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종달이 Nov 03. 2022

대한민국 경찰은 완벽했다.(2)

우리 집에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은 2년째, 거식증+폭식증+우울증을 앓고 있다. 

아들은 중학교 1학년이 되자, 통통했던 살을 뺀다고 미친 듯이 운동을 했다. 내가 생각해도 독할 만큼 매 끼니 칼로리를 계산했다. '새벽 5시 기상, 영단어 100개 외우기, 바이크 1시간 타기, 근력 운동 30분 하기, 영어 문제 100문제 혼자 풀기'-이게 새벽 5시부터 학교 등교까지의 아들 스스로 만든 시간표이다. 


"아들, 왜 이런 계획을 짰어? 힘들지 않겠어?"

"아니, 엄마 괜찮아. 이 정도는. 그리고 엄마, 앞으로는 내가 말하는 '탄단지' 비율을 지켜서 식사를 주세요. 안 그럼, 나 운동으로 먹은 칼로리 다 빼야 한다고."

"아, 그래? 운동하는 건 좋은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살살해. 큰일 나겠다."

날 닮아서 독기 품고 무슨 일이든지 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14살밖에 안 된 아들의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매일 칭찬했다. 


아들 녀석의 볼살과 턱살이 점점 없어졌다. 통통해서 귀여웠던 얼굴이 날렵해지고, 턱선이 살아났다. 원래부터 키가 컸던 녀석은 몸무게도 상위 1%였다. 아들의 식성은 참 좋다. 군것질도 잘하고,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6학년 전교에서 큰 무리에 속했던 아들은, 통통과 뚱뚱 경계에서 왔다 갔다 했다. 71kg까지 나간 적이 있으니, 경도비만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항상 목표였다. 태권도는 계속하는데, 몸이 무거우니 뛰는 것을 싫어했다. 뛰는 것보다는 과학 상자를 조립하고 책을 즐겨 봤다. 그러다 보니, '운동 좀 해라. 같이 뛰자.'라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공부도 너무 잘하고, 똑똑하고 책도 좋아하니, 나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했던 아들이 중학생이 되자 자발적으로 살을 뺀다고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살을 빼기 시작했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하였다. 잔소리 한번 안 하는데, 아들은 척척 알아서 한다. 

학교 다녀와서 잠 자기 전에 1시간씩 시속 9km로 달리기를 했다. 땀이 범벅이 되고 나면, 아들은 단백질 

음료를 마신다. 다시 근육 운동을 하고, 샐러드를 드레싱 없이 밋밋하게 먹는다. 


"맛있네. 이렇게 먹으니, 훨씬 건강해지는 것 같아요. 엄마, 이거 보여요? 이 복근?"

"와, 진짜 대단하다. 사람 복근이 이렇게 보일 수가 있구나. 아들, 너무 잘생겨지고 있다. 아이돌 데뷔해야 하는 거 아니야?"

"흠. 엄마, 사람들이 다 살 어떻게 뺀 거냐고 묻고 난리예요. 내가 봐도 좀 잘 생긴 듯. "

"역시, 우리 아들은 의지력이 대단해. 독하기도 하고, 어떻게 살을 이렇게 뺄 수가 있지?"





걱정은 됐는데, 잘 생겨지고 있는 아들의 얼굴이 너무 맘에 들었다. 보는 사람마다 '살 빼는 비결'이 뭐냐고 

묻고,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고 아들에게 칭찬을 했다. 덩달아 내 어깨가 올라갔다. 

애 아빠도 사람들한테 듣는 폭풍 칭찬을 즐기고 있었다. 

"아, 애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독한지 모르겠어요. 혼자서 대학교 토익 공부한다고 중 1학년생이 영어 듣기 하고, 단어를 하루에 100개씩 외우네요.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하고. 첫 시험에 700 이 나오는 정도니.. 에이, 아직 멀었죠."

애 아빠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기 아들 자랑을 했다. 날렵한 턱선이 있고 눈이 부리부리해진 아들 사진을 

핸드폰으로 계속 찍었다. 이에 질세라, 여동생도 자기 오빠 사진을 갖고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였다. 

"우리 오빠야, 잘 생겼지?"

"다들, 왜 그래. 살 한번 뺀 거 갖고. 참......"




중학교 2학년이 된 키 172cm의 아들은 결국 48kg가 되었다. 거식증은 생각보다 최악이었다. 아들과 나는 그때부터 매일 싸우기 시작했다. 아들은 자살 시도를 했다. 7층 난간에서 뛰어내린다고 나를 협박했다. 

나는 무서웠지만, '정신 빠진 놈!'이라고 실컷 욕을 해 주었다. 

죽겠다는 아들놈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 쳤다. 

'죽지 않겠지, 지가 얼마나 겁이 많은데. 이 녀석아, 언제 정신 차릴래? '

아들이 행여나 눈치챌 까 봐, 일부러 신경질 나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사실은 아들이 진짜 무슨 일을 낼까 봐 무서웠다. 아들은 결국 112에 자기 아빠를 신고 하였다. 

고마웠다. 내가 아니고 '애 아빠'라서. 





"저희 아빠가 저를 협박해요. 무서워 죽을 것 같아요. 때린 건 아니고요.

 저 좀 살려 주세요!"


경찰관들은 1시간이 넘게 우리 집에 있었다. 무전기 불빛은 시종 일곤 반짝거렸다. 

다른 신고들 때문에 계속 울리는 무전기가 자꾸 신경 쓰인다. 

'이제 다 조사했으면 가지 왜들 안 가? 애 아빠 오기 전에 가지. 진짜 있으려나 봐.'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경찰관은 계속 우는 아들을 달래고 있었다. 

솔직히 아들은 30분 전부터 '아빠가 무섭다. 아빠는 가끔 욕을 한다. 아빠가 '욱' 하고 화를 낸 적이 종종 있다.'라는 말을 계속하고 있다. 

'저 새끼가 진짜 미쳤나. 지 부모를 이렇게 망신을 주네.' 

조사를 마치고 경찰관과 함께 마루에 나온 아들을 보니 울화통이 터졌다. 



결국 경찰관들은 전주에서 돌아온 애 아빠를 만나고 갔다. 경찰관은 친절했고 너무 빡센 직업이었다.

16세 사춘기 아이의 신고 한 통화도 무시하지 않았다. 1시간 넘게 같은 이야기를 하는 중학생에게 공감하고 심지어 교감까지 하였다. 1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부모가 못해 준 '신뢰'를 만든 듯하다. 

대한민국 경찰관은 완벽했다. 이 절대적인 진리를 아들이 알려주었다. 


"고맙다, 이 새끼야. 이런 것도 알려줘서......" 

이전 02화 대한민국 경찰관은 완벽했다.(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