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사람들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은 아주 짧다. 병원 복도의 통보는 낮고 조용하며, 진단서 한 장은 삶의 마지막을 단 몇 줄로 정리한다. 하지만 그 짧은 문장 뒤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숨어 있다. 누군가의 오랜 사랑과 실패, 이름 없는 하루들과 소소한 기쁨들이 고요히 접힌 채 남겨진다. 그리고 그 끝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이가 있다. 울음보다 먼저, 꽃보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 그는 장례지도사다. 이름은 남지 않지만, 수많은 생의 마지막 풍경 속에 늘 존재했던 사람이다.
장례지도사의 하루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은 짧은 전화 한 통으로 온다. “조금 전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에 그는 익숙한 손길로 움직인다. 차량을 준비하고, 장례 절차를 점검하고, 고인이 머물 장소를 정돈한다. 일이 시작되면 감정은 접어둬야 한다. 애도는 유족의 몫이고, 그는 그 애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뒤에서 조용히 받쳐주는 사람이다.
그가 처음 마주하는 고인은 말이 없다. 차가운 피부, 닫힌 눈. 그러나 여전히 사람의 형체를 지닌, 한 존재. 그는 그 몸 앞에서 작아진다. 손을 씻고, 장갑을 끼고, 옷을 입히고,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아무도 더는 말을 걸지 않지만, 그는 여전히 예의를 다한다. 고인의 손을 곧게 펴고, 주름을 살피고, 얼굴을 바라본다. 그 얼굴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한 생의 풍경이다. 그는 그 마지막 장면을 단정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정리한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요.” 하지만 그는 안다. 마지막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고, 그 한 번이 어떤 이에게는 평생 잊히지 않을 장면이 된다는 것을. 삶의 끝은 소란스럽지 않아야 한다. 고요하되, 존엄해야 한다. 남겨진 이들이 마음속으로라도 ‘잘 보내드렸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무너지지 않고 지켜야 한다. 그가 하는 일은 단지 육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마무리를 지탱하는 일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하지만, 모든 것을 지우지는 않는다. 고인의 옷주머니에서 발견된 사진 한 장, 손에 꼭 쥐어져 있던 묵주, 다 쓰다 만 연필 한 자루. 그는 그런 것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한다. 누구도 모를 어떤 시간들이, 여전히 그 사람의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을 믿기에. 그 손끝에는 절차가 아니라 존중이 담긴다. 그는 알고 있다. 장례는 ‘마무리’가 아니라, ‘남겨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형태로든 계속 살아남는 의식이라는 것을.
장례식장은 늘 조용하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침묵 속에 앉아 있다. 아이가 영정 사진 앞에 멈춰 서서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는 고개를 숙인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에도, 그리움은 자라난다. 슬픔은 크기가 아니라 깊이로 남고, 애도는 끝내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는 위로하지 않는다. 그저 곁에 있는다. 슬픔의 무게를 바꿀 수는 없어도, 그 무게를 나누는 방식은 있다는 걸 알기에.
어떤 날은 장례를 치를 이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무연고자의 장례. 조문객 하나 없이 치러지는 이별. 그는 그런 날에도 똑같이 움직인다. 의식의 순서를 지키고, 절차를 준비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지도 모를 생이지만, 그 생도 세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듯 그는 고개를 숙인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작별의 순간에도, 그는 생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나는 죽음을 다루는 사람일까, 아니면 삶의 끝을 다독이는 사람일까. 이 일에 너무 익숙해졌다는 것이 문득 두려울 때도 있다.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이,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누군가는 마지막까지 조용히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울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울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장례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난 뒤. 빈 장례식장에 남겨진 의자들 사이로 그는 조용히 걷는다. 영정 사진을 천천히 내리고, 제단의 꽃을 정리한다. 그 순간이 오히려 더 깊은 작별이다. 이제 이 사람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깊이 숙인다. 그 몸에 깃들었던 시간들과, 누군가의 사랑과, 모든 하루들에게.
그리고 그는 생각한다. 정말 이곳이 끝일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남겨진 사랑 속에서, 혹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시간 속에서 이 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를. 그는 마지막을 마주하지만, 죽음을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매일 무너지지 않고,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이유다.
그는 다시 돌아선다. 다음 이름을 준비하며. 오늘 또 다른 인생이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