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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Dec 24. 2022

6종 종합 선물세트도 아니고 나 참....

"어머님, 제가요, 얼마 전에 불친절한 의사라고 환자 보호자께 혼이 났어요. 저 이 분야 대한민국 최고이고, 30년 넘게 환자를 만났는데.. 요즘, 참. 내가 왜 정신과를 선택했나? 

섭식장애를 선택했나?라고 스스로 반문합니다."



"네? 선생님 정도면 친절하신 편인데요."



"그런데요, 어머님, 저도 미치겠어요. 요즘. 섭식장애가 갖고 오는 부작용과 피해가 너무 커요. SNS를 제가 막을 수가 없어요. 어머님은 정말 상상도 못 할 일을 하루 종일 제가 이 의자에 앉아서 들어요.

  6종 세트거든요." 




의사도 결국 사람이다. 답답했나 보다. 

'왜 갑자기 제게 하소연을 하세요?'라는 표정을 짓자 내 앞에 있는 담당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6종 세트예요. 섭식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는요. 다이어트에서 거식증, 폭식증. 그리고 분노 장애와 폭력. 

자해와 자살. 담배 술. 마지막이 뭔지 아세요? 섹스예요."



"네? 섹스요? 설마요. 6종 세트요?"


(무슨 선물 종합 세트도 아니고, 뭐 이리 해괴망측한 6종 세트가 있을까?)


불안감, 스트레스, 강박, 예민, 우울, 완벽주의와 자기 비하, 수치심에서 시작된 다이어트는 십 대 청소년들이 가장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 분야'이다. 



밥을 안 먹음 되고, 참으면 되고, 굶으면 되고. 

살이 빠지니 당장 눈에 보이는 체중계에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고. 

'아, 몸무게쯤은 내 맘대로 쉽게 할 수 있네.' 


이것 저것도 시작 못해서 불안해하고 있는 아이들. 완벽해지고 싶지만, 지독한 완벽주의는 오히려 더 지옥으로 아이들을 몰게 된다. 강박증과 완벽증 사이에서 사람들을 보면서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과 수치심. 

그렇게 거식증, 폭식증은 시작된다. 


SNS는 결국 아이들에게 있어서 '사랑 없는 섹스, 하루에 아무 하고나... 원데이... ' 상상할 수 없는 지옥을 선물하게 된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내 아들은 '섭식장애의 최고의 설루션-운동'을 알아서 스스로 하기에 토를 하지만, 희망은 있다고 한다. 다만 그 길이 어려울 뿐이니...




제가 만약에 섭식장애로 섹스의 단계까지 갔다면, 저는 혀 깨물고 죽을 거 같아요. 그걸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어요. 대한민국에서요."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흥분하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반론하였다. 



"네네.. 당연하죠. 그런데요. 이걸 아셔야 합니다. 측. 은. 지. 심이요. 애들이 오죽하면 그럴까?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얼마나 속상하면 그럴까요? 토하고 떄려 부시고, 담배 피우고, 술 먹고. 사랑도 없는 모르는 사람과 잠자리를 하면서 '아, 나는 그래도 살아 있구나.'라고 자존감을 찾는 거.. 

누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세요? 아이 본인입니다."



"네, 맞죠. 그렇지만..... "



"그래서 저는 난리 치는 부모님에게 꼭 말씀드려요. 그러심 안 된다고. 화내지 마시라고. 애 닦달하지 마시라고요. 그랬더니, 저보고 불친절하다네요. 이해 못 하는 의사라고요. 애한테 그랬어요. 섹스를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하고 네가 받게 될 상처가 너무 커. 차라리 담배나 술로 바꿔 보는 것은 어떻겠니? 너는 나아질 거야. 힘든 거 알아. 저도 죽을 맛 입니다." 


"근데, 진짜 힘드네요. 어쩌자고 섭식장애를 선택했는지.... "




내 자식이 담배와 술을 안 피우고, '거식증-폭식증 -분노조절-자해'까지 온 것에 감사를 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매일 토를 하는 아이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다만, '오죽 힘들겠어. 네가 오죽하면 그러겠니.'라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사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년 가까이 토하는, 하루에도 어떤 날은 몇 번씩 토하는 아들. 내게 욕도 하고 분노를 조절 못해서 난리 부르스 추는 아들. 운동은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녀석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듯, 나만 보면 '힘들다, 죽겠다. 살이 쪄서 미치겠다.'를 말하는 아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같이 먹으면서 조금이라도 살아 보려고 바둥 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안다. 


오죽하면 네가 그러겠니? 불쌍하다. 짠하다. 미안하다. 힘들지? 


라는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 

하지만 그 무게가 큰 만큼, 
나는 진심으로 그 말을 못 하고 있다. 

나 역시,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그 녀석의 지랄 발광을 받아내기에 
나는 아직 쫄보이고 
멘털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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