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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충영(蟲癭)

by 김성신 시인

충영(蟲癭)

김성신



나는 한 마리 벌레

저 단단한 씨방 속이 궁금했다


그림자는 기꺼이 버려두며

빛의 모서리는 둥글게 둥글게

바라볼 때마다 나지막이 반짝일 것


견딜 수 있냐고 묻고는

사라진 웃음을 수막새로 만들며

모질다고 낯도 참 두껍다고 말할 것


내가 깊은 그곳을 헤집은 후

푸른 저녁은 말을 걸어오곤 했다


하룻밤은 당신과 입술이 맞닿는 일

사흘 밤은 당신의 어깨를 감싸는 일

이레째, 당신의 봉분을 쌓을 수도 있겠다


사소한 일들로 벌어진 당신과의 틈새로

낯선 계절이 웅크리고 있었다

앞에서 안아도 가슴은 늘 뒤

몸 안으로 흐르는 채워지지 않는 생각을

성정性情이라 불러도 좋겠다


갉을 수밖에 없는 운명

나를 저 멀리로 내려놓아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죄다 길이 되고


안녕, 이라는 말 한 마디

무릎으로 구겨 넣을 때마다

가뭇한 소리들이 이명처럼 자박거린다


이젠, 낡은 몸을 버려야 할 때

우화를 꿈꾸는 당신의 몸을 받아들여야 할 때


생각이 마를수록 단단해지는 당신이라는 정념情念


*충영(蟲癭)은 개다래열매에 벌레가 들어가면 산란에 의한 자극으로 모양과 성질이 변한다. 통풍의 특효약.


ㅡ『시인정신』(202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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