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병원의 아침은 조용하지만, 그 고요는 텅 빈 정적이 아니다. 회진 전의 복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침대 시트와 조용히 삐 소리를 내는 기계음이 섞여 있고, 간호사들의 걸음은 빠르되 조심스럽다. 창밖의 빛은 막 하루를 시작하지만, 병원 안의 시간은 이미 많은 밤을 지나왔다. 어떤 환자는 눈을 떴고, 어떤 이는 아직 깨지 못했다. 그들 사이에서, 의사는 새로 시작되는 하루를 단단히 여민다.
의사는 누군가의 삶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할 때, 또는 이미 위태롭게 무너져 내린 순간에 호출된다. 증상이 처음 나타난 어느 날, 혹은 더는 손쓸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는 언제나 그 경계에 선다. 가능한가, 아니면 받아들여야 하는가. 시도할 수 있는가, 혹은 설명해야 하는가. 모든 판단은 고요하고 단호하게 내려져야 한다. 삶과 죽음 사이, 확신과 모호함 사이, 그는 그 모든 질문의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다.
진료실의 풍경은 반복되지만, 똑같은 날은 없다. 익숙한 검사, 익숙한 문진, 익숙한 수치. 하지만 어떤 날은 그 익숙함 속에서 불길함이 스며든다. 수치로 설명되지 않는 기운, 설명 가능한 것을 넘어서는 예감. 그는 증상보다 사람을 본다. 말을 아끼는 눈빛, 침묵으로 흘러내리는 감정, 손끝의 힘. 환자와 마주 앉아 있는 그 짧은 순간에도, 그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파악하고 계산하고 조율한다. 그러나 의사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가 하는 일은 항상 가능성과 오류 사이의 좁은 다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날은 실패가 찾아온다. 빠르게 악화된 환자의 상태 앞에서, 모든 처치를 다 했음에도 변화가 없을 때. 보호자에게 말을 꺼내야 할 때. “더는 회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말은 수없이 반복됐지만, 익숙해진 적은 없었다. 그 순간, 그는 의사로서보다 인간으로서 더 많은 것을 느낀다. 말의 무게가, 표정의 결이, 환자의 이름이 무겁게 남는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조용히 운다. 그 자리에 그는 늘 함께 있다.
수술실은 또 다른 세계다. 하얀 불빛 아래에서 의사는 정확한 손끝과 침착한 판단만으로 존재한다. 수술이 시작되면 감정은 뒤로 밀린다. 오직 생리학적 반응, 출혈량, 맥박 수치, 절개 범위, 조직의 반응만이 중요하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고 마취가 풀리고, 환자가 천천히 눈을 뜨는 순간. 그의 시야는 다시 생의 얼굴로 돌아온다. 작은 손가락이 움직일 때, 짧은 목소리가 나올 때, 그제야 그는 자신이 다시 사람을 만났음을 느낀다. 그리고 조용히 안도한다. 이 일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의 삶을 이끄는 사람일까, 아니면 삶이 흘러가는 방향을 한 번쯤 멈춰 세워보는 사람일까. 어떤 날은 내가 생을 연장시켰다고 믿고, 어떤 날은 그저 생의 흐름을 따라간 것뿐이라는 생각에 멈춘다. 그 사이에서 그는 조금씩 알게 된다. 의사는 생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생이 흘러가는 길목에 잠시 머무는 사람이라는 것을. 손을 뻗을 수 있을 때는 뻗고, 붙잡을 수 없다면 조용히 손을 거두는 사람. 단지 그 경계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
의사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기억되지 않는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환자는 그의 얼굴보다는 병실의 공기와 간호사의 손길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안다. 어떤 생의 중요한 한 순간, 자신이 거기 있었음을. 정확한 판단, 늦지 않은 결정, 끝까지 지켜본 시선. 그 모든 것이 말보다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그를 떠올리지 않겠지만, 그 순간을 다시 말할 때, 그가 있었던 자리는 늘 조용히 함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는 진료기록을 정리하고, 복도를 걷고, 수술 일정을 확인한다. 바삐 움직이는 하루 속에서 어떤 생은 다시 시작되고, 어떤 생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그 모든 흐름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중심을 지킨다. 감정은 조용히 밀어두고, 판단은 조금 더 날카롭게 세우고, 모든 가능성 앞에서 차분하게 고개를 든다. 그리고 조용히, 다음 생의 경계로 걸어간다.
그는 매일 삶의 흐름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흐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흔들리지 않고 이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