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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Nov 13. 2022

정신과 의사선생님들은 '장애'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거식증 아들과의 '병원 놀이'가 시작되었다. (1)

"엄마, 나 학교 못 갈 거 같아. 거울 속 내 얼굴이 이상해. 돼지 같아."


"아들, 무슨 소릴 그렇게 해? 안 그래. 하나도 살 안 쪘어."


"볼 살이 너무 많아서 축 처져 있어. 뱃살 접히는 거 봐. 두 턱이 생겼어. 이게 뭐야? 괴물이잖아."

"학교 안 가. 아니 못 가. 그냥 죽을래. 괴물이잖아. 나 그냥 살고 싶지 않아."


38시간 단식을 한 아이에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것은 '음식물 제공'이었다.


"아들, 뭐 먹고 싶어?"


"안 먹고 싶어요. 그냥 물... 단백질로 사 주세요. 아니, 밥도 먹을게요. 조금 먹어도 될 것 같아요."


"뭐든 먹고 다시 운동하면 돼. 단식했으니까 머 좀 먹자. 뭐, 고기 먹을까?"


"아뇨, 고기 말고, 갑자기 빵이 땡겨요. 간헐적 단식하고 나서 천천히 먹으랬는데, 나는 지금 너무 힘이 없으니 괜찮을 거예요... 엄마, 빵 좀 사다 주세요!

"아니, 수제 버거 있잖아요. 패티 듬뿍인 거에 아보카도로 사 주세요."


"좀만 기다려. 엄마가 아보카도 들어간 버거 사다 줄게."

'아보카도 버거+ 감자튀김+음료'의 세트 메뉴를 살 지, 버거만 있는 단품으로 살지를 5분 넘게 고민했다. 1년 동안 '감자튀김'을 입에도 대지 않았던 아들이었다. 

"사장님, 감자튀김은 양념 없이요, 음료는 제로콜라요."

아들 다이어트 식단에 최적화라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나는 세트 메뉴를 사 갔다. 


"엄마, 감자튀김까지 사 왔어요? 아이 참. 칼로리가 엄청 난데......"


아이 참, 이란 말이 끝나자마자 아들은 햄버거와 제로 콜라, 감자튀김을 순식간에 해치워 버렸다. 

"너무 맛있다. 음. 바로 이 맛이야."



내과 의사 선생님한테 야단도 맞고, '거식증' 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약도 처방받고 음식도 먹였다. 

'그 의사, 돌팔이네. 거식증이 뭐 어쩌고 저쩌고? 웃기고 있어. 음식을 거부한다고? 참.'

의사가 '거식증' 이란 단어를 마구 휘갈기면서 심각한 표정을 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들은 단식이 끝나자, 배고픔에 버거를 아주 잘 먹었다. 탄수화물 공급원인 감자의 양이 적긴 하지만, 감자가 아닌 '감자튀김'을 1년 만에 먹은 것도 엄청난 결과였다. 음식을 거부할 거라는 의사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 역시, 내 아들은 내가 잘 안다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짜증 나게."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나의 착각이었다. 

잘 먹고 잘 잔 아들이 거울을 보고 씩씩대고 있었다.

거울 속에는 살이 '뒤룩뒤룩' 찐 '괴물' 이 있었다. 아들은 참지 못해서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아들, 무슨 소리야? 너 손에서 피나. 야.. 가만있어."


"내버려 두라고요. 피가 나든 말든. 이렇게 죽게. 살쪘는데, 어떻게 살아?"



"선생님, 아침 일찍 죄송해요. xx 가 너무 몸이 안 좋아서요. 네, 네 오늘은 병원에 갔다가 집에서 쉴게요. 죄송합니다."

아들 담임 선생님께 대충 둘러대고 피가 나는 손에 거즈를 댔다. 

"살이 어디 쪘다고 그래? 엄마 눈에는 똑같은데. 야, 거죽 밖에 없는데, 무슨 뱃살이 잡혀?" 


아들한테는 아무것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당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거식증', '38시간 단식' , '다이어트' , '섭식장애' , '정신.... 의학' 

'다이어트가 정신적 문제라고? 거식증이?' 

'xx 클리닉, 상담치료 센터, 정신과 의원, 청소년심리센터, ' 맘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급한 내 맘과는 달리, 병원마다 '진료예약' 이 필수였다. 리뷰 좋고 유명한 병원은 최소 3개월 기다려야 한단다. 오늘 병원을 가야 하는데,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3개월을 기다리고 그전에 심리 상담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전화 속 간호사에게 순간 욕을 날리고 싶었다.

"장난해요?" 


"어머님, 저희 환자 분이 취소를 하셔서요, 오후 시간 되세요? 여기가 어디냐면은요.. 오시기 전에  간단하게 작성하셔야 할 게 있어요." 

갑작스러운 예약 환자의 취소로 할 수 있게 된 'XX 정신과 의원'의 진료. 떨렸다. 오기 전 폭풍 검색을 해 보니 리뷰도 좋고 미국에서 '청소년 섭식장애'로 학위까지 받은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키도 크고 풍채 좋고 듬직해 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아들의 상태를 꼼꼼히 타이핑 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를 다시 훑어보았다. 내 머릿속 생각까지 읽으려는 것 같아서 불쾌해졌다. 


"학교 가기 싫다고 죽겠다고 했다고요? 거울을 주먹으로 쳤고요. 다이어트... 절대 못해요. 다이어트는 평생 성공할 수가 없어요. 소위 말해서 anorexia nervosa, 신경성 식욕 부진증이고요, 섭식장애의 일종입니다."


"다이어트는 하면 할수록  계속 기대치가 높아져요. 음식물을 섭취 안 하고 살 수 없잖아요. 다이어트를 하고 만족한 뒤에 다시 음식물을 섭취하죠. 그러면 또다시 살이 찌고 그러다 보면, 회복 포인트가 점점 낮아지고요, 반대로 다이어트 욕구는 더 강해져요. 평생 이렇게 사는 거예요. 다이어트 성공 절대 못해요. 알겠어요? 어머님, 알겠니?" 


장황하게 설명하는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애는 죽겠다는데, 섭식 장애가 어떻고 , 신경성 식욕 부진증이 심각하다고 말하는 의사의 엄청난 뱃살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풍채가 좋은 의사가 아니라, 엄청나게 살이 찐 의사였다. 

'당신이 살쪘으니, 다이어트 성공 못 한다고 말하는 거잖아. 얘는 이미 다이어트를 성공한 거라고. 식욕성 부진증, 섭식 장애? 뭐 정신적 장애라고? 웃기고 있네.' 


그때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들 중 일부는 '장애'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환자는 죽어가는데, 자꾸 종이를 내밀면서 '간단하지만 5장이 넘는 기본 조사'를 하고, '예약 필수'를 해야 진료를 봐준다는 것을. 


병원 문을 나오자 마자, 나는 다른 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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