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부터 기린
김성신
안에서부터 밖으로 이어진 동굴
별들이 돌아앉아 별자리를 수놓고
나무와 잡풀을 온몸에 그리고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표정은 묽어지고
발설하던 목소리는 긴 목에 걸려 되새김 중
한 걸음 걸으면 숲을 지나 사막
또 한 걸음 걸으면 바다를 지나 너의 집
계절은 유영을 가로질러 긴 목을 휘청거렸지
빛이 없어도 움직이는 것을 알지요
구름 위의 잎을 따기 위해
바람의 길을 뚫고 더 멀리 더 높게 치켜들면
모가지는 한 뼘씩 자라곤 했지
다리를 떼어낸 구름이 빗금을 쳐
그늘을 들썩이며 이미지를 치켜올린다.
그림자를 에운 혼잣말이 복화술로 부푼다
부러질 것 같은 다리, 종유석처럼 솟고
그렁그렁한 큰 눈 사이로 초식의 창살 송곳니
밤에 태어난 짐승은 별자리를 온몸에 새기고
허리가 길고 가는 목을 가졌다
한 번은 엉덩이를 길게 빼고
한 번은 가슴 졸이며 누가 헤집고 들어오는 것일까
어제의 일을 잊은 듯 긴 통로를 헤맨다
겨울이다, 거울처럼 깨질 것 같은 추위
잎들이 사라진 세계에서 지상의 뿌리를 생각하듯
땅바닥에 고갤 처박고
긴 혀를 날름거리며 오늘도 새순을 기다린다
금간 동굴 천장 사이로, 무너트릴 듯 스며드는
가늘고 긴 빛 하나
ㅡ계간 『시와사람』(2022,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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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