 생각한다. 이렇게 매일 사람의 끝을 지켜보는 일이, 사람을 둔감하게 만드는 걸까, 아니면 더 예민하게 만드는 걸까. 죽음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는 게 무서운 걸까, 그걸 받아들이는 자신이 차가운 걸까. 그러나 이내 스스로에게 대답한다. 두려움도 익숙해지면 차분해지는 것이고, 감정도 반복되면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거라고. 그래서 그녀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끝을 마주하고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를 시작하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병원은 곧 새벽을 맞는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지고, 조용히 자리를 비우는 가족들이 문을 닫고 나간다. 간밤에 상태가 나아진 환자는 여전히 잠들어 있고, 상태가 나빠진 환자에게는 다른 이들이 도착한다.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누군가에겐 회복의 하루이고, 누군가에겐 더 이상 연장되지 않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시간을 거슬러 다시 걸음을 옮긴다. 손에 든 차트를 정리하고, 마지막 병실의 문을 닫고, 여전히 말없이 복도를 지나간다.

그녀는 이름 없이 존재하지만, 분명히 그 밤의 중심에 있었다. 고요한 응급벨 소리, 천천히 올라가는 산소 수치,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덮인 담요 한 장까지.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남는다.

그녀는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일일까, 아니면 단지 생명을 지켜보는 일일까. 누군가의 시작을 돕는 사람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마지막을 받아주는 사람일까. 하지만 그 물음에 정답은 없다. 병원의 밤은 늘 그 경계 위에서 반복되고, 그녀는 그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하루가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면, 그녀는 그 두 시간을 동시에 통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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